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어거스트 윌리엄 덜레스 (August William Deleth, 1909 - 1971)은 미국의 작가이자 인류학자이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큰 이유는, 그가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의 세계관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는 아캄 하우스라는 출판사를 세워서 공포 및 초자연, 판타지 문학을 전문적으로 출판했다. 당대에는 민속 자료 등을 바탕으로 한 소설 작가로 유명했으며, 역사 소설과 탐정 소설, SF 등 다양한 쟝르의 문학 활동을 펼쳤다.
1909년 위스콘신에서 태어난 덜레스는 첫 소설을 13 살에 쓴 것으로 알려져있다. 독서를 좋아했던 그는 도서관을 자주 출입했고, 책을 사기 위해서 용돈을 아끼기도 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그의 장서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데, 죽은 후에 약 12,000 권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가 좋아했던 작가는 랄프 에머슨과 사무엘 존슨, 알렉산더 뒤마, 에드거 포우 등으로 모험성이 강하고 자연에서 소재를 찾은 작가들이었다.
13 살 이후로 수십 번 잡지 등에 투고하지만 모두 거부를 당한 끝에, 그는 "기이한 이야기들 Weird Tales" 잡지사에 "박쥐의 종탑 Bat‘s Belfry"를 판매하면서 작가로 데뷰했다. 그리고 위스콘신 대학을 다니는 동안 계속 문학 작품 창작에 몰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31년 고향으로 돌아온 덜레스는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면서 창작을 계속했다. 어린 시절의 친구, 마크 쇼러와 작은 집을 빌려서 공포 소설과 판타지 소설들을 창작하고, 그것들을 잡지사에 판매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 결과, 그는 구겐하임 펠로우쉽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릴 정도의 명성과 작품 실력을 인정받았다. 펠로우쉽에서 그를 후원했던 작가들은 노벨상 수상자인 싱클레어 루이스, 헬렌 화이트 등이 포함되었다.
1930년대, 덜렛는 지역 활동에 종사하기도 해서, 학교모 위원회, 지역 장학 위원회 등에서 활동을 했고, 모교인 위스콘신 대학에서 창작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1937년 러브크래프트가 죽고나서 원고를 모두 정리한 덜레스는 그 작품들을 출간하고자 많은 출판사와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을 당했다. 결국, 1939년 덜레스는 오랜 친구인 도널드 원드리와 함께 아캄 하우스라는 출판사를 창립했다. 이 출판사는 기본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발간하려는 목적이었다. 그와 러브크래프트는 오랜 세월 동안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작품 세계를 논의하던 사이였다. 그리고 덜레스는 위스콘신 대학에서 정식으로 창작법과 관련된 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아캄 출판사의 이름 자체가 러브크래프트의 가상 도시인 ‘아캄‘에서 나온 것이었고, 첫 작품으로 발간한 것이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을 모은 작품집이었으므로, 이 출판사는 오로지 러브크래프트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덜레스는 러브크래프트의 미완성 원고들을 가지고 크툴루 신화의 이야기들을 재창작해서 출간함으로써 크툴루 신화의 체계를 부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일부 팬들은 그의 크툴루 작업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대했고, 그가 러브크래프트의 위대한 세계를 망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예를 들어,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신화 세계를 ‘요그-소써써리‘라는 용어로 불었으나, 덜레스가 임의적으로 ‘크툴루‘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이 비판 항목 중 하나였다. 또한, 러브크래프트는 범신론적/이신론적 세계관을 유지했으나, 덜레스가 개입하면서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원 세계관을 오염시켰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레스의 세계관은 러브크래프트와의 오랜 교감의 결과물이고, 그의 체계화가 아니었다면, 러브크래프트의 고딕적 세계관 자체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변호가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41년, 덜레스는 "캐피탈 타임즈"라는 지역 신문사의 문학 편집자로 일하게 되고, 그 일을 1960년까지 지속했다. 이 시기는 덜레스가 경제적으로 안정되면서 다양한 작품을 쏟아내던 시기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집필 속도에 대해서 1 년에 750,000 단어에서 1,000,000 단어를 이상을 쓸 수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덜레스가 미국 문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쌕 프레리 전설 Sac Prairie Sage" 라는 총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총서는, 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 일기, 시, 기사 등으로 구성되어 가상의 도시, 쌕 프레리라는 도시를 구현하는 문학 작품 시리즈이다. 그는 원래 150 편 이상의 소설로 이 총서를 구성하고자 했다. 그가 원했던 것은 20세기판 발자크의 "인간 희극 Human Comedy" 또는 프루스트의 "과거의 기억들 Remebrance of Things Past"이었다. 당시만 해도 유럽에 비해서 열등하다고 여겨진 미국 문학 내에서 상당히 과감하고 혁신적인 기획이 "쌕 프레리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총서 덕분에, 덜레스는 퓰리처 수상 작가인 햄린 갈랜드와 조나 게일 등의 주목을 받고, 문단 내에서 열렬한 추종자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총서는 4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매들의 자리 Palce of Hawks"를 1935년에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작품들은 "현대의 생활의 기반을 이룬 예전 위스콘신 지역의 전설과 신화를 구성했다"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가장 미국적인 소설로서 각광을 받았다.
뒤를 이어, 1937년의 "아직도 여름 밤 Still is the Summer Night", 1941년 "마을의 날들 Village Year", 같은 해의 "봄의 저녁 Evening in Spring"이 출간되어 "쌕 프레리 전설" 총서가 진척을 이루었다. 또한 그는 가짜 자서전의 형식으로 자연 속 생활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단편들을 집필해서 총서에 문학적 다양성을 더하기도 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인 1959년의 "개의 꼬리 Tail of the Dog"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편 소설은 스콜라스틱 잡지에 의해서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1948년 그는 세계 판타지 출판사 협회의 의장으로 선출되고, 1953년 상당히 늦은 나이에 산드라 윈터스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 결혼은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6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1960년, 덜레스는 "매와 쏙독새"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시와 자연주의 산문만을 연재하기도 했다.
1961년 발표된 "서쪽의 월든 Walden West"는 덜레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쌕 프레리 전설" 시리즈에 속한 이 작품은, 명상 산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산문들은, 자연을 관찰하는 글쓰기와 철학적 명상, 사람들에 대한 관찰을 혼합하고, 자연의 기억과 냄새, 향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고 할 수 있다.
1971년, 덜레스는 심장 마비로 사망했고, 위스콘신 강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아캄 출판사는 그의 딸, 에이프릴에 의해서 운영되었고, 자연주의자와 인류애주의자들의 작품을 출간하는 출판사로서의 명성을 제대로 보존했다.
〈번역자 소개〉
2014년, 활동을 시작한 TR 클럽의 구성원은 인문학과 공학 등을 전공한 전문 직업인들로, 모두 5년 이상의 유학 또는 현지 생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삶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관심을 가진 도서와 컨텐츠가 국내에서도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 IT 벤처기업가, 출판 및 서점 편집자, 대학 교원, 음악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바탕으로, 본인들의 외국어 능력과 직업적 특기를 기반으로, 모던한 컨텐츠 번역을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