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돈의 지혜

돈의 지혜

저자
파스칼 브뤼크네르
출판사
흐름출판
출판일
2019-05-07
등록일
2019-05-17
파일포맷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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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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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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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람은 돈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철학자가 된다!”

메디치상과 르노도상을 휩쓴 세계적 지성 파스칼 브뤼크네르 신작



고대부터 현대까지 노동, 종교, 근검절약, 결혼, 에로티시즘, 욕망, 죽음, 기부금, 자본주의, 정신분석학, 문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돈’의 의미를 재해석한 책. 돈에 대한 통찰을 다루고 있는 에세이임에도 이 책에서는 경제학자들의 이름보다 소설가, 철학자의 이름이 훨씬 더 많이 언급된다. ‘돈’과 ‘지혜’라는 다소 어색한 두 단어의 조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이 책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비법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대신 왜 우리가 돈을 벌고 있는지, 그리고 그 돈을 벌려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자산으로 축적한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빛나는 성찰을 만나볼 수 있다.

돈이 우리의 영혼을 정복한 것인가,

우리가 돈을 해방자로서 기꺼이 맞아들인 것인가?

돈의 가치와 삶의 철학이 빚어낸 웅숭깊은 사유의 향연!



돈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뭐든지 할 수는 없다. 돈은 언제나 우리의 기분에 휘둘리지, 엄밀히 말해 그 자체가 출처는 아니다. 돈이 나르시시즘, 힘을 쥐려는 의지, 종교적?정치적 선전, 계급불평등, 자존심의 원동력을 빚어내는 게 아니다. 명예, 재주, 온갖 위대한 감정의 순결한 땅을 돈이 침범할 거라고? 장난하나! 돈은 기껏해야 액셀러레이터 노릇을 할 뿐, 절대로 제1원인이 아니다. 시장이 우리 삶 속에 들어왔다면 우리가 그렇게 공모했기 때문이다. 돈이 우리 영혼을 정복한 게 아니라 우리 영혼이 돈을 해방자로서 맞아들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철학과 경제학, 인문학을 넘나드는 세계적 지성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전하는 돈의 철학!



돈은 빤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 중 하나다. 정말이지 돈은 저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표현대로 “생활 본위의 상스럽고 성가신 평민과 같다”. 돈은 그 자체로 당연해 보이지만 좀체 밝혀지지 않는 미스터리다. 단어에도 이 신기한 애매성이 녹아 있다. 프랑스어에서 돈(argent)은 오랫동안 화폐 주조에 쓰였던 금속(은)을 뜻한다. 우리말의 ‘돈’ 또한 돌고 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돈’ 그 자체로는 본래 어떤 지향성도 내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다 쓰지 못할 만큼 많은 돈을 벌고 쓰며, 그 돈을 권력으로까지 사용하기 시작하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돈은 수많은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천박하면서도 고귀하고, 허구이자 현실”인 존재가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순을 배제하면 돈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돈은 사람을 갈라놓기도 하고 맺어주기도 한다. 또한 돈이 지나치게 넘쳐나도 두렵고, 모자라도 두렵다. 오늘날 돈은 악을 행하는 선일 수도 있고, 선을 행하는 악일 수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런 돈 앞에서 인간은 한없는 욕망에 허덕이다가도 윤리적 당위성 앞에서 고뇌하는, 똑같이 모순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표현을 썼다. “모든 사람은 돈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철학자가 된다”고.

저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지성이다. 소설가이자 철학자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비터문」(1992)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던 동명소설 『비터문』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해하기 쉽지만 웅숭깊은 철학이 함축된 글로 주목받았고,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며 특유의 재치와 통찰력을 인정받았다. 1995년에 『순진함의 유혹』으로 프랑스 3대 문학상의 하나인 메디치상을, 1997년에 『아름다움을 훔치는 사람들』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프랑스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으며, 2002년에는 경제학 에세이 『번영의 비참』으로 최우수 경제학도서상(Prix du livre d‘?conomie)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소르본대학과 디드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인문학도로서 파리 정치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기도 한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이 책 『돈의 지혜』에서 브뤼크네르는 자신이 쌓아온 역사적, 문학적, 종교적, 철학적, 경제학적 지식과 깨달음을 모두 쏟아 부어 돈에 대해 성찰한다.



부(富)에 대한 인간의 욕망 너머를 관통하는 프랑스 에세이의 진수!

