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실패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돼.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은하철도 999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떠난 철이는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첫사랑의 이미지인 금발의 메텔, 은하계에서 가장 못생긴 만화 주인공 캐릭터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철이, 늘 정차시간을 재촉하는 성실한 차장,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가야만 하는 안드로메다, 그곳에 사는 천년여왕 그리고 우리가 어느새 잃어버린 소중한 기차, ‘은하철도 999’. 그 ‘은하철도 999’를 타고 상상의 별들을 지나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떠난 철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엇을 알게 되고, 어떤 환상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이 노랫소리가 기적처럼 들려오면, 어스름이 내려오는 저녁 무렵 안방에는 ‘은하철도 999’가 정차하는 역이 생겨나고, 아이는 TV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심오하고 드넓은 우주 공간으로 메텔의 손을 잡고 이끌려 들어갔다. 뭔지 모를 어둠과 안타까움, 슬픔이 가득했던 화면 속 철이의 모험을 함께하다 철이가 제때 기차를 타지 못할까 마음을 졸이던 어린 날의 기억. 지금의 3~40대라면 누구에게나 이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차에서 서둘러 내렸고, 열 살 무렵 메텔을 사랑하던 소년소녀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매일 매일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모험의 길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다.
『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는 철이 같은 북 칼럼니스트 박사와 침착하고 비밀스런 메텔 같은 만화평론가 이명석, 이 두 저자가, 우리가 놓쳐버린 기차인 20세기식 증기기관차 ‘은하철도 999’를 타고 인생이란 이름의 은하계를 지나는 궤적을 그린 성장기다. 철이, 메텔과 함께 ‘은하철도 999’를 타고 은하계를 여행하다 발견한 슬픔과 기쁨, 희망과 용기의 순간들을 담았다. 누구에게나 이 여행은 한 번뿐이고 처음이며 혼자다. 하지만 『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에는 든든한 지원군인 철이와 메텔이 있다. 하늘을 보며 꿈을 꾸던 소년이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겪은 여러 고민과 성장의 의미를 찾기 위해 우리를 깜깜한 우주로 데리고 간다.
이 책은 ‘은하철도 999’의 에피소드가 담긴 별들을 지나며, 그 속에서 우리가 고민하는 여러 심리적 테마를 다시 생각하는 에세이다. 그것은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일 수도 있고, 영원히 어렵기만 한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청춘의 눈부심에 대한 동경과 질투일 수도 있다.
불운의 폭풍우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그냥 고집스레 밀고 나가는 것은 진짜 어리석은 일인지 등 모든 별에는 나름의 고민과 희망이 있고, 그 별들을 지나며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된다. 그 여행을 누군가는 평탄하게 지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몹시 험난하여 결국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저자는 그 여행을 거쳐야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고, 자신들도 그 시간을 거치며 여전히 서툴지만 조금은 편안해졌다고 말한다.
원작만화를 보면 메텔이 철이(일본명: 호시노 데쓰로)에게 ‘은하철도 999’의 탑승을 제안하자, 철이가 속으로 다짐하는 말이 있다. ‘내 미래와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 또한 이 만화를 통해 우리에게 ‘여행의 시간을 견디고 자신의 운명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기계 몸을 얻고자 했던 철이는 마침내 꿈을 이루었을까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우리는 진정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은하철도 999’가 TV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던 1980년대 초반에 유년기를 보낸 두 저자는, ‘은하철도 999’를 통해 만화, 우주, 기차여행에 대한 꿈을 키웠고, 어른이 된 뒤 ‘은하철도 999’의 극장판, 만화판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의미와 철학적인 메시지를 찾아낸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은하철도 999’의 내용을 단편적인 캐릭터로만 알고 있고, 만화 원작이 국내에서 절판된 상태라 원작이 담고 있는 그 깊은 세계를 제대로 알기도 어렵다. 결국 두 사람은 ‘은하철도 999’를 새롭게 바라보는 글을 쓰기로 의기투합한다. 그 글을 통해 내 마음속에도 당신의 마음속에도 잠자고 있는 유년의 꿈을 일깨우고, 삶에 지친 우리가 잠시라도 그 꿈을 찾아 떠나보기를, 그 길을 안내하고자 글을 썼다.
