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병이 될 때
상실과 우울의 시대, 마음의 약에 관한 진지한 생각
“힘겨운 마음은 약물로 치유 가능한가?”
80명의 우울증 환자를 인터뷰한 사회학자가
정신 건강 문제와 관련한 약물 의존 현상을 이야기하다
“뇌의 신경화학적 불균형이 우울증을 초래한다?”
상실과 실패, 한계에 부딪혔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힘든 경험은 인류가 오랜 시간 고민해온 문제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개인이 그런 마음의 고통을 해소하는 방식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우울하거나 심란하면 일기를 쓰거나 친구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으며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이제는 의사를 찾아가 상담한 뒤 진단을 받고 신경안정제나 항우울제 같은 약을 먹는다. 심각한 정신질환이 아닌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심란함이나 어쩌다 겪게 되는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침이 없다 보니 결국 의료적 해법에 의존하게 된다. 버지니아대학 교수이자 주목받는 사회학자인 저자는 18세부터 63세 사이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미국인 80명을 심층 인터뷰하여, 놀랄 정도로 널리 퍼진 정신 건강 문제와 관련한 약물 의존 현상을 진단하고 그 기저에 깔린 사회 변화의 경향성을 읽어낸다.
저자는 정신과 진단과 약물 처방을 받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하는 현상에는 약물 남용보다 더 은밀하고 가늠하기 어려운 변화가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사람들이 우울, 불안, 굴욕, 초조, 무료, 죄책감 등과 같은 정서적 고통과 일상의 신경증의 원인을 해석하고 그에 대처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의 원인을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요인에서 찾고 정신요법을 하는 심리적 치료에서 벗어나, 신체적 요인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문제로 여기고 약물요법을 하는 의료적 치료로 대중의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시행된 동향 조사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07년까지 정신 건강 문제로 약물치료를 받는 미국인의 수는 급증한 반면, 심리치료를 받는 미국인의 비율은 매년 3퍼센트를 간신히 넘는 수준을 유지했다(94쪽 참조).
이는 오늘의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상이지만 우리도 이미 나타나고 있거나 조만간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마음의 고통을 감정 조절 호르몬의 부족으로 생기는 뇌의 문제로 보고 약으로 치유하려는 신경생물학적 관점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고 분석한다. 이런 현상은 유동적이고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대사회의 심층적 경향을 반영한 것이자 맹목적 적응일 수 있다는 비판적 진단으로 연결한다. 자아에 대한 해석적이고 의미 있는 생각을 외면함으로써 우리는 영혼을 풍요롭게 하고 삶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그문트 바우만부터 리처드 세넷, 앤서니 기든스까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인용하여 현대인의 자기 이해 상실과 그로 인한 감수성 위기를 경고한다. 수치심 불안 실망감은 어떨 때 일어나는지, 타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문제는 없는지, 어떻게 해서 흐트러졌는지 돌아봄으로써 자신에 대한 앎으로 이끄는 성찰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고, 사회적 기준에 신경 쓰며, 규범에 충실하기 위해 애쓰는 세상에서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