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시 유 어게인 in 평양

시 유 어게인 in 평양

저자
트래비스 제퍼슨
출판사
메디치미디어
출판일
2019-07-26
등록일
2019-08-08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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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국인 최초로 북한으로 유학을 떠난 소설가,

외부자의 시선으로 북한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벗겨내다



‘세계 최악의 나라’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갖고 있는 북한은 사실 대한민국 국적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여행이 상당히 자유로운 곳이다. 이 책의 저자 트래비스는 북한과 가장 민감한 관계에 있는 미국인의 신분으로는 최초로 북한에서 조선어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그는 한 달간 평양에서 언어를 배우는 동시에 외부자의 시선으로 편견 없이 북한의 가장 내밀한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북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뜨리고 그곳 또한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은 정말 ‘세계 최악의 나라’인가?

북한에서 어학연수 과정을 밟은 최초의 미국인 트래비스,

평양 사람들의 가장 내밀한 얼굴을 들여다보다!



남북관계가 몇 년 사이에 화해 분위기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북한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곳이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북한으로의 방문 또한 엄격하게 금지된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금단의 땅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북한은 세계적으로도 ‘은둔의 나라’ 혹은 ‘세계 최악의 나라’라는 불명예 또한 갖고 있다. 현실이 이런 탓에 잊기 쉽지만 사실 북한은 대한민국 국적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여행이 상당히 자유로운 곳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매년 북한에 방문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북한에게 ‘적국’이었던 미국 국민은 아무래도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는 그 벽이 조금 더 높은 편이다.

이 책의 저자 트래비스 제퍼슨은 북한에서 어학연수 과정을 밟은 최초의 미국인이다. 그는 2016년 여름, 한 달간 평양에 체류하며 북한의 명문 김형직사범대학에서 조선어를 배웠으며 언어를 배우는 틈틈이 평양과 그 주변 지역을 돌아다니며 북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했다. 이 책은 저자가 그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에세이이자 르포르타주이며 그는 평범한 북한 사람들을 들여다보며, 그동안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선입견과 편견이 덧씌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저자는 수많은 국민의 목소리를 획일화하는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은 유지하되, 자신이 보고 느낀 북한과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에서 공식적인 어학연수 과정을 밟은 독특한 이력의 저자가 외부자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지척에 있지만 세상 그 어떤 나라보다 이해하거나 알기 어려웠던 북한의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수차례의 북한 방문 경험과 한 달 동안의 어학연수,

외부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북한을 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벗겨내다



소설가인 저자는 성인이 된 이후로 주로 독일 및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북한에게는 ‘적국’의 국민이다. 그는 2012년 평양을 처음 방문한 이후, 여러 번 북한을 다시 찾았다. 북한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에 2016년 여름에는 호주 출신의 동아시아학 전공 대학생인 알렉 시글리가 운영하는 관광 업체 ‘통일투어’를 통해 김형직사범대학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조선어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했으며, 한 달 동안 학생이자 여행사 대표인 알렉, 프랑스 대학생 알렉상드르와 조선어를 배웠다.

저자 일행은 언어를 배우는 도중에 틈틈이 알렉과 동업해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한 ‘조선국립려행사’의 ‘김 동무’, 안내원 ‘민’과 ‘로’와 함께 북한 곳곳을 여행한다. 문수 물놀이장과 원산 해수욕장에서는 여가를 보내는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신천양민학살 기념박물관과 각종 골동품을 모아놓은 국제친선전람관을 관람하며 북한 체제의 이데올로기 선전도 경험한다. 저자는 북한 사람들이 세상 여느 나라처럼 자본주의의 급격한 침투로 변화 일로에 있다는 사실과 새로운 젊은 지도자의 등장에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 해외에서 오래 활동한 사람들의 경우 결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체제의 실상과 허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안내원 민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저자와 그 일행에게 조금이나마 속마음을 내보인다. 저자는 이를 통해 북한 사람들 또한 그저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며 그동안 우리가 북한을 너무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철저히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남한 사람들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북한과 가까이 있음에도 정작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반면 저자는 외부인이기에 북한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으며, 북한 체제의 기만과 허상에 혼란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응시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북한의 참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북한과 그곳의 사람들에게 가졌던 의심과 적대감이 편견과 오해로 인한 것이며 상당 부분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제대로 알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웠던 명제 또한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엄혹한 현실의 교차 서술,