철학과 문학, 성경과 신화를 아우르는 인문의 프리즘으로 돈을 읽다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에게 빵과 책을 주면서 둘 중 어느 것을 가지겠냐고 묻는다면 아이는 망설이지 않고 빵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고 가치 있는 선택’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우리는 돈으로 빵을 살 수도, 책을 살 수도 있다. 빵은 아이에게 단기적인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면에서 분명 유용하다. 그러나 책을 사서 아이에게 주는 것은 장기적인 교육을 약속한다는 점에서 더 지혜로운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이 어떤 쪽으로 기울어 있느냐에 따라 ‘가치’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돈의 지혜』의 저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처한 딜레마를 이야기하면서 돈이 많든 적든, 양적인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의 사용법에 있어서의 질적인 차이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풍요는 우리의 가장 유치한 욕망, 돈을 펑펑 써서 모두를 뒤로 나자빠지게 하고 싶다는 욕망을 구체화한다. 애덤 스미스 이후로 모두가 안다. 부의 추구는 타인의 인정과 공감에 대한 추구라는 것을, 사랑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픈 욕망이라는 것을.”(226쪽)

저자의 다채로운 이력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책에는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방대한 양의 문학적 인용이 담겨 있다. 돈을 주제로 한 책에서는 보기 드문 인문학적 코드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읽는 재미를 준다. 브뤼크네르는 빅토르 위고, 볼테르, 루소 등 유명 지성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성격을 분석하며 근대부터 현대까지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모한 ‘돈’의 가치와 상징성을 비교하고 대조한다. 또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주의 등이 내세운 돈에 대한 철학적 담론과 신화, 성경, 코란까지 다뤄, 돈이 우리 모두의 삶을 지배하는 지배자의 위치에 서기까지 어떤 사상적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겪으며 변화해왔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제1부 〈숭배하는 무리, 경원하는 무리〉에서는 돈을 대하는 인간의 이중적 태도를 역사적, 종교적 맥락 안에서 다룬다. 중세 시대, 금욕주의를 강조하던 기독교 세계에서 돈은 부정적인 존재였다. 권력자들은 피지배층에게 돈을 탐욕과 결부시켜 설명했고 가난한 것이 미덕인 것처럼 선전했다. 당연하게도 권력자들은 뒤로는 차고 넘칠 만큼 돈을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돈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물을 바치는 일과 헌금을 내는 것은 인간이 진 빚을 신께 갚아나가는 일로, 신자라면 당연히 짊어져야 할 매우 중요한 의무로 설교되었다. 신성한 교리는 받기만 하는 종교인들의 위세를 공고하게 지지해주었고, 회개와 구원에 값이 매겨지면서 부자들은 종교계로부터 더욱더 사랑받는 대상이 되었다. 물론 중세시대의 종교 권력은 황제의 위세만큼 강력해 부자들의 구애를 많이 받았겠지만, 이런 현상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저자는 오늘날의 신을 탐욕을 상징하는 신인 ‘마몬(Mammon)’이라고 요약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돈이 곧 신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의 연장선에서 돈을 금기시하는 프랑스와 돈이 영혼인 나라인 미국의 사례를 차례로 살펴본다.

제2부 〈금송아지를 둘러싼 세 가지 신화〉에서는 첫째 돈이 세계를 지배하는가, 둘째 풍요로움이 행복의 절대 기준인가, 셋째 사랑이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인가라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룬다.

