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방문자들
페미니즘 소설은 이제 하나의 장르다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여섯 편의 이야기
페미니즘 테마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이 출간됐다. 페미니즘 이슈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에 출간됐던 『현남 오빠에게』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된 이 책은 그때보다 조금 더 젊은 20-30대 작가들에 의해 씌어졌다. 『새벽의 방문자들』에는 2018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과 2019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박민정의 최신작이 실렸다. 2018년 신동엽문학상 수상자이자 「질문 있습니다」로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촉발시킨 시인 김현의 소설과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SNS를 뒤흔든 장류진의 소설이 처음으로 소설집에 실렸다. 또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정지향, 독특하고 따뜻한 생계밀착형 멜로드라마 작가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의 하유지, 21세기형 전방위 활동 작가 『뜨겁게 안녕』의 김현진 등의 작품이 실렸다.
『새벽의 방문자들』에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한 번쯤은 직간접적으로 겪어나 듣거나 보았을 여섯 편의 이야기, 이제 더 이상 소설이라는 그늘 아래 놓인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는 여섯 편의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내 이웃이나 내 가족에게 일어났을 지도 모를, 혹은 ‘나’ 자신에게 일어났을 지도 모를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한 사건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하는 건지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건지 분별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애매하고 찝찝한 사건들을 몸소 경험해야만 했던 여섯 명의 ‘그녀’들이 여기에 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침묵하기를 사양하며, 그 이야기들은 삼킬 수 없는 말과 기억들을 게워내기 위한 ‘다시 쓰기(rewriting)’다.
『현남 오빠에게』 이후 2년…
여성의 이야기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새벽에 오피스텔을 찾아오는 방문자들…
무례하고 어린 남자 상사… 오히려 그만두라는 남편
미성년자 소녀들에게 접근하는 남자 어른들…
성소수자이면서 가해자가 된 고등학교 선생…
『현남 오빠에게』의 후속작으로 기획된 『새벽의 방문자들』은 전작보다 다양하다. 2018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과 2019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박민정의 최신작이 실렸고, 2018년 신동엽문학상 수상자이자 「질문 있습니다」로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촉발한 시인 김현의 소설과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SNS를 뒤흔든 장류진의 소설이 처음으로 책에 실렸다. 또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정지향, 독특하고 따뜻한 생계밀착형 멜로드라마 작가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의 하유지, 21세기형 전방위 활동 작가 『뜨겁게 안녕』의 김현진 등의 작품이 실렸다. 그만큼 다양하고 보다 구체적이며 때론 충격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새벽의 방문자들』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한 번쯤은 직간접적으로 겪어나 듣거나 보았을 여섯 편의 이야기, 이제 더 이상 소설이라는 그늘 아래 놓인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는 여섯 편의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내 이웃이나 내 가족에게 일어났을 지도 모를, 혹은 ‘나’ 자신에게 일어났을 지도 모를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한 사건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하는 건지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건지 분별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 애매하고 찝찝한 사건들을 몸소 경험해야만 했던 여섯 명의 ‘그녀’들이 여기에 있다.
눈먼 섹스를 하기 위해 찾아온 남자들의 얼굴을 캡처하는 ‘여자’(장류진, 「새벽의 방문자들」), 무례하고 어린 남자 상사에게 한 방 먹이고 자발적으로 공장을 그만두는 ‘나’(하유지, 「룰루와 랄라」),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떤 배려도 받지 못한 채 연애라는 이름으로 섹스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미성년 ‘나’(정지향, 「베이비 그루피」),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느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애인과 친구를 떠나는 ‘보라’(박민정, 「예의 바른 악당」), 선생들의 추행을 고발하기 위해 학교 복도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유미’(김현, 「유미의 기분」), 결혼을 꿈꾸며 함께 저축한 데이트 통장을 전 남친에게 털리고 멘탈도 함께 털린 ‘나’(김현진, 「누구세요?」)가 바로 ‘그녀’들이다. 『새벽의 방문자들』의 발문을 쓴 장은영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그녀들의 이야기는 침묵하기를 사양하며 삼킬 수 없는 말과 기억들을 게워내기 위한 ‘다시 쓰기’”다.
