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의 길을 새로 묻다
제1부 한국법학교수회 60주년 기념행사개 회 사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홍식, 인사드립니다. 한국법학교수회 창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난 1년간 저와 함께 오늘 행사를 준비하고 참석해 주신 모든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어느 시인은 “매미 울음소리가 왠지 녹슬었다고 생각될 때 가을은 온다.”라고 하였는데,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무더위도 이제는 슬슬 떠날 채비를 끝낸 듯합니다. 팽나무 열매가 갈색으로 익어가고, 냇물 소리가 귓가에서 차가워지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으니 말입니다.오늘 저희의 행사에 삼부(三府) 요인들께서 이렇게 참석해 주신 까닭에, 적어도 이 시간에는 저희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의제로 거듭났습니다. 말하자면 저희의 주장이 내빈 여러분의 참여로 ‘비교 불능’의 ‘가치’로 새롭게 ‘구성’된 것입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올해는 법학 및 법률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저희 한국법학교수회가 설립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60주년을 기념하는 전통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녀왔습니다. ‘환갑’은 60년 주기의 끝을 맞이하는 동시에, 새로운 주기를 시작하는 시점으로, 말하자면 두 번째 생애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환갑을 맞이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큰 잔치를 열어 축하했습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뜻 깊은 기념식을 여는 이 순간, 마냥 웃는 낯으로 희희낙락(喜喜樂樂)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법학 및 법학교육의 현실이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명사회의 법 교육기관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열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① 학문 공동체의 정식 구성원으로 수용되고자 하는 열망, ② 거리를 두면서도 여전히 참여해서 사회의 법?제도의 비평가이자 검열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 ③ 숭고한 이상을 좇으면서 사회의 혼란을 낭만적이지 않게 정리함과 동시에, 수익성 있는 전문 직업을 위한 서비스 기관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학 교수들은 이런 열망을 떠올리기조차 어려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기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법의 중요성은 비약적으로 부각(浮刻)되어 왔습니다. 1985년 7백여 개였던 법률의 수는 40년이 지난 현재 1천6백여 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법체계의 복잡성이 증대한 것을 의미하기에, 법률가 역할은 그에 비례해 날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2023년 등록 변호사 수는 3만4천여 명으로, 10년 전인 2012년(1만4천여 명) 대비 두 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국세청이 집계한 2022년 국내 법률시장 규모는 약 8조2천억 원으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내 변호사 시장을 제외하고도 2012년(3조6천여 억원) 대비 두 배 남짓 커졌습니다. 요컨대 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 수가 늘고, 법률시장도 그만큼 커졌습니다.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법학은 “찬물 맞은 불티”처럼 쪼그라들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법학과 수는 2023년 117개로 2009년 209개에 비하여 반감(半減)하였고, 로스쿨이 설립되던 2008년 당시 만 명 이상이던 대학교 법학전공 입학정원은 2023년에는 3천 명 미만으로 급감하였습니다. 법학논문의 수와 법학박사학위 취득자도 이와 마찬가지로 감소일로에 있습니다. 현재의 실무 중심 교육방식으로 인해 이러한 추세는 심화할 것입니다. 바야흐로 학문 후속세대 양성은 말할 것도 없고, 학부 법학교육은 존폐(存廢)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로스쿨 법학교육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요컨대 로스쿨은 변호사시험(“변시”) 응시에 필요한 정보와 요령을 배우는 “변시학원”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로스쿨 학생들은 변시 준비를 위해 무려 1만2천 개에 달하는 판례 암기에 치중하고 있고, 변시 합격률은 인위적으로 50%대에 고착되어 「기초법학 과목」은 말할 것도 없고 「변시 선택과목」조차 외면받고 있습니다. 법의 근본 문제와 기본 원리를 탐구하는 「기초법학」은 철저하게 외면되어 폐강되고 있으며, 그 사이에 기초법학 교수는 로스쿨 교수 788명 중 30명에 불과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새롭게 임용된 법철학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이념, 즉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조인 양성’은 공염불이 되었습니다. 로스쿨 교육에서 이론과 실무의 균형은 사라졌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공적 가치에 대한 고민은 로스쿨 학생들에게는 불감당의 사치가 되었습니다. 공적 의무와 봉사가 오랫동안 법학교육의 주요한 덕목으로 자리매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그런데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정세는 어떻습니까?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역간 관계를 강화하는 새로운 블록화가 가속되고 있고, 정치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으로 인하여 입헌민주주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고 있으며, 사법체제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심각한 틈새가 발생하여 법의 지배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물적 환경 측면에서는, 기후변화와 정보혁명의 흐름 속에서 AI와 같은 교란적 혁신이 일상화되어 기존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미래학자가 “대전환(grand transition)”의 시대라고 말하는 지금, 미국, 독일, 중국, 심지어 인도와 브라질까지도 법학교육의 혁신과 일신을 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법 자체와 마찬가지로, 법학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과거의 관행과 법률에 대한 의존을 보호하는 동시에 개혁을 촉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저희는 이런 변화가 요구하는 법률가를 키우기는커녕 법학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걱정하는 실정입니다.