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문학동네시인선 122)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문학동네시인선 122)

저자
배영옥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일
2019-08-13
등록일
2019-09-2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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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하나의 초, 어차피 타고 없어질,

그저 꼿꼿하기만 한 하나의 초,

그 한 가닥의 흰 등뼈 같은 시들,



문학동네시인선 122 배영옥 시집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가 출간되었다.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시집 『뭇별이 총총』을 냈던 바 있는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다. 시인은 2018년 6월 11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6년에 와 2018년에 간 사람. 그쯤이라 하기에는 모자라다는 말로밖에 답할 수가 없겠는 시간, 오십 두 해.



이 시집은 시인이 작고하기 전까지 손에 쥐고 품에 안고 있던 시들로 한 연 한 연 너무 다듬어서 하얘진 속살과 한 행 한 행 너무 들여다보아서 투명해진 속내를 한 편 한 편 평소의 제 얼굴인 듯 다부지면서도 단호히 내어걸고 있다. 예서의 단호함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미련이란 이름으로부터의 탈탈, 손을 털어버린 자의 차가움이자 가뿐함이기도 하겠다. 생을 훌쩍 건너버린 자니 이때의 놓음은 크게 생의 집착 같은 것이 되기도 할 터, 하여 이곳에 아니 있으니 저곳에 있을 시인에게 365일이 지났으니, 그쯤 지났기도 하였으니 이제 좀 물어봐도 될 일 같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땅을 내려다보며 묻노니, 그래 거기서도 시인이여,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나의 전생이여” 하며 “영원을 돌이켜보”고 있으려나.



이런 돌아봄, 이런 뒤척임, 이런 되감기가 태생이며 성격이지 않았을까 싶게 시인은 이번 시집 속 제 살아옴의 시간을 역으로 돌아 뒤로 걸어가기를 매 순간 반복하고 있다. 더는 앞으로 걸어갈 수 없음을, 걸어간다 한들 캄캄하여 보이지 않는 그 시간들은 차마 제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참으로 잘 아는 시인이기에 제 눈에 보이고 제 입이 말할 수 있을 겪고 난 지난 시간 속 제 삶에서 풀려나온 실들만 하나하나 매듭을 짓고 있다. 정확한가? 그러하다. 꼼꼼한가? 그러하다. 덤덤한가? 그러하다. 아픈가? 그러하다.



아무렴, 안팎으로 꽤나 아픈 시간을 보냈겠구나, 이제 와 짐작이나 해보는 작금의 우리들 앞에 이 시집은 생의 무상이라는 그 어찌할 수 없음, 그 안 보이는 바람 소리를 들려줌으로 서늘히 등짝을 쳐주는 기능 속에 있기도 하다. 안 보이는 그 뒤, 그 뒤가 누군가에게는 문이 되어 훤히 다 보이는 세계라는 거. 뒤가 앞이고 앞이 뒤라는 그 당연한데도 살면서는 속수무책 모를 수밖에 없는 삶의 비밀을 조금 알아버린 것도 같은 시인은 납덩이를 찬 것 같은 음울한 무거움 속 나날을 사는 우리들이 조금이나마 가벼울 수 있게 힘을 빼는 법의 시를 털어놔주고 간 듯도 싶다.



어떻게 이렇게 탈탈 저에게서 저를 털어낼 수 있었을까. 하나의 초, 어차피 타고 없어질, 그러나 애초의 생김이 딴 거 없이 그저 꼿꼿하기만 한 하나의 초, 그 한 가닥의 흰 등뼈 같은 시들, 마지막까지 끝끝내 쉽사리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만졌다는 시들의 깊은 이야기 속 힌트를 부 제목에서 더듬어본다. 1부 “엄마 무덤 곁에 첫 시집을 묻었다” 하니 그 키워드 하나를 ‘엄마’로 삼는다. 2부 “다음에, 다음에 올게요” 하니 그 키워드 하나를 ‘다음’으로 미룬다. 3부 “의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의자가 되기까지” 하니 그 키워드 둘을 ‘여자’와 ‘의자’에서 찾는다. 어쨌거나 엄마에게로 갔겠구나, 그 다음이란 게 그런 돌아감이겠구나, 여자가 앉아 있을 때는 의지의 여자였겠으나 여자가 돌아갔으니 의자는 의지의 의자가 되었겠구나……



이 생에서의 남은 날이 얼마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손바닥이 까지도록 시를 붙들었음을 너무 알게 한 시집. 페이지가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시집. 쉽게 종잇장을 넘길 수 없는 이유, 목숨 ´수壽´가 걸려 있는 연유. 첫 시부터 울음이나 통곡하게는 안 한다. 그게 비수다. 잘 가시라. “혁명 광장을 지키는 독수리떼의 지친 울음소리가/ 이토록 내 어깨를 누르는 것을 보면/ 이토록 내 마음을 울리는 것을 보면/ 나는 아무래도 새들의 나라에 입국한 것이 틀림없다” 하시니 부디 그곳에서는 훨훨 나시라. 모쪼록 배영옥 시인의 명복을 빈다.





시는 비상한 뜨거움으로 한 생애에 “백일”만이 남았던 사람이 어떤 “늦은 사람”(「늦게 온 사람」)과 함께한 고통과 사랑의 시간을 적고 있다. 고통이 “온기”를 뺏어가고 “죄”를 심어주는 닫힌 나날은 그러나,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의 발명 가운데 저도 모를 사랑을 향유하는 듯하다. “어쩌랴”에는 사랑할 방도가 없음에도 사랑을 끌어안고 말았던 기쁜 무장 해제의 마음이 묻어난다. “백날”이 “일생”이 되는 까닭이 여기 있지 않을까. “여분의 사랑”은 곧 사랑의 전부였던 것이다. ―이영광 발문 「사람은 죽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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