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사소한 로맨스

사소한 로맨스

저자
이채영
출판사
디키스토리
출판일
2012-12-31
등록일
2013-07-29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4MB
공급사
교보문고
지원기기
PC PHONE TABLET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현황
  • 보유 2
  • 대출 0
  • 예약 0

책소개

생전 보지도 못한 여자와 결혼하게 생긴 민석.
21세기에 정략결혼이 웬 말이냐.
두 달간 폐가 같은 강녀의 집에서 하숙을 하기로 한
민석은 그 곳에서 해맑은 그녀를 처음 보았다.

<발췌본>
“누구세요? 아니, 남의 집엔 웬일이세요? 빚은 얼마 전에 다 갚았는데요. 설마 우리 할머니가 또 막판에 큰 건 하고 가신 건 아니죠?”
강녀는 본인이 뱉은 말에 본인이 놀라 헉 소리를 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뽑아내고 또 뽑아내도 자라나는 잡초처럼 빚이라는 것은 캐고 또 캐도 나오는 것이었다. 강녀가 경계 어린 눈빛으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빚을 받으러 올 때 험하게 생기거나 날라리같이 생긴 것들은 하급이었다. 저렇게 온몸에 먹물 바른 듯 새까만 남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강녀가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또 물러섰다. 여차하면 저 멀리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저기요. 그쪽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숙생입니다.”
“네, 하숙생 캐피탈이신……. 네?”
“이곳에 두 달간 묵기로 한 하숙생입니다.”
강녀는 떨떠름한 얼굴로 눈앞의 남자를 보았다. 하숙생은 고시생이라고 들었다. 고시생이란 무릇 폐인과 인간 사이를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종족이 아니던가. 그 종족이 너무나도 멀끔해 보여 강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남자는 말없이 코트를 열었다. 다행히 코트 속 와이셔츠는 흰색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강녀는 남자가 내민 종이를 떨떠름하게 받아 들었다. 그 것을 살피던 강녀의 눈이 갸름해졌다. 이 계약서는 얼마 전 찾아온 할머니와 자신이 맺은 것으로, 할머니는 자신의 손자가 올 것이라는 말과 함께 두 달치 월세를 미리 지불했었다.
“고시생…… 맞으시죠?”
“네, 일단은.”
남자는 전혀 고시생스럽지 않은 얼굴로 그리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초면에 실례가 많았어요. 하하!”
“괜찮습니다. 집은 어디죠?”
“네?”
“주소는 이곳이던데요.”
“여기가 집인데요.”
강녀의 말에 남자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집을 훑었다. 집이 언제부터 이렇게 기하학적인 각도로 기울어져 있는 공간을 일컫는 것이었나. 더군다나 시대를 건너뛴 지붕의 기와는 뭐란 말인가. 그중 남자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대청마루 아래에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이었다. 박물관에서나 보던 게 왜 여기 있나.
강녀는 어쩐지 처음보다 더 말이 없어지고, 처음보다 얼굴색이 더 하얗게 변한 남자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로 이 집에 들어와 피 말리는 고시 공부할 생각을 하니 암담한 모양이었다. 강녀는 옆에 선 잘생기고도 훈훈한 남자에게 말 못 할 안타까움을 느끼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방부터 보여 드릴게요. 가 쪽에 문 세 개 보이시죠? 제일 왼쪽은 부엌이에요. 그리고 중간은 제 방, 오른쪽 제일 끝 방은 이제 그쪽이 쓰시면 돼요. 그리고 욕실이랑 화장실은 분리되어 있어요. 욕실은 이쪽, 화장실은 저쪽이요.”
“…….”
그러나 남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마치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것마냥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추위가 엄습해 와 그녀는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남자에게 빼끔 얼굴이 내밀었다.
“저, 먼저 들어가도 될까요? 너무 춥네요.”
“……그러시죠.”
강녀는 못 박힌 듯 서 있는 남자를 힐끔 바라본 후 자신의 방으로 서둘러 뛰어 들어갔다. 남자가 마당에 서서 본인의 인생에서 M&A라는 단어를 지워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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