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따가운 시선이 시도 때도 없이 내리꽂히던
먼 이방의 도시에서 씩씩하고 유쾌하게
“저는 오늘 하루도 인간답게 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편지글로 한국 사회에 뼈아픈 질문을 던지며 이름을 알린 음악가 김지혜가 말하는 지극히 사적인 공존법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만 15개월에 접어든 아이를 데리고 남편의 유학길에 함께 올랐던 것이 벌써 10여 년 전. 한국을 떠나 머나먼 독일에서 보낸 시간은 익숙한 것이 낯선 것이 되고, 낯선 것이 삶의 테두리 안에서 익숙해질 만큼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해답만큼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그 틀을 견고하게 쌓았다.
한국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로 활동했을 만큼 저자는 인간 사회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런 그가 펜을 들어 한국 사회를 향해 편지글로 목소리를 내고, 음악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데는 독일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처음 마주한 독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방인을 향한 그들의 경계와 인종차별은 그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그렇게 독일은 손을 뻗어도 만져질 것 같지 않은, 그저 하나의 예쁜 풍경이었다. 그러던 그가 닫힌 마음을 연 것은 좋은 친구들을 만나면서부터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것을, 고향인 한국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을 먼 독일에 와서야 처음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그 좋은 친구들 곁에서 숨통이 트이자 독일 사람들의 삶과 사회 그리고 교육 시스템 등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한국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여유가 생겼다.
음대를 나오지 않아도 음악가가 될 수 있는 사회,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돈을 번다고 비꼬지 않는 사람들. 누군가의 눈엔 한참 늦고 한참 모자라지만, 그렇게 김지혜는 대안학교인 발도르프 학교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일을 하며 하고 싶었던 음악을 만들고, 스스로 즐겁고 행복하면 되었다는 이유로 머릿속 생각들을 글로 쏟아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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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당신과 내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이 책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는 저자 김지혜가 독일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을 저자 특유의 날카롭고 섬세한 시선에 음악가 특유의 감성과 부드러움을 더해 써 내려간 에세이다. 한국과 독일 그리고 8,000km. 거리 만큼이나 한국과 독일이라는 두 나라는 표면적으로 보면 몹시 멀고 전혀 다르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지 않으면 세상 모든 이상과 이념은 본래 모습을 쉽게 잃어버린다는 것을, 이는 한국이든 독일이든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을 누군가와 그런 그들을 그저 먼 곳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어 더욱 마음이 아팠다는 저자는 이 책으로 우리에게 다음의 말을 전하려 한다. “인간 세상에서 천국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해도 최소한 지옥을 면하는 길은 만들어보자”고 말이다.
1장은 저자와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단란한 세 가족과 고양이 미니까지, 따뜻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 같은 그의 삶은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순탄하지 않았다. 학벌, 나이, 외모 등으로 차별받은 한국의 이야기부터, 이방인으로 혹여 실수하지 않을까 자신을 엄격하게 검열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의 이야기까지.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마음 놓고 편히 살지 못했을 저자의 삶이 안타까우면서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같아서 깊이 공감된다.
2장은 김지혜가 독일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이야기다. 독일 생활 10여 년 차, ‘안겔라’라는 이름이 익숙해질 무렵 잘 갖추어진 독일 사회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고 외치는 한국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최소한 인간으로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그곳…. 몸이 아파도 출근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 인간의 기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들, 파업이 정당하지 못한 일이 되는 모습, 한부모 가정이 국가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되려 손가락질받는 행태 등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저자는 힘들었다고 말한다. 독일에 살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국에서는 왜 당연하지 못한 것들이 되는지, 저자의 한탄과 탄식이 이곳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3장은 이방인 김지혜가 들여다본 독일 사회의 이야기다. 소박한 식탁,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들, 아무리 보아도 특별할 것 없는 그들의 삶은 도대체 왜 행복한 것일까?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할 것 같은데, 왜 독일은 지옥이 되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저자는 궁금증을 품은 채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천천히 따라가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길에서 또다시 수많은 질문과 마주하며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다.
4장은 저자가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인종차별로 눈물 콧물을 쏙 빼게 만들었지만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해준 사람들, 밤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던 그때 나타난 좋은 친구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향살이를 선택한 시리아 난민 가족, 나이는 어리지만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꼬마 친구들까지. 모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누군가를 미워하고 특정 나라나 종교에 선입견을 갖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없고, 한정된 경험과 부족한 정보에서 오는 편견만큼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김지혜는 자신이 마주했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두 찾았을까.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타인의 고통과 행복에 무뎌지지 않고 살아갈 때, 그 행복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숨구멍이 되어주고, 난로가 되어줄 때 나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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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과 부족함의 경계에서,
“우리는 결국 모두 이방인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조심스레 우리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살던 곳을 떠나는 순간 누구나 이방인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조차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 순간 사람들은 서로의 장점과 같은 점을 찾아 칭찬하기보다는 단점과 다른 점을 찾아내는 데만 급급하다. 그렇게 너와 나를 나누고, 분류하고 분류되고, 차별하고 차별받는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시험을 통과한 정규직, 너는 시험을 치루지 않은 비정규직, 내 아파트는 ○○, 너는 임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든 ‘다름’과 ‘부족함’의 잣대 안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이방인으로 만들거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규정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같이 웃고, 같이 울며 공감해 나갈 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힘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 나갈 힘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저 서로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답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작가 김지혜가 자신이 겪은 일들을 있는 힘을 다해 털어놓는 이유다.