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법의 지배는, 현대 문명사회의 정치 문법인 민주주의가 다수자의 독재로 흐르는 것을 제약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메커니즘입니다. 일찍이 플라톤은 주저 중 하나인 『법률』에서 ‘법’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법이 통치자들의 주인이고 통치자들은 법의 종인 곳에서 구원이 생긴다”라고 말입니다. 나아가, 그는 법학교육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모든 종류의 지식 중에서, 좋은 법에 대한 지식은 학습자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법학을 깊이 연구하는 것은 다른 모든 저술보다 우리의 판단을 올바르게 하고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미국의 카도조 대법관이 말했듯이, “법의 목적은 논리가 아니라 정의”입니다. 법학은 정의로운 사회의 구성과 운영을 위해 필요한 근본 원리를 규명하는 학문입니다. 법학은 단지 법조인 자격시험을 위한 기술적 지식이 아니라 국가의 토대를 만들고 다지는 학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법학이 무너지면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약속이 파기되고, 법학이 무너지면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이 변화의 물결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대전환기일수록 법적 사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현재 우리 사회는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대화와 타협이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앞세운 나머지 자신과 다른 관점에 대해서는 눈감아버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타인의 의견을 함부로 재단하고 왜곡하는 행위가 우리의 공론장을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절충과 균형을 구하는 호소는 극단적 고함에 의해 압도되고 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법학교육이 지속해서 강조해온 합리적 논증, 즉 증거와 논리로 반대 의견과 이의를 아우르며 설득하는 노력일 것입니다. 미국의 홈즈 대법관은 “사업가는 혼란 속에서 기회를 보지만, 법률가는 수많은 극적인 세부 사항에서 원칙을 본다”라고 하였습니다. 법적 논증은 상이(相異)한 관점들을 인정하면서 그 각 논거를 반성적으로 분석하고, 상충하는 관점을 형량하여 균형 잡힌 해결책을 제시하려 합니다.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모든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태도, 그러니까 칸트가 그토록 강조했던 ‘이성의 공적인 사용’의 범례(範例)입니다. 법학이 소생(蘇生)해야 법이 살고, 법이 살아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저희는 이 자리에서 법학과 법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다음의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첫째, 학부 법학교육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학부 법학교육은 법학 전공자에 대한 교육뿐 아니라 ‘시민을 위한 법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법의 지배’를 연구한 수많은 학자는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법의 지배’가 착근(着根)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법적 사고양식(legal mind)을 널리 공유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법을 배운다는 것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를 인식하고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서 법리와 제도로 번역하고, 차이점과 공통점을 식별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상충하는 이익을 조정하는 지적 역량을 키우는 것입니다. 우리 시민들이 법의 본성을 깨닫고 법적 사고양식을 공유한다면 ‘법의 지배’는 공고해질 것입니다. 그 중차대한 역할을 학부 법학교육이 담당해야 합니다.둘째, 로스쿨 커리큘럼은 이론과 실무가 균형 잡힌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고 대전환에 대응하는 교육수요를 반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커리큘럼 개선은 반드시 법제화되어야 합니다. 로스쿨 교과과정이 나름대로 정비되어 있지만, 학생들은 변시 과목 일변도로 학습하며 기초법학 과목은 물론 선택과목조차 외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피상적 지식보다는 법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기초법학은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 고사하기 직전입니다. 로스쿨 커리큘럼이 정상화되어야만, 법학교육이 상정하는 법률가, 그러니까 실정법의 토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 전반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며, 융합적인 사고로 미래를 대비한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 나가는 법률가를 양성할 수 있습니다. 셋째, 법학전문대학원이 본래의 도입 취지, 그러니까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닌 ‘교육을 통한 양성’”에 맞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1) 소정의 기준을 충족한 법과대학 모두에게 로스쿨 참여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준칙주의”), (2) 변호사 시험은 명실상부한 ‘자격시험’으로 변화해야 합니다(“자격주의”). 이 두 가지는 로스쿨 법학교육이 정상화되고 법학연구가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져야 할 조건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이 ‘변시학원’으로 전락하게 된 주된 원인은 그 설립취지에 반하는 낮은 변시 합격률에 있습니다. 낮은 합격률에 내몰린 학생들은, ‘넓고, 깊고, 멀리’ 보는 법률가가 아니라 ‘좁고, 얕고, 가까이만’ 보는 법기술자가 되고 맙니다. 