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과 살인귀
“너를 벨 날을 기다렸어.”
『레몬과 살인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가 일품인 서스펜스 미스터리다. 작품은 주인공 고바야시 미오의 여동생인 히나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에서부터 출발한다. 미오는 과거 묻지 마 살인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뒤 불우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 미오에게 유일한 동생인 히나가 살해당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죽은 동생이 말도 안 되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미오의 삶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오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동생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점점 미오 주변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점점 드러나는 진실과 미오를 압박하는 과거의 인물들, 그리고 미오의 심리 변화가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한껏 끌어들인다. 『레몬과 살인귀』는 이 과정을 매우 흡인력 있고 매력적인 필체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무엇인가? 어떻게 다른가? 미오는 사람은 고통을 주는 자와 받는 자로 나눠지며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운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고통 받는 자로 태어난 사람은 불가항력으로 당할 수밖에 없고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체념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미오 자신이 바로 고통 받는 자라고 생각하며 한평생을 산다. 『레몬과 살인귀』는 이러한 구도에 놓인 인물들의 뒤틀린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이 작품의 집필 과정에 대해 결말(범인의 정체)을 가장 먼저 떠올렸고, 그날 밤에 머릿속에 대략적인 줄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온갖 ‘위험한 사람’을 등장시켜 보려고 했습니다. (……) 저는 나기사가 마음에 들지만 그렇게 말하면 위험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 같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위험한 사람 취급을 받기는 싫지만 위험한 사람을 등장시키고 싶었다는 작가의 심리가 무엇인지 작품을 다 읽은 독자들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반전의 반전도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니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온갖 ‘위험한 사람’을 등장시켜 보려고 했습니다.”
『레몬과 살인귀』의 저자 구와가키 아유는 1987년생으로 교토에 거주하고 있다. 교토부립대학에서 문학부에서 국문학과 중국문학을 비교 연구했다고 한다. 현재는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 2021년, 『달궈진 못』으로 제8회 삶의 소설 대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했다. 『레몬과 살인귀』로는 2002년 제21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문고 그랑프리 수상하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데뷔작인 『달궈진 못』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지방 도시 하스오카에서 일하는 지아키는 고향 이즈이루노로 귀성하던 중 후배 모카와 우연히 재회하고 그녀가 스토커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로부터 며칠 후, 모카는 칼에 찔린 시신으로 발견된다. 범인을 찾기로 결심한 지아키는 이즈이루노로 걸음을 옮겨 모카가 다니던 대학과 단골 찻집 등을 찾아다니며 스토커의 정체를 밝히려고 한다. 그 과정을 그리는 한편 상사의 갑질에 시달리면서 회사의 남자 선배를 좋아하는 안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삽입하면서 두 사람 이야기의 접점이 의외의 부분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도 등장인물들의 비뚤어진 동기와 감정이 서서히 드러나고, 교묘한 복선이 독자들을 압도한다.
이 작품으로 받은 제8회 삶의 소설 대상 수상 소감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초등학생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번에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확률이 낮은 사건이 잘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떨어질 것 같았던 대학 입시에서는 바로 전까지 반복해서 풀었던 고전문학 문제가 그대로 출제되어 합격했습니다. 해외여행을 갈 때면 수하물을 분실당하기도 하고 태풍 때문에 귀국편이 결항되기도 하고요. 그것도 간사이 공항, 나리타공항 2년 연속 벌어졌습니다. 처음엔 가족들도 안타까워했지만 두 번째에는 ‘또 그러냐’라고 하더군요. 이번 수상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개인의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쓸 만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것이 우연히 잘 통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운이 좋게 우연이 연달아 발생한 결과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신비로운 낮은 확률을 무기 삼아 유쾌하게 정진하고 싶습니다. 모처럼 꿈에 그리던 직업의 스타트라인 앞에 섰습니다. 부담 갖지 않고 즐겁게 해나가고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에 그리던 작가로 데뷔했을 때 구와가키 아유가 남긴 수상 소감이다. 남들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자신에게는 잘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번 수상도 그러한 우연 덕택이라 자신의 삶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자세는 작가를 겸손하게, 그러나 무기가 되어 용기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그런 작가의 마음이 또 통했는지 이후 작가는 『레몬과 살인귀』로 큰 인기를 얻었다. 발간 즉시 중쇄, 23만 부 이상이 팔렸다. 온갖 위험한 사람을 등장시켜보려고 했다는 작가의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작가의 제안처럼 한국 독자들도 이 ‘레몬’의 맛을 어서, 마음껏 느껴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