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
세계 곳곳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한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금을 없애려는 이들은 전자 결제의 편의성, 투명성, 효율성, 안전성 등을 이유로 현금 없는 사회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현금을 없애려는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재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우리를 통제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유익해서가 아니라 힘 있는 이익 단체들이 우리를 염탐하고 우리를 상대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데 현금 없는 사회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 있는 이익 단체들이 바로 정부와 기업들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가려져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정부와 기업을 견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지불 수단인 현금을 사용할 권리를 우리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만 모르는 현금 없는 사회의 불편한 진실
현금 없는 사회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카드 사용과 모바일 결제의 보편화로, 우리는 현금이 없어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현금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현금 없는 사회가 우리에게 편리하고 안전하며, 지하 경제를 양성화시키고, 화폐 발행 비용을 절감하게 하며, 여성과 빈곤층에 힘을 실어주는 데 도움이 되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앞선 주장들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며, 우리를 현금 없는 사회로 몰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말한다. 바로 재정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유익해서가 아니라 힘 있는 이익 단체들이 우리를 염탐하고 우리를 상대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데 현금 없는 사회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 있는 이익 단체들이 바로 정부와 기업들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가려져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금 없는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하나하나 짚는다. 저자는 “현금이야말로 정부와 기업을 견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지불 수단”이라며, 우리 스스로 현금을 사용할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현금의 폐지는 개인의 자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교통카드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나 회사에 간다. 그리고 점심이 되면 근처 식당에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누군가 한 명이 먼저 결제한 뒤 간편결제 앱을 통해 송금을 해주는 방식으로 식사 비용을 정산한다. 식후에는 사이렌 오더 시스템을 이용해 원하는 커피를 주문 및 결제한 뒤 다시 학교나 회사로 돌아간다. 하루의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갈 때도 역시 교통카드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렇게 현금을 사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은 현금을 쓸 수 있는데도 쓰지 않는 것이지만, 정말 현금을 쓸 수 없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 이 책의 저자는 자국 영국을 비롯하여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스웨덴, 프랑스, 케냐, 터키, 중국 등의 나라에서 현금을 없애기 위해 열심인 이유가 무엇인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경제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독일과 일본 등에서는 왜 아직까지 현금 거래 비율이 높은지도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현금을 없애려는 이들은 현금 없는 사회의 편의성, 투명성, 효율성, 안전성 등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은 단편적인 이유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금이 사라지면 가장 이득을 보는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그 답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금이 사라지면 정부와 은행을 비롯한 일부 기업들은 우리의 금융 거래를 비롯한 삶의 전반적인 부분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정부는 오늘날처럼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을 통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목적으로 마음껏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금이 존재한다면 원금을 보장받을 수 없는 예금주들의 뱅크런 사태가 벌어질 것이 우려되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함부로 도입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은 우리가 무언가를 사고팔 때마다 수수료를 부과하고, 우리의 소비 습관 데이터를 팔아넘겨 수익을 올리게 될 것이다. 지금은 수수료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카드 거래도 현금이 사라지면 보장되리라 장담할 수 없으며, 우리의 소비 습관 데이터를 손에 넣은 기업이 공략하는 타깃 광고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현금 없는 사회에서는 모든 거래가 금융전산망과 전자결제망을 통해 진행되며 기록될 것이다. 이는 우리의 모든 거래가 추적당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밖에도 현금이 사라지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문제점들이 수없이 많다.
저자는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한 움직임이 전 세계 각국에서 사회적 합의나 그 결과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은근슬쩍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 움직임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저항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현금 폐지를 막기 위해 우리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문 엿보기
현금이 사라져가는 세상을 무턱대고 받아들이다가는 결국 후회하게 될 것이다. 현금 결제가 되지 않는 주차장에서 휴대전화와 씨름하는 일처럼 지금은 사소해 보이는 문제가 결국 기득권 세력이 우리 삶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 세상이라는 끔찍한 문제로 진화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막대한 권력을 우리 스스로 그들에게 내주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할 것이다.
우리는 현금을 당연시한다. 현금이 어디든 있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든 말든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현금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하룻밤 사이에 주머니 속 지폐와 동전이 모두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나 쇳조각이 되어버렸다면 어떨까?