이제는 ‘준칙주의’와 ‘자격주의’가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저희는 오늘 이곳에서 한마음으로 펼치는 오늘의 연찬(硏鑽)이 여러분 가슴 속에 다가가 공감을 산출하고, 여러분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현재 법학이 마주한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으로 가는 전기(轉機)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법학교육이 정상화될 때, 우리 학생들은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좋은 일을 할 기회를 포착할 것이고, 법을 만드는 데 참여할 기회도 없이 종종 그 무게만을 감당해야 하는 소외계층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법과 법률 직업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강화할 것이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 있는 변화를 확보하며, 인류애를 계발(啓發)하고 인류의 복지를 향상시켜 나갈 것입니다. 법학교육을 정상화하지 못한다면 저희는 맡겨진 역할에 실패한 것입니다. 저희에게 부여된 소명에 헌신할 것을 약속하면서, 내외 귀빈 여러분께 전폭적이고 열렬한 연대와 성원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4. 9. 6.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趙弘植기조강연 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는 우리에게 상법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기신 최태영 선생님을 1964년 초대 회장으로 모신 이래 이제 회갑을 맞이하였으니 우선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본회의 설립목적은 그대로 인용하자면, “회원의 학술활동을 증진시키고 법학교육의 발전, 법학계와 법조실무계의 협력 및 법률문화의 향상에 노력함으로써 우리나라 법치주의 창달과 국가 발전에 공헌을 도모하자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선 우리 한국법학교수회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설립 목적을 잠시 뜯어봅시다. 저는 ‘회원의 학술활동을 증진시킨다’는 일반적 표현은 법학을 연구하는 분에게는 누구나 해당하는 말이어서 당연히 설립 목적에 포함되어 마땅하다고 보나, 회원의 전문 학술활동을 실천적으로 증진시키는 책무는 법학 전문분야의 각 학회들이 더 잘 맡아서 수행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한국법학교수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설립목적이 말하는 바와 같이 법학교육의 발전, 즉 법학 교육현장의 개선에 더욱 힘써서 그 현장의 파수꾼 노릇을 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1972년에 교수로 취임하고 보니 전국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한 법학 교수가 저 혼자였기 때문이었는지 같은 반에서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빠짐없이 재조나 재야로 진출한 동료 선후배와 법학 교수 간의 소통이란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튼 한국법학교수회의 설립 목적을 좀 더 법학 교육의 현장 지킴이 역할 등 구체적으로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개정하거나, 오늘 회의의 선언문에서라도 한국법학교수회의 정체성, 즉 자기네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를 분명히 밝히면 좋겠습니다.한국법학교수회 60주년기념회의는 법학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것을 계기로 법학의 과거를 점검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미래를 대비하고자 법학자들이 함께 숙의하는 자리로 조홍식 현 회장이 기획위원회를 구성하여 1년 이상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한 바를 토대로 기획한 것으로 압니다.최근 3회에 걸친 사전 학술대회를 통하여 문제의식과 여러 대안을 공유하신 것들을 정리해 보면 첫째, 법학 교육과 법치주의의 위기 극복, 둘째, 기초법학의 죽음에서 보듯 법학의 위기와 대안의 모색 그리고 셋째, 법학과 법치주의의 위기와 대응 방안이라고 요약하겠습니다. 문제점의 지적은 대체로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점에 관하여서는 본회의에서 활발한 토론을 통하여 좋은 방안이 제시되리라고 믿습니다. 위기의 진단은 정확하더라도 다소 추상적인 면이 있으므로 제가 1990년대 말에 한국법학교수회장의 책임을 맡아본 소감을 정리하여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위기의식을 진단하여 장래에 어떻게 함께 잘 할 것인가를 모색해 본다는 취지에서 말씀드리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자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첫째, 법학교수회를 인수하고 보니 이 단체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법학교수회가 당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활동이란 주로 각 법학 분야의 학회들의 연구발표모임을 대행 내지 보조한다고나 할까, 각 학회들과 같이 협조하고 편의를 봐주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법학교수회란 법과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모임이므로 법과대학 강단의 개선점, 학생과 교수의 올바른 관계설정, 수업방법이나 분위기의 개선, 교수들의 복지 문제, 법학교수들의 재교육, 교수의 기본적 행동기준 설정, 교수편람 제정, 무분별한 저작권 침해 방지와 자료 인용기준 설정 등 할 일이 많은데 법학교수회가 각 학회의 기본임무인 연구발표모임을 스스로 한다는 것은 소속교수들이 이 단체의 기본 목적과 성격조차 정확한 인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한국법학교수회와 같은 동업자 단체는 회원인 교수들 간의 잦은 소통의 기회를 갖고 단결하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미국처럼 faculty union이 되어 오직 자기네 이익만 챙기는 노조적 성격은 곤란하지만, 한국법학교수회는 창립 후 자기네들끼리 1년에 한 번이라도 모인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단결된 목표와 요구를 낸 일이 없습니다. 자주 모여서 학문 분야의 새로운 변화를 인식하고 그동안의 인간적 소통을 통하여 법학 교수들의 유대를 강화하고 축제모임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러한 기회를 한 번도 안 가졌다는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독일의 Jahrestagung이나 미국의 법학 교수 단체가 여러 가지 유사한 행사를 힘써 기획하는 것을 예로 들 필요도 없습니다. 