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자의 운명' '완전한 소설' '공동의 기억'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무언가를 구하는 것아니 에르노라는 문학의 정점자전적 요소와 사회학적 방법론이 결합된, 자신만의 글쓰기 스타일을 만들며 전세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 『세월』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출간 직후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즈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램 독자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한,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소설 『세월』은 1941년에서부터 2006년까지, 노르망디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태어나 자란 것에서 시작해 파리 교외의 세르지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던 교수 그리고 작가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족 사진첩을 넘기듯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자신의 굴곡진 전 생애를 다룬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자서전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는 이 책을 자서전에서 일반적으로 택하는 일인칭 시점이 아닌, ‘나’를 배제한 ‘그녀’와 ‘우리’, 그리고 ‘사람들’로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야기 속 ‘그녀’는 아니 에르노 자신이면서 동시에 사진 속의 인물, 1941년부터 2006년까지 프랑스의 사회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각이고, ‘우리’와 ‘사람들’은 언급된 시대 속에 형체 없이 숨어 버린 조금 더 포괄적인, 비개인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삶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을 설명하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고 작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책 속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세대의 이야기 속에 위치시키면서 개인의 역사에 공동의 기억을 투영하여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비개인적인 자서전’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탄생시키며 커다란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
저자소개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프랑스 작가이자 문학교수이다. 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Yvetot에서 보냈고, 노동자에서 소상인이 된 부모를 둔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정식 교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주제들을 드러내는 '칼 같은 글쓰기'로 이를 해방하려 노력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4년, 자전적인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했고, 1984년,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남자의 자리La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 전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대형 프레스코화로 완성한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자신의 출생 이전에, 여섯 살의 나이로 사망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인 『다른 딸L'autre fille』을 선보였고, 같은 해에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를 갈리마르 Quarto 총서에서 선보였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 총서에 편입되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2020년 『삶을 쓰다』에 실렸던 글들을 추려서 재수록한 『카사노바 호텔』을 발표했다.
데뷔 시절부터 아니 에르노는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의 카페-식료품점이었던 자신의 유년 시절로 구성된 자전적 소재에 몰두하기 위해 모든 픽션을 포기했다.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한 그녀의 작품들은 부모의 신분 상승(『남자의 자리』, 『부끄러움』), 자신의 결혼(『얼어붙은 여자』), 성과 사랑(『단순한 열정』, 『탐닉』), 주변 환경(『밖으로부터의 일기』, 『바깥세상』), 낙태(『사건』),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심지어 혹은 자신의 유방암 투병(『사진의 사용』, 마르크 마리 공저)을 소재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해부하였다.
그녀는 “판단, 은유, 소설적 비유가 배제된” 중성적인 글쓰기를 주장하면서 “표현된 사실들의 가치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객관적인” 문체를 구사,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과 동일한 가치로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 에르노에게는 “자아에 내재된 시적이고 문학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쓰기는 “문학적, 사회적 위계를 전복하려는 의도에서 출발, 문학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상들 ― 슈퍼마켓, 지하철 등 ― 에 대해, 이것보다 고상한 대상들 ― 기억의 메커니즘, 시간의 감각 등 ― 을 서술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 둘을 결합하여” 글을 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생각할 때 썼던 그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인 그녀의 작품은 자전의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니 에르노는 사회학자의 방법론을 채택, 자신을 집단적 표본과 특성을 체득한 한 체험자의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를 특수한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특수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나 자신을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나를 사회적, 역사적, 성적 경험과 판단의 총합, 언어의 총합, 또한 세계(과거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주관성을 형성하게 된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의 주관성을 보다 일반적이고 집단적인 메커니즘과 현상을 되살리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다.
” 그녀에 따르면 사회학적 방법은 전통적으로 자전적인 ‘나’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사용하는 나는 비인격적 형태를 띄고 있다. 성별도 애매하고, 종종 나의 말이기보다는 타인의 말일 수도 있는, 전체적으로 다인격적 형태이다. 그것은 나를 픽션화하는 수단이 아닌, 내 체험 속에서 현실의 지표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로써 그녀의 작품은 자신의 궤적의 “사회적 이종교배”(소상인의 딸에서 학생, 교수, 이어 작가가 된)와 그에 따르는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망을 접하고 [르몽드]지에 애도의 헌사문 「부르디외, 회한」을 기고하면서 사회학적 방법론과 자신의 작품 사이의 유대감을 밝혔고, 부르디외의 글이 그녀에게 “자유와, 세계 펼에서의 실천이성과 동의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