이 책은 주제별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 부 안에는 이명석, 박사 순으로 글이 나뉘어 있다. 각 에피소드 위에 삶으로 일군 문장을 정리하였지만, ‘선천적 재미주의자’인 저자들의 특기, 위트 또한 놓치지 않는다. 가령 시골에서 대구로 전학 와 존재감도 없던 시절, 느닷없이 나타난 비둘기를 키우다 비둘기 나라의 왕이 된 이야기라든가(「시간 장난꾼과 비둘기 날벼락」) 아빠를 따라간 남자 목욕탕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호기심은 삶의 에너지」) 등은 마치 만화의 한 장면 같아 절로 웃음이 나온다. 삶의 무엇일까 진지하게 묻다가도 뒤돌아서 한쪽 눈을 찡긋하는 것만 같다.
1장은 유년기 소년의 꿈에 대한 내용이다. 다른 성별에, 서울과 대구라는 다른 공간에서 자란 두 저자는 너무나 다른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어른이 되어 서울에서 만나 우정을 쌓는다. 그래서 때때로 웃프고 때때로 슬픈 유년의 이야기는 다채롭고, 연이은 실수 속에서도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가는 ‘은하철도 999’ 속 철이의 성장과 많이 닮았다.
기계 백작에 의해 엄마가 죽고, 혼자 남은 철이에게 메텔이 나타나 ‘은하철도 999’의 탑승권을 내민다. 메텔과 함께 지구를 떠나는 철이는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2장은 너무나 짧아서 아름다운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혼자만의 별을 가지고 싶었던 시절, 별은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은 마냥 아름답다.
3장은 사람 혹은 생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마냥 착한 것만이 미덕이 아닌 것을 알게 되는 나이, 누군가 나 대신 독하게 싸워줬으면 싶을 때가 있다는 걸 알면서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된다. 인생은 매번 무엇을 좋아할 것인가 결정의 연속이고,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우리 삶이 흥미롭고 스펙터클해”(253쪽)진다.
철이는 본능적으로 상처받은 사람을 안다. 그리고 그의 곁에 가서 어떻게라도 힘이 되어주려 한다. 대신 화를 내주기도 하고, 총을 쏘아주기도 한다. 여인이 철이의 손을 잡았을 때, 그의 커다란 하트가 자동적으로 감지했을 거다. ‘지금 나는 이 사람 곁에 있어주어야 해.’
절대로 자기를 버리지 않을 사람과 하는 기나긴 여행.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버려질 것 같으면 지레 먼저 버려버리는 그런 여행 말고, 영원히 마주 보고 앉아 있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여행.
4장은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냉소하고, 어떤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누군가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 소신 있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이 있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끝까지 가고야 마는 똥된장주의자, 사고투성이 호모 사고치우스 등 철이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캐릭터들을 이 장에서 만날 수 있다. 쓸모가 없어지고 싶었던 별 ‘블루 멜론’은 기계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말지만, 우리 인생이 꼭 의미가 있을 필요가 있는지 삶을 대하는 태도도 묻는다.
“안녕, 은하철도 999. 내 소년 시절의 꿈이여”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철이와 메텔을 위한 오마주
2017년, ‘은하철도 999 연재 40주년’을 기념해 원작자인 마쓰모토 레이지가 방한하여 저자 강연회를 열자 중년 남성들이 가득 몰렸다고 한다. 비록 세월이 꽤 흘렀지만, 메텔을 첫사랑의 이미지로 소환하는 세대의 노스탤지어는 여전히 막강하다. 『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는 원작을 아끼는 이런 세대뿐만 아니라, 원작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를 위해 『은하철도 999』에 대한 흥미로운 해설을 붙였고, 모호하기만 한 메텔의 정체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정리하였다. 또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인 마쓰모토 레이지의 허락을 받아 원작만화 60쪽을 수록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원작의 스토리를 모르는 독자라고 해도 누구든 쉽게 은하철도의 이야기에 녹아들 수 있다.
기계 문명과 죽음, 노동의 가치, 환경 문제 등 여러 세계관 속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은하철도 999’의 우주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신비롭고 황홀하기만 하다. 잠시 치열한 하루를 내려놓고,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철이와 메텔이 들려주는 안드로메다 횡단기를 들으며 오늘 밤 ‘은하철도 999’를 타고 내 별을 찾아 날아가는 것은 어떨까.