먼저, 돈이 세계를 지배하는가에 대해 저자는 돈은 무언가의 수단일 수밖에 없는 2인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돈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화로 인한 세계화 시장이 결국 세계를 움직이는 척도가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자본주의만큼이나 역사가 깊다고 할 수 있는 상업의 역사를 짚어보고, 여러 유명 인사들과 철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도 자본도 아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에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레비나스, 플라톤, 계몽주의 학자들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결국 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존재하는 대상을 사는 수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 삶에 필요한 본질적인 가치들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적인 가치, 도덕적인 선이 인간의 삶에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둘째, 풍요로움이 행복의 기준인가에 대해서는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도스토예프스키 등 여러 문인들의 개인적인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에게 돈이 진정 행복을 추구하는데 이바지했는지 따져보고 독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많은 사람이 더 큰 부를 축적하기 위해 빚을 내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예상하며 대출을 받는데, 크레딧(credit) 개념이 처음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와 원인, 그 발달 과정에 대한 내용을 함께 다룬다. 그러면서 저자는 ‘행복’ 그리고 ‘웰빙’이라는 매우 주관적인 단어의 의미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착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집중 분석한다. 브뤼크네르는 행복지수가 잘사는 부자 나라, 즉 선진국이 아니라 못 사는 빈곤 국가가 더 높게 나온다는 아이러니에 주목하면서, 부의 포만 상태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만족할 줄을 몰라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 욕심을 부리고, 못 가진 자들은 앞으로 가지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셋째, 사랑이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저자는 독일의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Silvio Gesell)이 결혼을 일종의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와 같은 계약 관계로 바라보았음을 예로 들며, 부의 축적이 곧 미래의 삶을 보장해준다고 믿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절에 여성들이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담보물과 같은 존재로 남편감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숭고한 사랑을 죽이는 계산속인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을 던져버리고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어쩌면 이것이 결혼의 진실한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저자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혹은 새드엔딩으로 이어지는 사랑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 이뤄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을 더 숭고하게 여긴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순수한 사랑, 숭고한 사랑보다 철저하게 계산된 사랑이 사랑의 못난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훨씬 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사랑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3부 〈슈퍼리치 오블리주〉에서 저자는 귀족이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와 같이 오늘날의 슈퍼리치들도 부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은 ‘현대의 부자들에게 봉건주의 사회의 산물인 돈 많은 중산층 평민이던 부르주아의 고유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부르주아 계층이 누구인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회고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현대의 신흥 슈퍼리치는 소비의 왕으로서만 군림하며 부르주아적 정신과 철학이 아닌 부르주아적 물질의 풍요에만 초점을 둔 계승자로서 오늘날의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자신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나 윤리적 고민 없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행태를 꼬집으면서, 이들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부의 분배’에 존재하는 현실적으로 장애물들이 무엇이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역사적 맥락 안에서 정리한다. 이에 덧붙여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적인 부자들부터 마더 테레사까지 인류 역사에 기록된 저명한 인물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썼는지 자세히 설명하면서 돈의 참된 가치와 사용법에 대한 사례들을 열거한다. 이를 통해 돈을 지혜롭게 쓴다는 것에 대한 실질적 근거를 제시한다.



부자인 것이 범죄가 아니듯, 가난이 미덕은 아니다!

돈을 대한 새로운 통찰과의 만남



돈의 지혜로움에 대한 얘기를 마치면서 우리는 인간이 가져야 할 세 가지 미덕과 세 가지 의무 사항을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미덕은 ‘자유’와 ‘안정’ 그리고 ‘마음의 평화’다. 그리고 이 미덕이 ‘정직’, ‘균형, ‘나눔’이라는 의무와 조화를 이루어야만 비로소 돈의 지혜로움이 완성된다. 돈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지나치게 예찬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 평범한 우리들이 소유한 돈은 대부분 일을 통해 얻은 정당한 노력의 대가다. 생각의 주사위가 돈을 어떻게 이해하라고 가리키든 그것이 유리하게 작용할지, 불리하게 작용할지는 일단 주사위를 던진 후에야 알 수 있다. 재산은 결국 인생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은유(메타포)’에 지나지 않는다. 돈 앞에서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현대인들의 정신분열증 증후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려면, 무엇보다도 이 사회가 가장 먼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치유해주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경쟁체제에서 신물을 느낀 요즘 젊은이들은 돈을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돈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고 말한다. 이것은 돈에 대한 생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고, (진심이든 아니든 간에) 돈을 인생의 중심에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자든, 가난뱅이든 돈을 바라보는 자신의 철학에 따라 얼마든지 돈의 노예가 될 수도 있고, 멋진 주인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금전적인 풍요로움이 꼭 정신적인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위로가 될 것이다. 번역자인 이세진 번역가의 표현대로 “돈이 다른 재화나 서비스를 향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관념적인 목표가 되어버릴 때의 위험, 사랑이나 우정 같은 정서적 요소들마저 돈으로 환산하려고 하는 현상, ‘거의 부자인 사람들’에게까지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슈퍼리치들의 파행적인 사치, ‘자발적 가난’의 이중성과 한계, 부를 축복의 표시로 여기는 미국인들에 비해서 다분히 위선적인 태도로 돈을 대하는 프랑스인들의 태도, 자선의 역할과 정부의 역할까지. 부를 향한 욕망을 인정하되 황금만능주의를 경계하고 돈을 정말로 가치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저자의 결론은 일견 밋밋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살펴보는 것들의 면면이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돈을 대하는 인간의 지혜’일 것이다. 『돈의 지혜』는 부유한 사람에게는 돈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지혜를, 부유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스몰 머니’만으로도 멋지고 우아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다.