섹슈얼리티를 사고파는 곳,
이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다
#미러링
“새벽의 방문자들은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찾아왔다.
여자는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비디오 폰에 달린 모니터로
남자들을 관찰했다.“
여성의 몸에 대해 아직까지도 많은 남성들(‘명예 남성’을 자처하는 여성들까지도)은 편견을 가진다. 예를 들어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여성의 몸에 대해 그들은 ‘섹시하다’거나 ‘추하다’는 식의 편견을 앞세운 평가를 내린다. 이런 식의 편견과 평가는 외적 규범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여성의 가슴에 집착하는 섹슈얼리티가 브래지어만큼이나 선명하고 가시적으로 규범화되어 있다면 브래지어 안에 갇힌 영혼도 온전할 리 없다. 특정 방식으로 몸에 종속된 섹슈얼리티는 영혼을 억누르고 자아를 기형화한다.
장류진의 「새벽의 방문자들」이나 김현진의 「누구세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금, 여기’의 섹슈얼리티란 ‘보는 자’의 성적 판타지를 소비하는 행위로 재현된다. 섹슈얼리티가 몸과 영혼을 통합하는 충만한 내적 경험이 되는데 실패하고, 지속적인 박탈감과 자기소외를 안겨주는 이유는 그것이 영혼과 자아, 그리고 몸 전체와 분리된 채 사물화된 몸의 한 부분에만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새벽의 방문자들」에서처럼, 섹슈얼리티를 “물다방이니 대딸방이니 풀살롱니니 미러룸이니 하는” 다양한 형태로 사고파는 곳. 혹은 ‘보이는 자’로서 느꼈던 공포감에서 벗어나 ‘보는 자’가 되기를 이행하는 미러링 소설 「누구세요?」에서처럼, 여성은 남성의 삶 한 부분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대상인 동시에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섹스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곳. 이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다.
어른들의 비윤리적이고 기만적인 태도,
우리는 그녀들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소녀들
“친구 H는 집단 그루밍이 소녀들을
어떻게 불가해한 상태로 몰고 가는지 설명했다.
또 다른 H는 자기의 첫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들려주었다.“
록그룹의 팬으로서 그들을 쫓아다니며 성적 파트너가 된 여성들을 지칭하는 데서 유래한 용어 ‘그루피’는 문화적 현상을 일컫는 용어라기보다 성적 대상이 된 재현물을 일컫는 용어에 가깝다. 남성 스타와 그를 따르는 여성 팬이 나눈 사랑의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그녀들을 뭉뚱그려 그루피라고 부를 때 그 말에는 인격보다는 섹슈얼리티를 자극하는 성적 대상만이 존재한다. 고등학생 시절 무명 밴드의 멤버와 사귀는 경험이 멋진 성장담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정지향의 「베이비 그루피」에서는 그렇지가 못하다. 어린 소녀였기 때문에 오히려 어른들의 세계에서 소외를 경험했던 ‘나’. ‘나’는 시간이 지난 후에 “초대되지 않은 세계에 편법으로 침투했”다가 “끝내는 부끄러운 몰골로 추방당”했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김현의 「유미의 기분」에서의 사건도 세상의 수많은 소녀들을 존중할 줄 모르는 어른들의 비윤리적이고 기만적인 태도에서 기인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쟁점이 된 스쿨미투와 성소수자 문제를 함께 배치한 이 소설은 하위 젠더로서 미투 폭로자와 성소수자들이 겪는 폭력을 재현하고 있다. 타인의 기분, 특히 나이·성·사회적 지위가 자기보다 아래인 타인의 기분 따위는 중요할 리 없는 선생들. 그런 막강한 뻔뻔함 앞에서 함께 웃어주지 않고 자신의 존엄을 온몸으로 지키는 ‘뻣뻣한’ 세상의 수많은 ‘유미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학교 선생이었던 주인공이 유미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를 오래 고민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고민의 시간이 ‘꼭’ 필요하지는 않을까.
자기소외를 그만두고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연애, 결혼
“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때때로는 절망일지라도,
대체로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노랫소리라고 믿는다.
