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2023년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사랑과 자유정신’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그리는
한 통의 편지 속 사랑, 비밀, 운명의 이야기
《모르는 여인의 편지(Brief einer Unbekannten)》는 오스트리아의 유대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의 1922년 작 소설이다. 어느 날 비밀스런 편지를 보내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일반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특이한 개성과 행위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그녀는 문틈이나 열쇠구멍, 창문을 통해 한 남자의 행동을 남몰래 관찰하고, 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기나긴 세월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그녀가 남자의 기억 속에는 전혀 없는 낯선 여인, 망각의 존재라는 것이 츠바이크가 예리하게 잘라 내는 인간 심리의 한 단면도이다. 한 사람의 절대적 관심과 절대적 사랑이 타인이라는 대상으로부터는 절대적 무관심으로 되돌아오는 기묘한 인간관계는 우리 모두가 되새겨 볼 만한 본질적인 사랑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츠바이크의 소설에서 평범한 삶을 거부하는 병적 존재라든가 괴벽성의 인간, 성적 충동에서 유발된 비극이 흥미로운 인간 유희를 연출하면서도, 결국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을 넘어서 ‘사랑과 자유정신’으로 승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말한다. “관계와 관계를 헤아리는 것이 내 핏속까지 자극한다. 특수한 인간들은 그들의 순수한 현존을 통해 내 인식 욕구에 불을 지핀다.”
저자소개
188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부유한 유대계 방직업자 아버지와 이름난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빈에서 높은 수준의 교양교육과 예술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섬세한 감각과 문학적 감수성을 지녔던 그는 수많은 고전작품을 읽으며 해박한 지식을 쌓았고, 청소년기에는 보들레르와 베를렌 등의 시집을 탐독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습작기간을 거쳤다. 대학에서 독문학과 불문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을 두루 섭렵했으며,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런 배경으로 스무 살의 나이에 첫 시집 『은빛 현』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드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했다. 『은빛 현』을 필두로 수많은 소설 및 전기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38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유태인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다가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 정착한다.또한 2차 세계대전 이전 백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대중적인 작가이자 다른 나라 언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로 독일/오스트리아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츠바이크는 ‘벨 에포크’라 일컬어지는 유럽의 황금 시대에 활동했다. 예술과 문화가 최고조로 발달했던 그 시기를 그는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했던 유럽이 한방의 총성으로 촉발된 세계대전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하게 된다. 황금 시대의 빛과 영광을 박살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구축한 그들 유럽인들이었다. 이 때의 심경은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유럽의 문화사를 기록한 자전적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 잘 드러나 있다.
극심한 상승과 하강을 삶을 통해 모두 경험한 이후, 섬세한 그의 심성은 더 이상 부조리한 세계에서 버티지 못하고 고난의 망명생활 속에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42년 2월 브라질의 페트로폴리스에서 부인과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종종 ‘평화주의자’ 또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라는 평을 받던 그는 “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대는 내게 불쾌하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유로운 죽음을 선택하였다.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쓴 수많은 소설과 평전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독자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상당부분 영화화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예술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예가 천재 감독 웨스 앤더슨의 2014년 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이다. 앤더슨은 이 영화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츠바이크의 소설 '초초한 마음'의 첫 단락을 차용해서 시작하며, 엔딩 크레딧에서 “inspired by the writings of Stefan Zweig” 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그 사실을 확고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