오해와 편견을 벗기는 동시에 비판적 거리를 확보,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객관적 자료로서의 가치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북한의 내밀한 모습을 묘사하고 편견을 깨뜨리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실상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문수동 외교단지에서 열린 파티에서 만난 각국의 외교관들이 제대로 소통할 수 없는 북한 체제에 지쳐 회의를 느끼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지휘할 당시 머물렀다는 곤자리혁명사적관에서 거짓 사료로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현실 또한 가감 없이 그려낸다. 또한 저자가 눈으로 본 것 이외에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8장 ‘병풍’에서는 직접 만난 탈북자들의 사례를 자신의 경험과 교차 서술한다.

또한 저자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 정보원을 보호하고자 실제로 겪은 일을 기록하되 적절한 가공을 거쳤다. 주로 2016년 어학연수 때의 경험을 서술하되 경우에 따라 그 이전의 경험을 중간에 삽입했고, 글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자 사건의 순서도 조금씩 바꾸었다. 등장인물 또한 여러 사람을 섞어서 만든 가상의 인물들이며 이름은 거의 가명이다. ‘김 동무’와 ‘민’이 근무하는 ‘조선국제려행사’는 북한의 여러 국영 여행사의 운영 자료를 참고해 만들어낸 가공의 회사다.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을 서술하면서도 일정 정도의 가공을 거침으로써 북한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이 책이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서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 추천사



‘은둔 국가’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과 오류를 해체하는 책!

- 《뉴욕 저널 오브 북스》



가까이서 바라본 북한에 대한 생생한 서술!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 책 속으로



평양에서 보낸 한 달 동안 나는 지구를 가로질러 오는 먼 여정의 횟수와 상관없이, 특권을 지닌 미국인이라는 이질성은 너무 특이해서 털어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질성은 내가 여행하는 세계와 나 자신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만든다. 작가로서 나는 거의 모든 것을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글쓰기는 나를 유령 같은 존재, 또는 중재 장치로 만든다. 이제 진정한 이해를 가로막는 것은 그 거리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에 가는 것까지는 쉬웠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곳에 있기 위해서, 즉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지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내 안에 인위적으로 그어진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을 해체해야 한다. (19쪽)



오늘날 소련 리얼리즘 건축 애호가들은 평양을 처음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과도하게 넓은 대로를 따라 늘어선 획일적인 회색 조립식 아파트 건물이 짜깁기된 스탈린주의자 도시의 전형인 영혼 없는 콘크리트 숲을 기대한 사람들의 눈앞에 연한 파스텔색의 직사각형들이 다채롭게 배열된 모습이 펼쳐진다. 미묘하게 차이를 보이는 연복숭아색, 청록색, 연보라색, 자주색, 금빛 호박색, 카나리아색, 황토색, 민트색으로 물든 세련되고 절제된 건물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흑백사진으로 찍어놓으면 도시는 여전히 동베를린과 닮은 부분이 있다. 페인트 한 겹이 내는 효과가 놀라울 따름이다. (60~61쪽)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밤놀이 문화가 거의 없는 도시에서 외교단회관은 술에 취해 방탕하게 놀기에 제격인 곳이다. 지난번에 여행 왔을 때는 1980년대에 오스트리아 빈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으로 해외에 살다 온 중년 여성 안내원이 우리가 있던 노래방의 문이 단단히 잠긴 것을 확인하자마자 뛰어나가 〈댄싱퀸〉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내내 그녀는 자신이 아바(ABBA)의 전곡을 훤히 꿰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더 놀라웠던 일은 그녀가 담배를 여러 대 피웠다는 것이다. (66쪽)



