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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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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번역

저자
도리스 되리 저/함미라 역
출판사
샘터
출판일
2021-10-12
등록일
2021-12-21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3M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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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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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영화 〈파니 핑크〉 감독이자 작가
도리스 되리가 사랑하는 재료의 말들

“맛있겠다! 도리스 되리 정도의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은
각국의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지의 음식과 교류한다는 뜻이다. 도리스 되리의 추억 속 식탁(들)에 앉고 싶다.
음식 이야기인 줄 알고 읽다가 신기하고 웃긴 글솜씨에 홀딱 빠졌다.
맛있게 읽었습니다. ” ― 이다혜, 작가

나는 음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감각을 배우고,
개인의 책임을 깨달았다

삶의 풍미를 발견하는 맛의 산책

독일 영화계의 거장으로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며 문학계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도리스 되리. 그녀의 첫 에세이가 드디어 국내에 선보인다. “도리스 되리 정도의 감독이 된다는 것은 세계의 음식과 교류한다는 것”이라는 이다혜 작가의 말처럼 그녀가 내놓는 첫 번째 에세이가 음식 에세이라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도리스 되리에게 요리와 음식은 그야말로 삶의 원형이자 절대적인 기쁨이다. 이 책에서 도리스 되리는 어린 시절 경험한 신기하고 다채로운 추억을 맛깔나게 꺼내놓는다. 방과 후 마구간에서 훔쳐 먹었던 딱딱한 빵 조각들, 행복한 닭이 낳은 달걀,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송아지 뇌 요리, 한여름에 먹던 붉은 과즙이 가득했던 수박……. 우리가 누군가의 음식에 얽힌 추억에 매혹되는 이유는, 그 경험 어딘가에 자신의 추억 또한 포개둘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이 감자에 대한 추억 하나쯤 있듯, 멕시코인이 아보카도에 대한 추억 하나쯤 있듯, 우리에게도 자신을 위로하고 일상을 돌봐주었던 음식 하나쯤 있을 테니 말이다.
또한 도리스 되리는 단순히 식도락의 경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먹는 행위’가 단순히 쾌락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통로이며 날것의 생을 감각하는 일임을, 더불어 개인의 책임과 생존의 무게를 실감하는 일임을 환기한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가 곧 누구인지 말해준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요리하는지가 인간을 규정한다. 인간은 여전히, 변함없이 먹는 자로서 남아 있다.”


“효모가 우리 일상에 거는 주문처럼”
일상을 지켜주는 위로의 맛에 관하여
음식에 대한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한 편의 유쾌한 소동극을 보는 것 같다. 갑각류 알레르기로 인해 욕실 바닥을 나뒹굴면서도 스페인에 가서는 완벽한 ‘파에야’를 찾고, 채식주의자가 된 이후로 간헐적 단식을 이어가다 못해 푸드 매거진의 고광택 사진을 핥는 지경에 이른다. 영국식 오트밀인 ‘포리지’가 지금처럼 ‘핫’하지 않았던 시절 어느 성탄절 날, 피아노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피아노 뚜껑을 열었더니 그 안에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은 거대한 포리지가 나왔다는 이야기, 재봉틀 혹은 녹슨 열쇠 따위나 부드럽게 만들 호박씨기름을 식사 내내 먹는 남편 식구들 틈에서 곤혹스러웠던 이야기 등 음식을 둘러싼 흥미로운 모험에 동참하게 한다. 도리스 되리가 펼쳐두는 음식의 실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음식이 얼마나 문화의 산물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는지는, 그러니까 순전히 문화적인 것이다. 그래서 음식은 수많은 이야기 속에 모험과 도전의 메타포로 등장한다. “담력을 시험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마법에 걸리게 하는 마녀의 음식이나 마법을 푸는 기적의 음식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세계를 떠나 미지의 것에 눈을 뜨게 하는 표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도리스 되리의 네 자매 앞에 나타난 송아지 뇌 요리도 그들의 모험심을 시험하기는 충분했을 것이다.
반대로 친숙한 음식이 주는 위로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방안을 휘돌던 달큰한 효모 냄새, 마음을 안정시키던 엄마의 자두 케이크, 따뜻한 우유에 담가 먹던 꽈배기 식빵, 건포도 브뢰첸, 막 빚어낸 반죽을 집어 먹고 나면 바이스비어의 기포처럼 가볍게 올라오던 트림까지. 도리스 되리는 팬데믹 선언 이후 전례 없이 효모가 동나는 이유는, 전후 사회에 효모가 다시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달콤하고 따뜻한 케이크가 나오리라는 약속, 그 아늑한 희열” 때문에. “사람들이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공황기’를 맞아 효모에 몰려드는 건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효모는 살아 있고, 이토록 멋지게 우리에게 위안을 주니까.”


“누구도 이 모든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맛을 느끼는 감각은, 곧 세계를 감각하는 일
아침이면 우유 배달부의 소리에 조그맣게 돌아누우며 자신이 우유 배달부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했다는 되리스 되리. 이웃집 아주머니가 기르던 ‘로지’, ‘베르타’, ‘플로라’라고 불리던 젖소들, 쉼 없이 풀을 되새김질하며 뽀얀 우유를 만들던, 무척이나 건강했던 그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가 더는 소의 환경에 관심을 두지 않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처절해졌는지, 단돈 9유로면 살 수 있는 송아지 한 마리의 가치는 무엇인지 반문한다. 한편 전 세계 힙스터들의 차세대 웰빙 푸드로 떠오른 아보카도 열풍으로 인해 아보카도 생산국인 멕시코에서는 납치가 횡행하고, 마약 거래상에 의해 아보카도가 거래될 만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도리스 되리는 그 한복판에서 이렇게 되뇐다. “베를린의 힙스터들, 아보카도 토스트, 과카몰레에 대한 나의 열정, 아보카도 전쟁, 물 부족. 누구도 이 모든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그녀는 음식이 주는 쾌락만을 좇지 않는다. “몸이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맛을 감각하는 일은 곧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일이다. 도리스 되리의 글을 읽다 보면 맛을 느끼는 감각이란 짠맛, 단맛, 매운맛 같은 물리적 감각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것은 음식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 즉 내가 다른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타인과 더불어 생태계에 연결되어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감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맛을 ‘번역’해내는 일은 그 윤리적 핵심에 가닿는 일이다. 도리스 되리의 글이 한없이 유쾌하면서도 가벼운 웃음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폐부를 찌르기 때문이다. “자기 앞에 놓인 그릇 위에 음식이 담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와 협력 그리고 동물, 식물의 희생이 있었는지 식사 때마다 들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도리스 되리의 맛있는 글이, 지금 우리의 식탁에 도착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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