추천의 글



돈 버는 기술을 말하는 책은 많다. 배금주의를 개탄하고 분노하는 책도 허다하다. 하지만 돈을 화두 삼아 인간 실존의 양면을 응시하고 삶의 심연에서 반짝이는 지혜를 건져 올리는 책은 드물다. 많이 번다는 것과 잘산다는 것이 은연중에 동의어가 된 시대. 얼마면 될까. 돈에 가위눌린 세상의 전신을 향해 정교한 어휘와 명징한 서술로 각성의 칼집을 낸다. 아프지만 새살이 돋는 느낌이 즐겁다. 몽테뉴와 라 로슈푸코의 나라 프랑스 에세이의 진수가 여기 있다. 전병근, 북클럽오리진 대표



나는 돈을 유통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누구보다 돈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돈 버는 방법을 다룬 책은 많이 보았어도 모든 사회적 영역에 침투한 돈 자체에 대한 사유를 담은 글은 그리 접해보지 못했다. 아마 작가들에게 돈은 껄끄러운 사유의 대상이어서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저자는 금기를 넘어 거침없는 문체로 돈에 관한 모든 생각의 결과물들을 보여주며 우리가 가진 위선을 철저히 해체한다. 늘 나의 생활과 함께 하는 돈이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게 이 책의 특징이자 재미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돈에 대한 매혹과 혐오를 철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한 수작. 지적 자극이 넘친다. 크리스토프 오노디비오,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대상 수상 작가, 저널리스트



돈의 함정과 효용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조명한 역작. 로제 폴 드루아, 철학자이자 작가, 칼럼니스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돈, 더 정확히 말하면 돈과 인간의 관계가 우리와 우리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고 주장한다. 고무적이고 시기적절한 에세이! 『르 몽드』



문학계에도 주식 거래소가 있다면, 브뤼크네르는 언제나 가장 안전한 투자처다. 『르 피가로』





책 속으로



돈은 지혜를 추구하는 약속이다. 이 표현은 이중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돈을 갖는 것이 지혜라는 의미도 있고, 돈에 문을 가져보는 것이 지혜라는 의미도 있다. 우리는 돈 때문에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늘 조율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돈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철학자가 된다. 잘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해, 남을 위해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화폐는 참 많은 것을 드러낸다. 노랑이, 수전노, 방탕아, 자린고비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동작 하나로 드러난다. 돈 문제가 쉽고 편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돈을 혐오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속으로는 돈을 우러러보기도 한다. 돈을 떠받드는 사람은 돈을 과대평가한다. 돈을 멸시하는 척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열광은 문제가 되지만 지탄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돈은 어려운 주제다. 하지만 지혜란 본디 만인에게 광기의 상징처럼 보이는 바로 그것을 공략하지 않는가? 그럴 게 아니면 철학이 무슨 효용이 있을까? 14~15쪽

돈에 대한 프랑스인의 지탄은 크게 두 갈래다. 한 갈래는 케이크를 더 잘 나누기 위해서라고 하고, 다른 한 갈래는 금송아지의 존재 자체를 비판하고 돈이 아예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두 갈래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한다. 돈이 마구 넘쳐날 때에는 그 저열한 물질성을 주로 비난한다. 그러다 위기가 닥치고 돈에 쪼들리면 시스템 전체를 욕한다. 이러한 탄원은 이중적이다. 자본주의가 번영하면 더럽고 천박한 냄새가 진동한다고 코를 틀어막으면서 자본주의가 비틀거리면 불공평하다고 또 들고일어난다. 우리는 물질적 부가 자유의 필수불가결한 전제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물질적 부가 만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태도는 우리의 양가적 감정을 뚜렷이 드러낸다. 〈95~96쪽〉