4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저 아래 보이는 도시는 예전처럼 어둡지 않다. 미래과학자거리처럼 빛나는 프로젝트를 통해 평양은 적어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삶이란 그 간극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삶은 그럴듯한 모순과 노골적인 위선,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내세우는 선전 구호와 비밀의 속삭임에서 오는 희열, 끔찍한 위협과 희망적 관측, 이 모든 것이 뒤섞인 진창에서 이어지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난장판과 그로 인한 감정의 동요로 인해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이 모든 불합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모르게 이 도시에 마음을 쓰게 됐다. 알면 알수록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 들지 않으면 더욱 매혹된다. 평양은 패배의 상처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온 사람들의 도시이자 한 남자와 그 후계자들의 꿈으로 이뤄진 도시다. (77~78쪽)



내가 보기엔 좀 이상했다. 하긴, 여기선 모든 것이 이상하니까. 우리가 가는 장소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이상했다. 현지인은 물론 이 나라에 자진해서 발을 들인 외국인들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불로 날아드는 나방처럼 미스터리에 매료돼 자꾸 이 나라를 찾아오는 우리 같은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119쪽)



북한식 리얼리즘(Norkorealism)은 스탈린의 소련과 일본 제국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장 위대한 성과는 자신만의 시간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양력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체연호, 표준시 30분 늦추기, 긴박감 없는 일상, 결코 발전이 없는 미술 양식, 비어 있는 표면이란 표면에는 죄다 새겨진 따분한 설교. 2012년 이 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20세기 중반 어딘가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현대 세계의 다른 모든 측면에 관심을 두지 않는 북한 체제의 기본 태도와 맞닿아 있다. (164쪽)



요즘은 무엇을 하든지 돈이면 다 해결된다. 돈은 위쪽으로 흘러가서 ‘충성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최고령도자와 그의 가족, 측근들에게까지 닿는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국가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거의 대부분 불법적인 사업과 관련이 있다. 후진적인 ‘사회주의’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나라 전체가 거대한 지하 범죄 조직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체제가 그렇게 타락했는가? 사실상 매시간, 매분 무엇이든 사고팔고 교환할 수 있는 우리의 21세기 시장 기반 경제체제와 전혀 다른 체제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 세계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세계’를 다시 한번 침략해 영원히 변화시킨 걸까? (206쪽)



유럽 국가 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사관을 두고 있는 나라는 일곱, ‘협력 사무소’를 두고 있는 나라는 둘 있다. 나는 어떤 나이 든 외교관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여기서 일하는 대사관 직원들은 보통 세 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첫 번째는 깨달음 단계로, 이 나라가 진정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드디어 이해했다는 생각이 드는 때죠. 두 번째는 좌절 단계로, 사실 이 나라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 번째는 포기 단계죠. 이 나라를 이해할 수도 없고 더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곧 이 나라를 떠날 거니까요.” (232~233쪽)



게다가 신천박물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박물관의 전시품 자체도 끔찍하고 잔인했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나를 불쾌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신천박물관은 유럽에 가면 볼 수 있는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기념관을 본떠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곳은 신천박물관과는 달리 사건의 의미를 역사적 맥락에서 볼 수 있도록 내용이 채워져 있다. 우리가 모두 아는 역사는 셀 수 없이 많은 자료로 입증됐다. 예를 들어, 나치 수뇌부가 모여 유럽 거주 유대인 대량 학살 음모를 꾸민 반제 회의(Wannsee Conference)가 열렸던 반제하우스의 기념관을 가보면, 단지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여기에 기록된 사건이 어떻게, 왜 일어나게 됐는지에 중점을 두고 발생 순서에 따라 사건의 윤곽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배치돼 있다. 그러나 신천박물관에는 어떻게와 왜가 빠져 있다. 소름 끼치는 전시품 외에 갈등을 선과 악 사이에 벌어지는 가상의 전투로 귀결시키는 미사여구가 전부였다. 순진무구한 조선의 민간인들과 무자비한 미제 놈들. 게다가 그 미국인들을 절대로 군인에 한정하지 않는다. 그들을 지칭하는 말은 ‘미제’, 아니면 인간도 아닌 짐승, ‘승냥이’다. 이곳에서 벌어졌다는 범죄 행위를 둘러싼 전체 맥락은 보이지 않는다. (241~242쪽)