이 소설 속에서 몇몇 사람은 노랫소리를 들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당신의 삶 속에서.“
젠더, 계층, 노동, 학벌, 집안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는 연애나 결혼의 삶은 복잡하다. 때문에 부부나 연인에게 현실적 조건을 뛰어넘으라는 건 초능력자가 되라는 말과도 같다. 하유지의 「룰루와 랄라」에서의 동거 중인 비정규직 남자와 사실상 실직 상태인 프리랜서 여자의 결혼, 박민정의 「예의 바른 악당」에서의 대학을 졸업하고 거의 월급이 없는 시민운동 단체에서 일하는 여자와 남자의 연애가 낭만적 사랑으로 충만하려면 둘 중 하나는 조용히 고통을 삭이며 침묵하는 초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룰루와 랄라」에서 주인공 ‘나’는 생계에 대한 자기 몫의 책임을 지기 위해 공장에 취직한다. 공장에는 나이 많은 ‘아줌마들’뿐이고, 관리자급 상사는 한참 어린 남자다. 너무도 전형적인 이 상황은 여성 고용률이 남성 고용률과 맞먹는다는 통계와 그것을 양성평등의 증거라고 내세우는 말들에 실소하게 만든다. ‘어린 남자’ 상사는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하위계층 노동자인 아줌마들에게 무례하기 짝이 없다. ‘나’는 결국 그 무례함을 똑같이 갚아주고 자발적으로 해고된다.
「예의 바른 악당」의 주인공 ‘보라’도 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비정규직 대열에도 들지 못한 청년이다. 그녀와 사귀는 선배는 매사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피씨한 사람이다. 흑수저인 ‘보라’와 금수저인 ‘지나’를 저울질하며 ‘보라’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그는 정치적 올바름은 알아도 인간에 대한 예의는 모른다. 연애나 우정으로 보였던 관계에서 소외를 느끼면서도 침묵했던 보라는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한 세계를 떠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떠올린다. “선배는 왜 사람들을 화나게 해요?”라고 질문함으로써 ‘보라’는 침묵과 자기소외를 그만두고 차이를 외면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기만을, 타인을 오히려 소회시키는 위선적 환대의 폭력을 그들에게 말할 작정이다.
“응, 이거 네 얘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당신”
“페미니즘 소설은 이제 하나의 장르다. 소설로 발화된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나와 자매들의 이야기를 닮은 소설들을 따라가 보면 젠더, 섹슈얼리티 같은 추상적 개념들이 결혼, 연애와 같은 삶의 과정이자 제도들과 더불어 일상을 지배하며 우리의 몸과 영혼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페미니즘이란 말로 다 수렴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관찰한 것은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현상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거기에는 인간의 윤리·존엄과 같은 근본적 문제들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침묵으로 대처하거나 초능력을 발휘해서 무마해버리면 안 되는 삶의 근본 조건들, 그 앞에서 나는 깊게 호흡해본다.”
―장은영 문학평론가(발문 중에서)
“기초적인 소설 작법에서는 개가 사람을 부는 것은 뉴스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이 개를 무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가르침은 정작 동등한 존재를 개와 사람으로 나누는 권력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여자가 물어뜯기는 현실은 너무 당연해서 서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이진송 작가(추천사 중에서)
책 속으로
걸쇠가 걸리며 문이 잠기는 차가운 쇳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멈췄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마치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야, 저 사람한테 내가 보일 리 없어. 아무리 되뇌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눈동자보다도 작은 렌즈가, 커다란 유리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밖의 남자가 자신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는 뭔가 발견했다는 듯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동그랗게 뚫려 있는 여자의 시야에 남자의 상반신이, 어깨가, 얼굴이…… 그리고 마침내 새까만 눈동자가 가득 들어왔다. 남자가, 렌즈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벽의 방문자들」중에서
앳된 임신부가 누구를 기다리는 듯 정류장 주변을 서성이다가 벤치 끄트머리에 앉았다.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던 사람이 휴대폰 벨이 울리자 벤치 앞에 멈춰 섰다. 걸으면서 담배는 피워도 전화는 못 받는지. 바람이 담배 연기를 실어 날랐다. 임신부는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전화 통화는 길었고 담배 연기도 길었다. 나라도 한마디 할까, 아니면 아침부터 일 만들지 말고 참을까, 고민스러웠다. 룰루는 손과 다리를 움찔거렸다가, 엉덩이를 들었다가 놨다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더니 결심한 듯 일어난다.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아아, 룰루, 어쩌려고? 내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룰루와 랄라」중에서
방 안에서 P는 어쩐지 말이 줄었고, 그러다 문득 영화를 보자고 했고, 소파 베드에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돌연 몸을 붙여왔다. 처음엔 갑자기 자세를 바꾸는 것처럼 조금 내 쪽으로 기대거나 소파 헤드에 얹었던 손을 아래로 내려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문득 무릎에 눕고나 팔짱을 껴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놀랐고, P를 밀어내기보다는 그의 손이 더 넘어오지 않게 하는 데에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긴장감이 한참이나 이어진 끝에 P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신경질적으로 노트북 키보드를 눌러 영화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나면 데이트는 끝이었다. P는 내게 가달라고 말하는 대신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약속이 생겼다고 했다.