엄청난 토론을 거쳐서 매년 개최하기가 힘드니 앞으로 2년마다 한 번씩 한국법학자대회를 갖기로 어렵사리 결정했습니다. 마침내 준비에 참여한 분들의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1998년 10월 22일 ‘헌정 50년과 법학 - 한국법의 과거·현재·미래’라는 주제로 제1회 한국법학자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러나 법학교수들의 호응이 미약하고 법원이나 법무부 등이 공동주최를 제안하는 바람에 2000년 10월에 열린 제2회 행사부터는 ‘한국법률가대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한국법학교수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등 5개 기관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 후 제가 국제형사재판소장으로서 몹시 바쁜 중에 기조연설을 하고자 어렵게 귀국해 보니 커다란 회의장 대강당에 판·검사, 변호사 및 법학 교수를 합쳐서 약 50인 미만이 자리를 채운 채 넓은 회의장이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2007년 한국법학원육성법 시행 이후 한국법학원이 이 대회를 주관하고 대법원, 헌법재판소,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한국법학교수회 등이 주최하고 참여하는 큰 행사로 이어지고는 있으나, 이제는 실무법조인 중심으로 행사의 성격이 바뀐 상황입니다. 교수들의 인식 부족으로 자기네의 안방을 실무가에게 넘겨준 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법학자대회의 본뜻을 모르는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사건을 위임받아 처리하는 변호사 집단이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담당하는 판·검사 집단을 만나는 모임을 갖거나,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가 서로 연례행사를 핑계로 모여서 사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두들 법조윤리적으로 남에게 의심을 살만한 모임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사 법조인들의 투철한 윤리의식으로 아무 문제없는 모임을 갖더라도 사건 당사자와 일반국민이 사건처리의 공정성을 의심합니다. 결국 세계의 새로운 학문 동향을 알아내어 학계를 살찌게 선진화하고 판례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법학자들만이 할 일이지, 재조나 재야에서 활동하는 법조인들이 모두 같이 할 일은 아닙니다. 법학자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부지런히 새로운 사회변화에 맞는 새로운 법리를 치열하게 연구·토론하고, 이를 발전시켜 실무에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는 것이, 내실 있는 기여의 방법이자 재조 법률가들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일일 것입니다. 실무법률가들은 변호사 연수대회라든지, 법관이나 검사의 재교육 기회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으므로 그들대로 따로 멋진 대회를 하면 됩니다. 사실 법관이나 검사가 한국법률가대회를 핑계로 참여한다고 해도 그들은 본질적으로 계급사회이므로 유용한 소통과 토론이 이루어지지도 않으므로 그들만의 재교육 프로그램 외에는 한국법률가대회에 모두 섞여서 참석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선정된 제목에 관하여 토의하는 시간 외에는 자연히 재조, 재야 그리고 법학자들의 사교모임이 되고 마는데, 이러한 어울림이 국민의 의심을 촉발시키지 않는다면 이상하겠지요. 미국이나 영국의 법관이 친척을 포함, 아무도 안 만나는 바람에 얼마나 외로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직업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대법관의 방을 브로커가 여덟 번씩 드나들었다는 뉴스는 이제 전 세계가 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외국여행 기회마다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우리 법조인의 우수성과 높은 윤리성 그리고 제2차 대전 후 독립한 나라 중에서 정치적 만난을 극복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한국만큼 유지해온 나라가 없다는 점을 입이 아프게 말하다가 이제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셋째, 연구하여 논문을 쓰는 것이 본업인 교수들이 남의 글을 인용하는 기준도 없고, 무슨 종류의 잡지를 인용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듯하여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저작권 보호상 남의 글을 한 번에 얼마나 길게 인용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지 심지어는 남이 평생 연구한 결과를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을 저자 이름만 바꾸어 자기 책으로 출간하면서 출처를 밝혔으니 잘못이 없다는 변명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컨대 남의 저작물을 인용하는 기준과 방법이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이 되지 않아서 한국법학교수회가 “논문작성 및 문헌인용에 관한 표준”이라는 책자를 2000년에 발간하여 전국의 법대에 보냈으나, 아무런 반응을 들은 일이 없습니다. 그 후로 일부 법대 또는 법학연구소에서 동일한 작업을 중복적으로 해서 법과대학에 배포했으나 역시 반응은 전무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법학교수들이 인용기준과 방법을 만들어 전체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토론하여 확립하고 또 빈번한 개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도서관 협회와 협력하여 남의 글을 3분의 1 이상 복사하지 않도록 제지하는 등 실천적?구체적 조치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서울대에서조차 제출된 심사용 학위논문을 보면 참고문헌으로 수험 잡지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교수 임용 내지 승진 심사를 하는 데 학문적 업적으로 자기 교과서를 제출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수험 잡지가 학문적 인용 자료로 쓰일 가치가 있을 리도 없고, 수강생의 편의를 위하여 상재한 강의노트가 학문적 연구업적이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한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넷째, 법학교수는 공채과정을 통하여 임명되면 초창기의 짧은 대학별 오리엔테이션 과정 외에는 정년퇴직할 때까지 재교육을 받는 일이 없는 특이한 직종입니다. 판·검사, 변호사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극명합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교수가 가르쳐야 할 지식이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하는데, 이를 새롭게 배우고 익히는 데 무관심합니다. 