■ 은하철도 999에 대하여
‘은하철도 999’는 일본 국민 만화가 마쓰모토 레이지가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잡지 『소년 킹』에 연재를 시작하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원작만화는 곧바로 큰 인기를 모았고, 1977년 제23회 쇼가쿠칸만화상小?館漫?賞을 수상했다. 이 만화는 마쓰모토 레이지가 젊은 시절 기차를 타고 도쿄로 향하며 읽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에서 모티브를 얻어왔으며, 『소년 킹』 연재 중 애니메이션화되어 큰 인기를 끌며 애니메이션 열풍을 일으켰다.
한국 팬들은 대부분 원작만화보다 TV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만났다. 문화방송(MBC)을 통해 1982년 1월부터 정규 편성되어 일요일에 방송되었다. TV판의 인기에 힘입어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세 편(1979, 1981, 1998년) 제작되었고, 국내에서는 투니버스를 통해 1996년에 1기, 2기가 방영되었다.
1990년내 중후반 일본 문화가 해금되면서, MBC가 1996~1997년에 TV판을 재방영했고, 1997년에는 원작만화의 정식 한국어판도 발간되어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며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어 2003년에는 MTV, 2008년에는 EBS를 통해 TV판이 재방영되었다.
‘은하철도 999’의 시대 배경은 서기 2221년이다. 미래의 지구에 살고 있는 소년 철이가 기계 백작에게 엄마를 잃은 직후 메텔이라는 여인이 그에게 찾아와, ‘은하철도 999’의 승차권을 내민다. 안드로메다 행이다. 철이는 고심 끝에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기계 몸을 공짜로 준다는 안드로메다로 가기로 한다. 지구를 출발해 은하의 여러 별을 지난 뒤 안드로메다 은하의 종착역까지 가는 이 긴 여행에서 열차가 정차하는 곳마다 놀라운 상상의 별들이 등장하고, 철이는 다양한 존재들과 만나 모험을 겪고 차츰 성장해간다.
책 속에서
철이와 메텔의 여행은 세상이 어두워지면 찾아오는 꿈과 같습니다. 매일 밤 그것은 또렷한 현실이 되지만, 해가 뜨면 마음 깊은 곳으로 숨어버립니다. 마음속에 숨어버린 이야기는, 여행자가 다시 꿈을 꿀 준비가 되었을 때에만 나타납니다.
_5~6쪽
은하철도는 바로 내 앞에 놓인 수직 선로 위의 이야기였다. 이 선로를 힘차게 밟아가면 점점 가속이 붙고, 언젠가 저 하늘 위로 슈웅 하고 날아오를 수 있을 거야. 은하철도가 달리는 우주는 언젠가 내가 직접 찾아갈 미래였다.
_23~24쪽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가끔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그 계를 떠나보기를 권한다. 여행은 가장 좋은 방법이다. 혹은 취미라는 작은 별을 키우며, 두 별 살림을 하는 것도 좋다. 은하철도처럼 거대한 노선을 타지 않아도 좋다. 변방을 찾아가는 작은 노선이라도 올라탄 뒤, 자신이 사는 별을 바라보며 생각해보자. 정말 저 별은 내게 어울리는 곳일까? 저 별에 사는 것이 내게 최선일까?
_90~91쪽
자신의 미래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힘을 믿는다는 뜻일 게다. 미래에 더 성장하리라는 걸, 자기 안에 그런 잠재력이 풍부하게 있다는 걸 믿는다는 뜻일 게다. 자신이 하는 만큼 성취할 수 있다는 걸 믿는다는 뜻일 게다. 사실, 우리는 그런 믿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성장은 지지부진하고, 뭔가 이루려고 하면 빼앗기거나 저지당한 경험이 생생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믿음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_154쪽
‘은하철도 999’는 무엇보다 젊은이의 꿈을 사랑한다. 특히 무모해 보일수록 박수치고 응원한다. 자신의 좁은 별을 떠나 우주의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청년, 기계 인간의 하청을 벗어나 자유롭게 기계를 만들기 위해 기차를 훔쳐 탄 엔지니어, 덩치가 너무 커서 은하철도에 탈 수 없자 자기 종족의 전용 열차를 만들기로 한 공룡 …… 하지만 그 꿈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을, 잔인할 정도의 상상력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_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