---「베이비 그루피」중에서
야, 오늘은 소라무침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보라의 얼굴이 굳어진다. 지나는 보라의 눈치를 살피며 그에게 말한다. 선배, 선배 여자 친구는 그거 먹기 싫은 것 같은데. 자기가 먹고 싶은 것보다 여자 친구가 먹고 싶은 걸 시켜야지. 그는 갸우뚱하며 보라의 옆구리를 찌른다. 너 먹기 싫어? 아니잖아. 그는 보라의 대답도 듣지 않고 지나에게 웃어 보인다. 괜찮아. 얘는 다 잘 먹어. 오늘 내가 특별히 쏘는 건데. 지나, 네가 먹기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지?
어린 시절 그것을 먹고 다 게워낸 이후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말을 보라는 할 수 없다. 지나는 한숨을 쉬며 보라의 얼굴을 살핀다. 지나가 너무 찬찬히 살펴보기에 보라는 어쩔 수 없이 소라무침을 주워 먹기 시작한다. 지나는 안도한 듯 그에게로 몸을 돌려 정신없이 깔깔대며 웃는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므로 보라는 더 많은 소라를 먹을 수밖에 없다. 지나가 수시로 보라에게 시선을 주며 보라 넌 어때, 묻는 바람에 잔뜩 긴장한 채였다. 그는 계속 지나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막상 소라무침을 먹는 사람은 개중 보라뿐이었다.
---「예의 바른 악당」중에서
그 종이 한 장 한 장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놈 한 놈을 떠올리게 했다. 그 노랗고 작은 것들이, 그 보잘것없는 종이 쪼가리가 한데 모이자 크고 넓고 거대한 것이 이루어졌다. 많은 여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그 네모난 세계에 연결됐다. 그것이 마치 자유로의 입구라도 되는 양 환호했다. 또한 많은 남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그 정체불명의 세계에서 눈을 돌렸다.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내면으로 향하는 입구라도 되는 양 헐, 존나, 대박, 메갈, 꼴펨, 진지충이라는 말을 내뱉고 사라졌다. 오직 그런 말을 들어본 사람만이 거기 남아서 손가락으로 포스트잇을 가리키며 말했다. -국어 -수학 -체육 -영어
---「유미의 기분」중에서
결혼은 닥쳐봐야 안다면서 그때 단호히 거절했어야 했다. 하지만 거의 범죄 수준으로 멍청했던 나는 그저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둘의 사랑이 담긴 공동 통장’이라는 말에 눈이 멀어 내가 들던 적금도 해약해 그놈의 ‘공동 통장’에 내놓았던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 계좌의 예금주는 바로 이재영! 원래부터 이럴 속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월급날마다 현금을 직접 인출해서 자신에게 주길 원했다. 그게 뭔가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줘서 정이 간다나? 그때는 그저 아 현금이 편해서 좋은가 보다, 하고 그냥 그 말을 들었던 과거의 내 뺨을 이 미친년, 하면서 사정없이 후려치고 싶다.
---「누구세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