법학 교수 재교육 문제를 열심히 주장했으나, 역시 호응은 전무했습니다. 가능하면 한국법학교수회가 매년 주제를 정해서 교수들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다섯째, 교수로 임명되면 한국법학교수회는 그들의 교수 사회에서의 행동준칙을 담은 교수편람을 한 부씩 나누어 드려서 참고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우선 남의 글을 인용할 때의 기준과 기본 예의, 논문에 표시되는 연구자의 표시방법, 캠퍼스에서 자주 발생하는 성희롱의 기준과 대처, 외부활동의 기준과 범위 및 우선순위, 교수방법과 강의안 준비 등 여러 가지 기초적 문제를 담은 편람을 작성하여 이를 전체 교수에게 배포하였으나, 지금껏 어느 교수가 문의를 했다거나 업데이트된 개정보완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습니다.로스쿨을 도입하자는 논의는 전연 준비 없이 김영삼 정부 초기에 불쑥 정책담당자의 아이디어 발표가 효시가 되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습니다. 법학계는 갑자기 퍽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는 당시 하버드 로스쿨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문교부 고위직을 비롯하여 경쟁적으로 들이닥치는 수많은 한국 시찰단을 한 학기 내내 맞이하느라 강의에 무척 지장을 받았습니다. 관광이 목적인지 사적 용무를 보는 것이 중요한지 경쟁적으로 들이닥쳐서 자녀가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가는 방법 등 사적 용무만을 주로 문의했었습니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은 사법개혁을 그의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분이므로 당선되자마자 사법개혁추진대통령위원회(사개추위)를 구성했습니다. 저는 헤이그에서 국제형사재판소장의 일에 너무 바빠서 위원 위촉을 극력 사양했으나, 로스쿨 도입이라는 중요한 의제가 있으므로 대통령의 강권으로 한 달에 한 번씩 개인 비용으로 참석했습니다. 위원 구성은 당연직으로 내각의 10여 명 관계 장관들이 참석했으나 일체 관심이 없었고, 로스쿨 도입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관해 민간인 위원 중 미국 로스쿨에 경험이 있거나 정통한 분이 없어서 의미 있는 논의 자체가 이루어지기 어려웠습니다. 답답한 나머지 노대통령과 독대를 하면서 미국의 법률문화 발달의 이유와 로스쿨의 연혁, 현재 미국 사회에서 로스쿨의 역할과 기능 및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기업들과 동문들의 막대한 기부 등을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나 어느 기업이 어느 한 로스쿨에 막대한 후원자금을 지원하는 경우를 생각하기 어려우니, 정부가 당장 필요한대로 1조 원을 로스쿨 지원자금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울러 교수들의 의식이 바뀌어서 새로운 로스쿨에서는 강의 방법도 달라져야 하고 학문 후속세대 양성의 틀도 바뀌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야지 다른 변화는 전혀 없이 간판만 바꿔 단다고 새로운 로스쿨이 탄생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씀드렸습니다. 노대통령은 자금조달은 본인이 앞장서서 궁리해 볼 테니 필요한 교수들의 의식전환 등은 송 교수가 한국법학교수회를 중심으로 맡아서 성공해 주기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후 한국법학교수회를 중심으로 “로스쿨이 도입되면 민법의 경우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라는 식으로 법 분야별 시리즈 토론 준비회를 개최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호응해서 참가한 분의 숫자는 말씀드리기 창피할 지경으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로스쿨이 도입되면 어떻게 소위 소크라틱 메소드를 도입해서 가르쳐야 하는가, 교실에서 일방적으로 떠먹여 주는 강의방식 대신 다양한 토론방식을 어떻게 리드할 것인가, 이에 따른 시험문제 출제와 채점기준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로스쿨을 도입하면 학문 후속세대 양성의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가와 같은 끝없는 문제제기가 줄기차게 이루어져도, 어느 교수도 관심을 보이는 분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로스쿨이 당면한 가장 큰 현실입니다.로스쿨 도입과 관련한 또 한 가지 문제로 당시 교수들에게 목이 터지게 강조했으나 아무도 관심이 없더니 요즈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이 있습니다. 로스쿨 도입이 결국 미국의 제도를 가져오는 것인데, 미국의 경우에는 매 7년마다 로스쿨을 평가하므로, 법조 실무자보다 교수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평가의 주도권을 잡지 않으면 곤란해질 것으로 예상되어 그에 대한 방법을 강구하도록 힘주어 말했지만 역시 듣는 분이 전무했습니다. 저는 NYU의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매 7년마다 로스쿨을 평가하는 팀을 맞이하여 NYU 로스쿨의 평가를 준비하고 이에 대응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퍽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일찍부터 교수의 평가주도권 문제를 강조하였으나 허공의 메아리였습니다. 지금 변호사회가 강한 권한을 갖고 로스쿨을 평가하면서 학문적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대부분의 로스쿨을 박하게 평가하여, 여러분이 창피한 것은 둘째이고 학사행정에 지장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한국법학교수회는 전 법학교수 1,600여 명이 단결해도 모자랄 텐데 모두들 일부를 쪼개는 명분을 세워서 새 간판을 들고 나갑니다. 로스쿨 교수와 법과대학 교수가 다른 단체를 구성할 만큼 성질, 기능, 목적 등에 있어 차이가 있나요? 한국법학교수회를 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이라고 보면, 법학자들과 주변의 유사법학자들이 단일한 단체로 모여도 아무 지장이 없고 오히려 단결된 힘으로 공통의 이해관계를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학교수들의 분열적 태도는 엄청난 자해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 같은 문제점들이 누적된 결과, 오늘날 법학 교육의 위기 상황은 통계로도 명백히 확인되고 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제도 시행 이후 법학전공 학생 숫자는 2023년 기준 19,672명으로 약 72%가 감소하였고, 법학 분야의 4년제 대학 전임교원은 2022년 기준 1,606명으로 15년 만에 100여 명이 줄어 전체 전임교원의 2.19% 수준으로 축소되는 등, 법학교육이 전반적으로 위축되었습니다. 