-〈1장 현금 없는 주차장〉 중에서
인도 정부만 현금 사용을 중단하도록 시민들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다. 2013년 스웨덴 중앙은행은 고액권인 1,000크로나 지폐를 폐지했다. 스웨덴의 시중 은행 지점 대부분이 더 이상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다. 또 상점이나 주점을 포함한 가게들은 ‘현금 없는 구역’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으며 교회에서는 헌금 접시 대신 전자카드 결제 단말기로 헌금을 받는다. 심지어 길거리 잡지를 파는 노숙자들까지 모바일카드 결제에 필요한 카드 단말기를 지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덴마크는 새로운 법을 마련해 상점들이 현금 결제를 거부하고 카드 결제만 할 수 있도록 했다. 2015년 프랑스는 1,000유로 이상의 현금 결제를 법으로 금지했다. 스페인도 프랑스와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다. 미국 남부의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중고품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 불법이다. 멕시코에서는 은행 계좌에 매월 1만 5,000페소 이상을 입금할 경우 초과 금액의 3퍼센트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터키에서 중앙은행을 대신해 카드를 발행하는 인터뱅크카드센터는 새로운 지불 시스템이 2023년까지 터키 경제를 완전히 현금 없는 경제로 만들어줄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정부가 승인한 단일 지불 시스템을 도입했다.
-〈2장 현금 없는 사회〉 중에서
현금은 우리가 금융 산업을 견제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지불 수단이다. 독점 기업의 서비스를 거부하고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거래 수단이다. 그나마 은행이 합당한 수준으로 수수료를 유지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우리 돈을 자기 돈 쓰듯 함부로 쓰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언제든 돈을 인출해 보관할 수 있으며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우리끼리 거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금을 없애려는 은행에 동조하고 은행이 우리를 휘두르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정신 나간 행동이나 다름없다.
-〈4장 현금 없는 사회의 악몽〉 중에서
케네스 로고프는 그의 책 《화폐의 종말》에서 “마약 밀매, 공갈, 갈취, 공무원의 부정부패, 인신매매, 돈세탁을 포함한 광범위한 범죄 활동에서 현금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적어놓았다. …… 앞서 언급한 로고프의 주장은 온라인에서 전자 화폐 관련 범죄가 넘쳐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좀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현금과 범죄가 상관관계에 있다는 주장으로 2015년 영국 은행 고객들이 카드 결제, 온라인 뱅킹, 부정 수표(극히 일부) 관련 범죄로 총 7억 5,500만 파운드를 잃었다는 충격적인 통계를 어떻게 설명할까? 이 통계에 속한 범죄자 중 누구도 현금이 들어 있는 돈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은행 고객들의 돈은 불법 계좌 개설을 막기 위해 마련된 규제 장치를 보란 듯이 뚫고 개설한 범죄자의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
-〈5장 현금과 범죄〉 중에서
우리가 은행에 의존하도록 만들려는 이유를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수백억 파운드에 달하는 현금을 턱없이 낮은 예금 금리로 예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에 돈을 예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경우 은행과 달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대로 우리가 현금을 자주 사용하지 않더라도 돈을 인출하고 보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지킨다면 은행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현금 없는 사회가 되면 그러한 힘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7장 신뢰할 수 없는 은행〉 중에서
2014년 12월, 전 세계 모바일 화폐 계좌 3억 개 중 절반에 가까운 1억 4,600만 개가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등록된 계정이었다. 세계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의 경우 1인당 소득이 1,630달러다. 영국과 미국의 1인당 소득이 각각 4만 1,230달러와 5만 7,540달러임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소득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역이 휴대전화를 기반으로 한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다른 어느 국가보다 한참 앞서 나가고 있다. 모바일 화폐 계좌가 두 번째로 많은 지역 역시 유럽이나 북아메리카가 아닌 계좌 7,690만 개가 등록되어 있는 남아시아 지역이다. 어째서 그럴까?
그 답은 바로 유엔 회원국, 개발도상국 정부, 비정부 기구, 자선 단체, 상업계가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에게 휴대전화 결제를 사용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소비자들이 현금 폐지에 다소 반감을 드러내는 가운데 지불결제업계는 가난한 국가에서 실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소비자를 충분히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12장 실험 대상이 된 개발도상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