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갭이어
갭이어; 영국에서 시작된 제도로 대학 재학 중이나 졸업한 후 혹은 퇴사하고 직업을 찾기 전 실무 경험을 쌓는 기간을 의미한다. 이 기간에 새로운 경력을 쌓거나 하고자 했던 분야의 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휴학’이나 ‘안식년’ 제도를 꼽을 수 있겠다.<br /><br />사랑하는 일을 찾았다고 믿었다. 대학생 시절 원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했던 나는 학교 밖을 떠나 자발적으로 두 번의 휴학, 갭이어를 가졌다. 이때 강행한 두 번의 자발적 갭이어를 통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무엇을 잘하는 지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멈춤의 시간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로 이끌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이 ‘사랑하는 일’이, 내가 가는 방향이 옳다고 믿으며 10년이 넘는 항해를 해왔다. <br /><br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이 안 선다. 번아웃이 왔고,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나의 상황과 가치관이 바뀌는 동안 줄곧 한 방향만을 보고 달려온 것이다. <br /><br />과연,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을까? 진정으로 이 길밖에 없을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바깥세상을 훔쳐보며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샘솟았지만, 동시에 10년간 쌓아왔던 탑을 버리고 새로운 탑을 잘 쌓아나갈 수 있을지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 전부였던 회사를 내려놓으면, 앞으로의 생계는 어떡하지?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 회사 밖에 나가면 내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건 아닐까? 회사라는 타이틀 없이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br /><br />의문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세 번째 갭이어를 갖기로 했다. 대학생 때의 나처럼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지금, 여러 가지 도전을 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동쪽만 보고 나아가면 해가 뜨는 것만을 보고 지는 것은 볼 수 없는 법이다. 잠시 쉬면서 너른 바다를 사방으로 둘러보며 방향키를 다시 잡아보려 한다.<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