또한 15년의 운영 결과 법학전문대학원 재정은 사립대가 평균 13% 감소하였고, 국공립대는 강원대, 서울대, 제주대, 충북대에서 약간 증가한 것을 제외하고는 평균 26%가 감소하는 등, 대학들도 저마다 현실적 난관에 부딪힌 실정입니다. 대학에서의 법학 교육에 대한 내실 있는 지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이러한 상황은 로스쿨제도의 표본으로 인식되는 미국과는 매우 대비되는 현상입니다. 미국은 법률가 수가 지난 20년간 약 30만 명이 증가하여 현재 약 133만 명에 달하고, 법률서비스 시장 규모도 지난 20년간 3배 가까이 성장하였습니다. 특히 미국의 주요 로펌들은 약 200개에 가까운 해외 사무소를 개설하고, 서울에는 한미 FTA에 따른 법률시장 개방 이후 2019년까지 18개의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국제무대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즉, 변호사 수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경제규모에 맞게 법률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해외무대를 향하여 공격적으로 진출함으로써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양상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각자 이해득실을 따지고 법률가의 수를 제한하는 데 급급하여 법학 교육의 파행과 법학의 위기를 자초하였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넓은 시야로 우리 수준에 맞는 법률시장 규모를 갖추고, 국제무대로 적극 진출해야 할 것입니다.마지막으로 두 가지 방향만 말씀드리고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선 교수님들이 모두 미래를 향하여 관심을 가질 방향은 법조 직역의 국제화와 AI 대응성이라고 생각합니다.먼저, 오늘날 우리 법학의 국제성 내지 국제화는 과거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의 법학은 일제의 영향을 그동안 꾸준한 노력으로 어느만큼 극복하였고, 일본학계가 서구의 연구결과를 그대로 가져다가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번안한 것을 그대로 우리의 것으로 의지해 왔던 불가피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본학자의 저서를 번역하여 최초에는 역(譯)으로 출간하다가 조금 지나면 슬쩍 편역(編譯)으로 바뀌었고 기회가 되면 뻔뻔하게 저(著)라고 하는 기막힌 진화과정을 겪었습니다. 어느 분은 일본 또는 독일의 교과서를 그대로 번역하여 자기 저서로 삼는 교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법학 교수 여러분은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받으신 선배들과 달리 일본어 대신 영어나 유럽어를 하시기 때문에, 이제는 서양의 원전을 일본 사람보다 먼저 또는 동시에 접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취득 또는 각색할 수 있습니다. 법학 교수 여러분은 이러한 국제적 학문의 발전과 새로운 동향을 가장 먼저 접하여 연구하면서 법조실무계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공급하시는 것은 물론 어느만큼의 자극도 주실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은 법학자만이 할 수 있는 황금역할인데 이를 왜 방기하시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지금 세계는 우리가 사는 환경이 급변하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거나 여기에 적용되는 법리가 엄청난 속도로 변화?발전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ICC의 창립으로 인한 국제형사법의 발전, 윤리·도덕 기준의 변경, 우크라이나와 중동전쟁으로 인한 국제법의 새로운 형성과 같이,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법적인 쟁점들이 날마다 등장하고 관련 법리가 새로 생성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대응하면서도 그 근간이 되는 기본적 이념과 법리에 맞게 한국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법학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또 한 가지 법학 연구의 국제화를 위하여 말씀드릴 것은 국내에서 법률문제를 다루더라도 국내의 학설과 대법원의 판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2015년 유엔에서 마련한 SDG 17개, 그중에서도 특히 SDG 16이 내포하는 가치기준을 우리의 입법이나 법률 조문의 해석하는데 어떤 의미나 영향이 있는지 늘 같이 검토하는 습관을 들이셔야 앞으로 법학의 국제화가 진전됩니다.또한 한국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되었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후진국의 의식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상대방 국가들이 우리를 우러러보면서 우리로부터 배울 기대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식구조와 행태는 그들이 기대하는 만큼 상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우선 남북한도 구별 못하는 상황을 바로잡아주기 위하여 우리의 분단의 역사를 포함한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잘 정리하여 간단히 준비하고, 한국의 법제도 전반을 요약함과 아울러 자기가 다루는 직무에 관한 경험과 현실을 요령 있게 서술하여 그들과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묻거나 제공하는 것에 관하여는 격조 높은 상호토론을 리드하여 확인함이 꼭 필요합니다. 외국을 방문하면서 막연히 자료를 요구하고는 관광에만 주로 관심이 있는 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국제형사재판소장을 할 때도 만나자는 요구는 엄청나게 많아도 막상 만나서는 할 말이 없거나 개인적인 질문을 하여 시간을 낭비하고는 비싼 선물을 강제로 떠맡기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떠나는 수많은 후진국의 관리와 교수들을 보고 저는 우리의 현실을 보는 듯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고급선물은 일정한 가치가 넘으면 신고하는 절차가 복잡하니 차라리 안 받는 것이 더 낫습니다. 통역도 현지 대사관의 말단 젊은 외교관을 데리고 오니 의사소통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가끔 방문하시는 한국 학자들이 준비를 철저히 해오시고 태도가 당당한 것이 좋아 보였습니다. 법조인이 모두 뛰어난 인재임에 틀림없지만, 조금 더 국제적인 안목을 구비한 선진국인의 입장에서 우리를 만나는 상대방의 기대를 만족스럽게 채워 줄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AI 대응성입니다. 