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러브크래프트 (Howard Philips Lovecraft, 1890 ? 1937)은 공포 소설과 환타지 문학으로 명성을 떨친 미국의 작가이다. 살아 있을 때는, 거의 작품을 출간하지 못하고 가난 속에서 죽어갔지만, 그는 공포 소설과 환타지 문학 쟝르에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힌다.
러브크래프트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 시에서 1890년 태어났다. 아버지는 보석과 귀금속을 파는 방문 판매원이었고, 러브크래프트가 3살이 되던 해, 정신 병원에 입원한 후 죽을 때까지 병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의 정신병은 매독으로 인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그와 어머니가 매독 증상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
아버지의 입원 후, 러브크래프트는 어머니와 두 이모, 외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외할아버지 와이플 반 뷰렌 필립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삼촌의 성인 ‘와이플‘이 외할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는 지역에서 인정받는 사업가였다. 어린 시절 러브크래프트는 3살에 시를 읽고 해석하고, 6살에는 시를 완성하는 등 영재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가지 질병에 시달린 러브크래프트는 자주 악몽을 꾸는 등 수면 장애에 시달렸다. 그는 자주 악몽 속에서 얼굴이 없는 악마적인 형상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악몽의 경험은 나중에 그의 작품에서 주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1904년 외할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겨진 가족들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러브크래프트 자신도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면서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사회 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주장했다) 고등학교 중퇴 이후, 러브크래프트는 주로 집에서만 머물면서, 시를 쓰는 활동만을 계속했다.
1913년 대중 잡지인 ‘아르고시 The Argosy‘에 당시 유명 소설가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기고하면서, 러브크래프트는 평판의 시선을 끌고, 1914년 미국 아마추어 출간 협회에 가입했다. 1916년 협회의 대중 잡지에 ‘연금술사 The Alchemist‘를 발표한 것이 그의 최초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19년, 오랜 기간 동안의 신경 쇠약증에 시달리던 러브크래프트의 어머니가 정신 병원에 수용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입원하고 사망한 병원이었다) 그러나, 입원 후에도 어머니와 그는 자주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921년 그의 어머니는 신장 수술 후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어머니의 죽음 직후, 보스톤에서 개최된 아마추어 작가 행사에서 그는 소냐 그린이라는 이혼녀를 만나고, 사랑에 빠져들었다. 7살 연상의 소냐 그린은 뉴욕에서 큰 상점을 운영하는 사업가였는데, 이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브크래프트는 소냐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뉴욕에서 ‘칼렘 클럽‘이라는 사교 모임에 참여하게 되고, 클럽 멤버들의 격려로 대중 소설 잡지 ‘이상한 이야기들 Weird Tales‘에 ‘꿈의 순환 Dream Cycle‘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일부 독자들의 비판이 있었으나, 연작은 순조롭게 발간되었다.
그러나, 결혼 직후, 부인 소냐 그린의 사업 실패와 질병으로 러브크래프트는 다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부인을 부양하기 위해서 러브크래프트는 낮은 임금의 회사원 일을 시작하였으나, 경력의 부족 등으로 인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결국, 소냐 그린이 신시내티와 클리브랜드 등지를 돌아 다니는 직업을 구하면서 경제적으로 그를 지원하기로 하고, 러브크래프트는 뉴욕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파트에 강도가 들면서, 그는 ‘걸친 옷만 남은‘ 상태에 처하기도 했다. 나중에 그는 뉴욕에서의 시기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했다; "나는 놀라운 경이와 영감을 찾아서 뉴욕으로 왔다. 그러나, 대신 내가 찾은 것은 공포와 억압이었고, 그것들은 나를 지배하고, 흔들고, 제거하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어려운 시기에 그를 환타지 문학의 거장에 올려 놓은 ‘크툴루 신화‘의 모티브가 구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러브크래프트는 고향인 프로비던스로 돌아 가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프로비던스에서 그는 이전까지 시와 르포의 형식에 초점을 맞춘 작품 활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식의 중단편 소설을 집필했다. 또한 다른 작가의 작품을 다듬거나 대필하는 활동도 활발히 벌였다. 그러나, 비평에 매우 민감하고 쉽게 작품 투고를 취소하는 경향을 가진 러브크래프트는 활발한 작품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는 한번 거절당한 작품은 아예 포기한 후 판매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지속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서 죽기 직전 러브크래프트는 이모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소장암 판정을 받은 후 영양 실조 등에 시달리다가 1937년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그의 팬들은 1977년 모금을 통해서 그의 묘석을 만들어서 세우고 "나는 프로비던스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기도 했다. 그의 열정적인 팬들은 그의 기일과 생일에 맞추어 추모 행사를 매년 열고 있으며, 프로비던스 시의회는 앤젤 가와 프로스펙트 가의 교차로를 ‘러브크래프트 광장‘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앤젤과 프로스펙트 가는 이 소설에서도 등장하는 지명이다)
러브크래프의 작품의 주요 주제는, 숨겨진 지식, 초자연적 존재의 영향, 죄악의 상속, 운명, 위협받는 문명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무지 속에 가려진 비의적 지식이 호기심 많고 과학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되는 것이 숨겨진 지식 테마의 전개 방식이다. 그리고, 이 발견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의 발견처럼 지식의 습득에 의해서 발견자가 상처를 입거나 완전히 파괴당하는 것으로 귀결되고는 한다. 초자연적 존재는 숨겨진 지식과 관련하여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세계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신화 속의 존재인 초자연적인 존재는 인간의 경배의 대상이 되는데, 너무나 강력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이고, 인간이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미치거나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설정 아래에서 러브크래프트는 작품 속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복선과 암시를 통해서 부분적으로만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광기나 파멸을 피하고자 하는 작품 속 인간들의 접근 방식과도 일치하게 됨으로써 작품 전체에 긴장과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힘을 가진다.
러브크래프트 자신의 가족사와 자신의 병약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주제 중 하나가 죄악의 상속이다. 죄악을 저지른 자들의 자손은 혈통을 통해서 전해지는 저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이 주제의 핵심이다. 물론 자손들은 시공간적으로 저주로부터 도망칠 수는 있지만, 꿈이나 환영을 통해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해리스 일가와 로레 일가가 상속되는 저주를 받았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 저주는 일가의 혈통이 아니라 ‘저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전해진다)
독일 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팬이기도 했던 러브크래프트는 슈펭글러의 반문명적 시각에 대해서 전적으로 몰입했다. 슈펭글러에 의하면 인간의 역사는 흥망성쇠의 주기를 가지게 되고 현대 문명 사회는 그 찬란함 속에 이미 몰락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러브크래프트는 "슈펭글러가 학문적 성취를 통해서 증명하기도 전부터 나는 현대의 기계 문명과 산업화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퇴행이라고 믿었다"라고 쓰기도 했다. 인간이 죽음과 어둠의 공포, 야만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산물이 산업 문명인데, 그러한 시도는 결국에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초자연적 존재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러브크래프트의 생각이다. 이 소설에서도 화자의 삼촌은 현대적 의학 교육을 받고, 합리성으로 무장되었으며, 과학 기계를 잘 다루는 의사이지만, 결국에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의해서 파멸에 이르게 된다.
생전의 러브크래프트는 평단과 독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현대 공포 문학이나 하위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의 많은 아이디어와 모티브들은 다른 유명 작가와 작품들에 의해서 활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환타지 문학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되는 톨킨과 동등한 영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