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의 소설이 용기를 주자 비로소 용기가 났다.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이와 더 오래 함께할 용기.” _김화진(소설가)인간 개개의 삶이 깃든 무수한 이름들을 호명해온 작가,이기호 11년 만의 본격 장편소설애정어린 목소리로 불러보는 강아지들의 이름과 그 애잔한 발자취최순덕, 권순찬, 최미진, 한정희, 강민호…… 친숙하고 구수한 이름들을 호명하는 소설로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보편적 본질에 다가서는 작가 이기호. 그가 『사과는 잘해요』(2009), 『차남들의 세계사』(2014) 이후 11년 만의 본격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1999년 데뷔한 작가의 업력을 고려하면 더욱 귀하고 반갑게 느껴지는 이 신작 장편에 등장하는 이름은 ‘이시봉’, 이기호가 초기작을 발표하던 20여 년 전부터 애정어린 목소리로 불러온 특별한 이름이다. 그 이름은 이기호의 인물 중에서도 어딘지 어리숙하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어 더욱 눈길이 가고 마음을 쏟게 되는 이들에게 주로 붙여져왔다. 이 이름을 새로이 받게 된 캐릭터가 인간이 아닌 개라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주목을 요한다.흥미로운 사실은 작가와 실제로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의 이름 또한 이시봉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성씨는 물론 그간 소설 속 캐릭터에게 붙여왔던 이름을 강아지에게 준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반려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가족 구성원으로 대하며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은, 그런데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의 영향권에 있는 태도는 아닐까. 인간의 삶에 포섭되어버린 개, 나아가 동물의 행복을 과연 인간의 시선으로 판가름할 수 있을까. 이미 별개의 종으로 태어나버린 두 존재는 서로를 어디까지 이해해나갈 수 있을까.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작가 자신의 이러한 의구심과 문제의식 아래 쓰인 작품이다. 소설은 비숑 프리제 ‘이시봉’이 어느 가족의 삶에 깃들기까지 펼쳐졌을 우여곡절의 여정을 부려놓는다. 그 개가 이시봉이라는 이름을 얻는 계기에는 세상의 부조리에 동료를 배반하게 된 인간의 속죄 의식이, 그 개의 일족이 개 농장에 팔려간 과정에는 꿈을 좇은 대가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인간의 비참한 눈물이, 그 개의 선조들이 무려 유럽 왕실에서 길러지다 뿔뿔이 흩어지게 된 내력에는 사랑도 투쟁의 형식으로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의 반복되는 역사적 과오가 자리한다. 개들의 일생을 몇 대에 걸쳐 좇아나가며 인간의 삶과 교차시키는 작업을 통해, 이기호는 무한한 사랑을 받기도 하고 이용된 끝에 잔혹하게 희생되기도 하는 ‘비인간’ 동물과, 그들과 공존하는 ‘비동물’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