“위대한 몰록 바알 마몬(Moloch Baal Mammon)의 보이지 않는 불길한 손”이 현금을 쥐어짜고 성장 속도를 증진하기 위해 부부를 깨뜨린다고 비판하는 자들에게는 이혼이 상당수 기혼자들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경제적 몰락을 의미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진실한 감정 없이 순전히 돈만 바라본다면 왜 이혼으로 가정의 자산을 쪼개겠는가. 돈은 감정을 집어삼키는 가정파괴범이 아니라 시간의 벗이다. 돈은 커플이 장기간 이어지게끔 도와준다. 반례를 증거로 들어볼까. 정말 가난한 커플은 이혼을 하고 싶어도 한 명이 나가 살 데가 없어서 죽어라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한 지붕 아래 산다. 물질적 형편은 풍부하면서도 균형 있는 생활의 부식토다. 에로스는 가난과 함께하기를 힘들어한다. 냉소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사랑은 원래 타협적이다. 사랑도 복합적 경향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181쪽〉



돈을 잃는 것보다 돈을 따는 것이 더 나쁜 운명이 되기도 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금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복권 당첨자는 빨리 상황을 장악하고 조언을 받아야 한다. 돈 냄새 맡은 쇠파리가 꼬일 대로 꼬여서 행운이 불운이 되고 파멸로 곤두박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박이 경이로운 이유는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양자택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부담을 덜어주는 “구조의 발판들”(테오도어 폰타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박은 도덕적이지 않지만 부도덕하지도 않다. 단지 운명에게 덫을 놓고 불확실성을 도모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도박꾼은 예측할 수 없는 싸움을 하는 전사다. 일반적인 세계에서 주사위는 한 번 굴리면 끝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한 번 더 기회를 허락하면 안 되나? 그런 점에서 신 존재에 거는 내기는 손해도 없고 이익도 없는 게임이다. 어차피 그 내기의 답은 내기 거는 자의 사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203~204쪽〉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사람이 돈을 가질 수도 있지만 사람이 곧 돈일 수도 있다. 전자는 대담하게 자기 재주를 부려 재산을 모은 사람이다. 후자는 품행과 교육에 대대로 유복하게 살아온 태가 나는 사람이다. 돈 얘기를 함부로 하지 않고, 있는 척하지도 않고, 잘 자란 사람들 특유의 꾸밈없는 태도를 지녔다는 바로 그 점에서 그들은 곧 돈이다. 졸부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 사람, 소유의 문법을 존재의 문법으로 전환하지 못한 채 유예 상태로 남아 있는 사람이다. 졸부는 사회적 상승을 시도하면서 적절치 않은 취향의 실수, 말실수, 때와 장소에 안 맞는 옷차림을 거듭한다. 부자 되는 법은 배우고 익혀야 한다. ‘고매한’ 사회에 편입되고 상류층의 풍속을 완전히 습득하려면 때때로 수십 년까지 걸리기도 한다. 벼락부자는 두둑한 은행잔고는 있지만 유서 깊은 가문의 기억, 지성, 높은 지위에 수반되어야 하는 예의범절은 없다. 그에겐 아무 혈통도 없기에 자기 신분을 확보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을 절망적으로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고상한 모임’에서 그는 개밥의 도토리 같다. 조악한 취향이 자꾸만 두드러지고 애매한 출신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스포츠 스타 출신 억만장자들이 살롱에도 경기장과 탈의실 분위기를 끌고 오는 것처럼 말이다. 〈246쪽〉



지나친 성공의 불행을 알기에 낙이 쌓이는 것을 재앙 쌓이듯 보는 자들이 있다. 경제적 혜택은 형이상학적 불운이 된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부자 도시들은 오랫동안 돈을 미워하는 성직자와 동거해왔다. 금송아지와 그에 대한 공식적 규탄이 기묘하게 공존했다. 가령, 1581년에는 사기꾼, 재주꾼, 곡예사, 포주나 다름없는 금융인에게 영성체를 금하는 명령이 떨어졌다. 옛날식 청교도적 반응일까, 궁핍보다 과잉이 더 무섭다는 직감일까? “사람들은 가난을 유감스러워하지만 잘사는 것은 혐오한다”라고 마키아벨리가 말했다. 무서운 시각이다. 욕망은 지나친 풍요의 우울에 배겨나지 못한다. 풍요의 뿔이 숨 막히도록 꾸역꾸역 먹을 것을 입에 집어넣는 사육의 위협이 된다. 요컨대, 돈에는 돈을 파괴하는 그 무엇이 있다. 그래서 돈을 돈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부 트레이더가 파산의 유혹에 빠지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은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수백만 시민들을 도탄에 빠뜨릴지라도 싹 다 파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성공 속에서나 실패 속에서나 늘 자기를 망칠 수 있다. 부는 의무를 다하거나 괴로움을 끼치거나 둘 중 하나다.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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