** 특별히 이 책에는 저자가 작곡, 연주한 피아노곡이 담긴 CD가 수록됩니다.
TRACK LIST (총 7곡)
1. 숨바꼭질도 하고요, 잡기 놀이도 하고요
2. 고양이랑 놀아요
3. 별 세고 있어요
4. 숲,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었던
5. 비가 내려요
6. 엄마랑 자전거 타요
7. 놀이터에서 집으로 가는 길
책 속에서
결혼 전, 남편의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였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정호가 정말 아깝다고 생각해요. 알아요?” 안다고 하기에도 모른다고 하기에도 참 난감한 질문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그분은 재빠르게 다음 질문을 건넸다. “미국엔 가봤어요?” 이 질문엔 확실히 대답할 수 있었다. “아니요.” 내 대답을 듣고 그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내게 말했다. “하긴, 대구에서 서울까지 왔으면 멀리도 온 거지. 코스닥이 뭔지는 알아요?” _24~25쪽
“정말? 정말 그것만 받아?” 유디트의 생각에 내가 받는 월급이 너무 적은 액수였던 모양이다. 나는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피아노 반주자니까 그렇겠지.” 내 말을 듣던 유디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독일 공립학교의 경우는 달라. 학교라는 틀 안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하는 기본급이 있어. 수위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교사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말이야. 아, 정말 말도 안 돼.” _66쪽
“나 오늘 7시간이나 일했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니?” 그때가 오후 5시 즈음. 우리나라 워킹맘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이야기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녹초가 된 엄마에게 아이를 돌보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회,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기는커녕 무자비하게 짓밟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사회가 그 친구에겐 정말 상상하기 힘든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_83~85쪽
전날 밤에 인터넷 주문을 하면 이른 아침 문 앞에 신선하게 포장된 아침 식사가 도착해 있고, 전날 밤에 주문한 물건들이 그다음 날 아침이면 도착하는 놀라운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 빠르고 편리한 세상과는 180도 다른, 지구 한 켠의 느려터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는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의 목숨을 갈아 넣은 편리함은 과연 우리에게 안락함만 가져다줄 것인가? 누군가의 저녁 시간을 빼앗고, 누군가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과 맞바꾼 신속하고 편리한 시스템으로 우리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런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을 것인가? _98쪽
아들이 학교에서 ‘중국놈’이라고 심하게 놀림을 받을 때였다. 비올라가 나를 위로해주며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는 사람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강의를 시작할 때면 먼저 칠판에 A부터 Z까지 적어놓는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욕을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라고 하면, 어느 학교 할 것 없이 아이들은 C에서 ‘Chinesen(히네젠, 중국인)’ J에는 ‘Juden(유덴, 유대인)’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나라와 민족을 일컫는 말이 욕이 되어버린 것이다. (…) “어른들한테서 배운 거지. 우리 윗세대들이 그런 말을 많이 썼는데 아직도 그게 남아 있는 거야.” _114쪽
인지학은 몰라도 만 다섯 살까지의 아이들은 ‘노는 게 공부’라는 걸 알고 있고 자신 역시 그렇게 자라온 사람들, 함께 노는 것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들이 ‘공부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영어 유치원 같은 건 더더욱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지구 한편에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든,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이 의외로 꽤 괜찮으며, 그런 부모들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도 꽤 기대가 되고 믿음이 간다는 것을 말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이 세상엔 대치동 말고 이런 동네도 있다. _153쪽
다른 유럽 국가들은 잘 모르겠지만 독일의 파업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조용하다. 내게는 낯선 모습이다. (…) 독일에 살며 매번 마주하는 모습이지만, 파업이 일어나면 독일의 기업 경영진들은 시간을 질질 끌거나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협상을 피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 또한 ‘노조의 이기적인’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특별히 인류애가 넘쳐서 그럴까? 그렇지 않다. 독일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일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정당한 권리를 학교와 사회에서 배우며 자란다.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 이러이러한 규칙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부당하다고 회사에 말하도록 배우는 것이다. _164~165쪽
이곳 부모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자기 아이가 시험을 잘 보면 좋아하고, 못 보면 속상해한다. 하지만 석차라는 것이 없다 보니 풍경이 조금은 다르다. ‘누구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 대신 아이가 받은 점수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석차는 없지만 유급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성적표에 석차가 나오는 것과 유급제도가 존재하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내 눈에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가지는 차이점이 그 사회의 전체 분위기와도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 절대평가에서는 경쟁의 상대가 타인이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정말 타인을 이기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_193~194쪽
“왜 독일에 왔어요?” 보통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서 먼저 인사라도 하고 난 다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기 마련인데, 그렇게 대뜸 약간 화난 듯한 표정으로 고향을 묻는 사람을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고 얼떨결에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고 말았다. 그 질문에 답하기 이전에 그녀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 먼저 언급했어야 했다는 후회는 총총히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뒤늦게 밀려왔다. 남편의 유학 때문에 독일로 오게 되었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중얼거리던 혼잣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우리 동네에 왜 자꾸 중국놈들이 오는 거야….” _254~255쪽
“아줌마는 요즘 무슨 일이 제일 재밌어요?” 요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잠깐 멈칫했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음… 아줌마는 요즘 음악 만드는 일이 제일 재미있어.” “그럼 CD 있어요?” “어? 아니, 아직 없어.” “에이, 그럼 빨리 만들어야 해요.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요, 글 쓰는 게 재밌는 사람은 글 써서 책을 만들고, 음악 만드는 게 재밌는 사람은 음악을 CD로 만든대요.” (…) 요즘 무슨 일이 제일 재미있냐던 요나의 말이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았다. 나는 마음의 손을 길게 뻗어 요나의 말을 가슴 한 켠에 넣어두었다. 살면서 가끔 가슴 한 켠을 더듬어 꺼내 보고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_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