마지막 수업 바로 전날, 백 선생님은 수업하다가 멈추고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트래비스 동무,” 그녀가 입을 뗐다. “시간이 부족해서 이 단원을 다 끝내지 못하겠네요. 내일이 마지막 수업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봤다. 마음이 울컥했다. 스카이프나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평양에 돌아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낙관적으로 말했다. “결혼하면 꼭 아내를 데려와요.” 그녀는 내 팔을 꽉 쥐었다. “그녀를 꼭 만나고 싶어요. 우린 함께 밥도 먹고 즐겁게 얘기도 할 거예요.”

나는 미소 지었다. 그녀도 미소 지었다. 우리 둘 다 그런 일은 없을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행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개 시민과 간단히 약속을 잡고 만난다는 것은 양쪽, 또는 한쪽이 의심을 피할 만한 엄청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이 경찰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는 놀랄 만큼 뛰어난 능력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희망을 품는 능력이다. (330쪽)



알렉상드르가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말을 이었다. “2012년에 이 나라에 처음 왔을 때, 여기까지 혼자 헤엄쳐 왔어요. 그때 평양에서 온 부잣집 아이들 여러 명이 여기서 놀고 있더라고요. 엘리트들이었죠. 그중 한 아이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어요. 파리에서 공부했대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좀 나눴어요. 그 애가 자기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더군요.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의례적인 말을 했어요. 그가 그러냐고 해서 나는 또 예의상 몇 마디 덧붙였어요. 그러고 나서 무거운 침묵이 흘렀죠. 뭣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육지의 온갖 정치적인 허풍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 동해 바다 위에 떠 있어서 그랬는지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난 사실 이 모든 걸 믿지 않아.’ 그러자 그가 웃으며 대꾸했어요. ‘나도 그래.’” (353~354쪽)



“이 나라 정부의 권력을 쥔 사람들은 그런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언론에서 뭐라고 떠들든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민, 언론의 영향력은 강력해요. 그 말은 단지 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이 나라를 무서워한다는 겁니다.” 나는 팔을 넓게 펼쳐 보였다. 그리고 곧 내 말과 행동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나는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앞에 서 있었다. 오직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을 무서운 곳이라고 하다니 말이다. 민은 이러한 끔찍한 아이러니를 인식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대담하고 모험적인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만약 그들이 여기 와서 우리나라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면 두려운 마음이 가실 겁니다. 그들은 이곳이 실제 어떤 곳인지 알게 될 거예요.” (432~433쪽)



그나 그 진실이란 것은 너무 평범해서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치기 쉽다. 그 진실을 봤다고 하더라도 알렉상드르나 나나 알렉은 그것이 진실인지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서는 원래 체제가 사람보다 우선이고 그런 현실은 우리가 떠난 뒤에도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것이다. 그 진실은 알렉상드르가 김 동무와 나누는 바로 이 대화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밝혀지고 있었다. 교육을 통해 ‘자아 찾기’를 할 수 있는 인문학적 방식의 사회와, 스스로를 국가의 도구로 미리 규정하는 사회의 양립할 수 없는 극적인 차이에서 진실은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서, 진실은 마치 아침 안개 속을 파고들어 왔다가 안개가 걷히는 순간 사라지는 햇살처럼 어딜 보든 바로 눈앞에 있다. (4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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