지금 과학기술 환경이 너무 빨리 변하므로, 법학이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기술개선이 이루어지는데 그때마다 지적재산권적 보호조치를 취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지금 Naver만 가보셔도 AI 전쟁의 격전지이고, 우선 세계 최초로 110대의 AI 로봇이 근무하는 Humanoid 복합생태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인간과 로봇이 공생하여 수평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새로운 미래문명을 위한 협력적 시너지 창출을 목적으로 한 실험적 digital twin 업무공간입니다. 세계는 바야흐로 치열한 AI 전쟁 중인데 우리 법조인은 가만히 있어서 되겠습니까. 지금의 AI는 단순한 과학기술적 용어를 넘어서 Digital, Smart를 잇는 과학기술문명의 총칭입니다. 현재 이것은 국가 차원의 패권 전쟁의 핵심이기도 하기에, 중국과 미국의 치열한 대립으로 신제국주의적 양상마저 띠고 있습니다. 이제 장차 30여 년 동안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AI 문명 속에 세계가 기술경쟁체제로 재편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AI 솔루션 차원을 넘어, 반도체와 로봇, 빅데이터, 클라우드, IoT, 메타버스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탄생하는 거대한 미래문명의 치열한 헤게모니 싸움이 되고 맙니다. 미래 AI 주권은 데이터의 양이 절대적으로 좌우하므로, 새로운 정보지식이 어떤 언어로 생성되느냐에 따라 종속적 정보식민지의 길로 갑니다. 우리는 다행하게도 미국의 데이터 우산 속에 들어가 있지 않는 드문 나라이고, 자유진영에서는 유일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필요한 전력, 데이터센터, 인프라, 소프트웨어 등 6-7개 영역이 모두 갖추어진 국가가 한국입니다. 어렵게 일군 우리 조국이 세계 3차 대전인 AI 전쟁에서 맥없이 무너지지 않도록, 법조인이 할 일이 많습니다. 법조인들은 만일 Naver가 제3극(極) 플랫폼 서비스기업이 되었을 때, 즉 미국, 중국의 2극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대해 자립형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플랫폼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특히 법률, 금융, 교육 분야는 소위 AI의 ‘먹잇감’이라고 자타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Naver도 Sovereign AI(Sovereign Cloud)를 세계적으로 먼저 개발하여 전반적인 우리 생태계에 사용되도록 불철주야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Sovereign Cloud를 이용한 비즈니스 연구개발, 제조, 교육, 공공, 국방, 법률, 문화 등 활용범위가 무한히 넓으므로, 법률분야도 역시 이에 대응하는 연구팀이 필요합니다. 아직은 미국 편향적 거대 AI가 중심이지만, 자국의 문화와 가치, 즉 국가정체성, 역사성, 미래성, 핵심가치와 한국인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윤리가치관을 정립하여 AI에 집어넣는 작업은 우리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긴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법학자와 법률가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많은 연구 기타 작업이 AI에게 잠식되어 일거리를 잃게 된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법학자와 법률가들이 앞장서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동하여 Sovereign Cloud에 우리나라 고유의 가치를 불어넣는 중요한 작업을 할 수 있고, 어렵게 개발한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법을 연구해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AI와 관련해 법학자들이 연구할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 예컨대, 자율주행 자동차의 규제를 위한 새로운 연구를 통해 법조인의 새로운 일거리를 창출할 수도 있고, 이미 일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만큼, 로봇에 들어가는 비싼 laser scanner를 카메라 사진으로 대체하여 싸게 대량 보급함으로써 건물 내에서 수많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 일상 속의 AI나 AI 환경에 대한 연구 역시 우리 법학계의 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건물 외부에서조차 또한 값싸고 빠르고 정확한 3D modelling 방식을 사용하여 도시설계 시, 영화 촬영 시, 부동산 매매 서비스 시, 또는 자율주행 시 등에 활용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지적도, 각종 대장, 등기부에 의존하지 않고 거래를 할 수 있게 될 때 과연 개인의 재산권을 다루는 법학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생각해 내야 합니다. 지금 든 예는 민간 부문에서 AI의 사용 문제를 말한 것이고 곧 한국이 소집하는 REAIM(Responsile AI in the Military Domain) 회의에서는 AI를 군사 분야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논합니다. 법학자들은 새로운 기술에 대응하는 규범을 형성하는 일뿐 아니라, 이러한 기술적 발전을 뒷받침하는 핵심가치와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요컨대 국제성과 AI 대응성이라는 새로운 방향은, 우리 법학 연구와 교육에 있어 관점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큰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경험을 통해서 법학교수 여러분의 각성과 단결 그리고 새로운 변화와 변화하는 패러다임 속에서 으뜸가는 학문의 첨병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제 말을 끝마치겠습니다.서울법대 명예교수, 전 한국법학교수회장 송상현한국법학교수회 60주년 선언문하나. 법학은 인류의 유원한 학문사에서 각별한 지위에 있다. 근대 학문의 발전을 추동한 대학 교육의 중심에는 법학이 있었다. 이것은 법학이 사회의 정의로운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법의 원리와 작동을 규명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 서구의 법체계를 받아들인 우리는, 우리 현실에 적합한 법학의 모습을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그 결과 우리 법학은 지금의 수준을 성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법학을 단지 법조인 자격시험을 위한 기술적 지식으로 여기는 세간의 깊은 오해도 존재한다. 이러한 인식은 법학전문대학원 체제의 출범 이후 더욱 커져 왔다. 그와 동시에 학문 체계의 일원으로서 법학이 온당히 누려야 할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여러 법학과들이 폐지됨에 따라, 법학전공 학생과 교원의 수가 급감했고, 그에 따라 법학논문의 수도 줄었다. 이것은 개별 법학 분과를 초월한 전반적인 현상이지만, 법의 근본문제와 배후원리를 탐구하는 기초법학의 두드러진 퇴조는 특히 뼈아픈 징후가 아닐 수 없다. 법학의 환경은 이처럼 빠르게 악화되었으나, 우리 사회의 대응은 부진하다. 우리는 이 상황을 ‘법학의 위기’로 규정해 경각심을 촉구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이제는 ‘위기’라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다. 지금, 우리는 실로 법학의 삶과 죽음이 갈리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막연한 기대로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이에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법학의 사명을 함께 되새기고, 법학이 미래를 희망하기 위해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힘주어 말하려 한다.둘.우리는 법학이 추구하는 목표를 다음과 같이 확인한다.첫째, 법학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실현에 복무한다. 우리 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한 법적 인격체들의 결사체로서, 자의와 폭력이 아닌, 정당한 법의 지배를 추구한다. 이를 추진하는 법학은 민주적 법치국가의 이념을 실천하는 수단이다.둘째, 법학은 정의의 실현에 헌신한다. 법학은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고, 이를 보장함으로써 사회를 정의롭게 만든다. 이해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고, 갈등을 해결하며, 권력과 강자의 횡포를 방지해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법학의 중차대한 과제이다.셋째, 법학은 비판정신을 구현한다. 법학은 법이념과 법원리에 입각해 현행법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고, 이로써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돕는다.넷째, 법학은 이론과 실무의 균형을 추구한다. 실무 없는 이론은 자족적이기 쉽고, 이론 없는 실무는 맹목적이기 쉽다. 양자를 통합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법학은 주어진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없다.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이후 실무 교육의 비중이 늘었지만, 실무적 역량은 충분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꽃피울 수 있다.다섯째, 법학은 자신의 이념과 원리를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교육을 필요로 한다. 이 교육은, 학문 연구에 매진할 ‘법학자’, 분쟁의 실무적 해결에 기여할 ‘법조인’, 법적 소양을 갖춘 ‘민주시민’을 포괄적으로 양성하는 전문적 과정이다. 특히 학문 후속 세대의 양성은 법학의 지속과 발전을 위한 주춧돌이다.여섯째, 법학교육은 문제의 새로움을 포착하는 ‘분별력’과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추론력’을 함양하는 과정이다. 사회와 법의 구조적 변동은 늘 새로운 법적 문제를 수반한다. 법학교육의 성공 여부는,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법학자와 법조인, 그리고 민주시민을 올곧게 양성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법적 추론력은 법의 원리를 충실히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법적 지식은, 반복된 주입이 아니라, 법의 원리에 기초한 추론의 결과로서 습득되어야 한다.셋. 우리는 법학이 당면한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 다음 사항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첫째, 법학의 지속과 발전을 위한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 법학의 위기는 현행 법학전문대학원이나 변호사시험 같은 제도의 문제로 초래되었고, 법학의 쇠퇴는 법학이 수행해 온 기능을 해쳐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 상황을 단지 법학자들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기초법학을 위한 특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실무나 자격시험에서 즉각적인 효용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기초법학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기초법학의 뒷받침이 없는 법학의 발전이란 주춧돌 없이 집을 짓는 일과 같다. 기초법학의 발전을 위한 제도적 대책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법학전문대학원 교육과정은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본연의 목표에 맞게 재검토되어야 한다. 변호사시험 과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법학 분과는 각각의 사회적 기능과 교육적 필요성을 가진다. 우리가 원하는 ‘다양한 법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힘은 ‘다양한 법 분야의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넷째, 학부 법학의 중요성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 체제 이후 학부 법학의 지위는 계속 약화되어 왔다. 그러나 법학교육의 공급이 큰 폭으로 축소된 현재, 학부 법학의 독자적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학부 법학은 법적 소양을 갖춘 민주시민의 양성을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 역할은 우리 법치주의의 발전을 위한 소중한 자원이다.다섯째, 변호사시험은 법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과 능력을 가늠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법학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법학교육의 목표를 실현하는 데 변호사시험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변호사시험 제도는 법학교육의 목표를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 합격률을 포함하여, 기존 시험제도가 법학교육의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면밀히 평가하고,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넷.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울려 퍼진 이 선언이 법학의 새로운 희망과 도약을 위한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법학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법학이 앞으로도 여전히 자신의 학문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2024. 9. 6.한국법학교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