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는 오늘도 행복을 연습해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토끼 알렉스
까칠하지만 따뜻한 생각토끼 알렉스의
감성 공감 에세이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 버려진 더치 토끼 알렉스. 래빗 헤이븐(The Rabbit Haven)이라는 보호소에서 입양되기만을 기다리던 알렉스는 어느 날, 한국에서 온 유학생 큐 누나를 운명처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혼자 유학 온 외로운 큐 누나가 외로운 알렉스를 만나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고, 하나의 어엿한 존재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 에세이는, 실제로 한국인 유학생에게 입양되어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으로 이사와 살아가는 알렉스의 일상을 바탕으로 쓰였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들의 일상을 담은 동물 에세이는 수없이 많지만, 이 책은 일상에서 끄집어낸 깨달음을 토끼의 시선으로 담아낸 조금은 색다른 동물 감성 에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가족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일상에 숨은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불안을 다스려야 할까 등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아픔과 고민을 알렉스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일상의 철학으로 풀어낸다.
태어나자마자 주인에게 버려지고, 두 번째 입양처에서도 파양된 토끼 알렉스는 실제로도 까칠하고 예민한 토끼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런 알렉스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고, 알렉스도 가족들에게 신뢰와 애정을 품으면서 그들은 조금씩 성장하고 조금씩 변화한다. 한국의 여느 가정이 그렇듯 대화가 사라지고, 서로에게 조금은 무관심했던 가족들이 반려동물을 통해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큰 고통과 슬픔을 겪었던 알렉스. 그 고통과 슬픔을 행복의 밑거름으로 쓰는 알렉스를 보면서 자신의 슬픔을 행복의 동력으로 쓰는 방법을 한 번쯤 고민해본다면 알렉스의 이 작고 짧은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될 것이다.
?책 속으로
케이지 안에 혼자 웅크리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 큐 누나가
나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우리가 특별한 사이가 될 거라고 예감했어요.
큐 누나는 다른 토끼를 입양하기 위해
입양 서류를 작성하러 가던 참이었어요.
나는 열일곱 번째 입양 행사에 참가해
기다림에 지쳐가던 참이었고요.
그러다 누나와 눈이 마주친 거죠.
우리의 첫 만남, 제법 영화 같죠? -8쪽
큐 누나는 지난날 자신의 무심함을 많이 미안해해요.
받은 만큼 주지 못한 사랑에 늘 가슴 아파하고요.
그래서일까요?
이제 큐 누나는 나의 몸짓에 온 마음을 집중해요.
큐 누나와 나는 서로를 만나 외로움을 덜고,
마음을 나누게 되었어요.
외로움이 외로움을 만나면
두 개의 외로움이 아니라
하나의 사랑이 된다는 걸
이제 우리는 알아요. -25쪽
처음에 큐 누나는 어쩌면,
불쌍한 나를 구해주었다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으쓱대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누구든 함부로 동정하면 안 돼요.
물론 나는 힘든 일을 겪었지만
그렇다고 불쌍한 토끼는 아니에요.
버려지고 학대당한 나를 구해줘서 고맙다고
마냥 머리 숙이는 그런 토끼도 아니에요. -38쪽
솔직한 마음의 소리를 들은 나는
억지로, 거짓으로 숨기는 행동을 버리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조금 바보 같거나 한심해 보일 때도 있지만,
괜찮아요. 진짜 알렉스를 만나는 순간이니까요. -55쪽
인간들은 우리를
자기들의 틀에 맞추려고만 해요.
상냥하고 예쁘고 착한 동물만 갖고 싶어 하죠.
하지만 인간이 그렇듯,
우리도 성격과 특성이 모두 다른걸요.
다행히 큐 누나는 내가 그렇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토끼라는 걸 알면서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어요. -79쪽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있어요.
큐 누나도, 나도, 함께 살던 세 마리 고양이도
모두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그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두려움의 크기는 아주 작아지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기도 해요.
나는 이제 내 두려움의 크기를
약간은 조정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없애지는 못해도 작게 하거나
더 이상 커지지 않게는 할 수 있어요.
두려움의 이유를 마주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92쪽
누구나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아주 잘 알아요.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나는
그때 이미 그런 깨달음을 얻었지요.
그래서 나는 누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슬퍼하거나 상처받지 않아요.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이 있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니까요.
세상 모두가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욕심이에요. -108쪽
누군가가 누군가의 무엇이 된다는 건
서로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일일 거예요.
시간은 각자의 시계로 가거든요.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게 어떤 이에게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기도 해요. -134쪽
내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따뜻했던 걸 보면
누나는 나를 잊은 게 아니었어요.
나는 큐 누나가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마음에 담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말을 할 수 없는 토끼지만,
말은 때로는 보잘것없고,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불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동물과 사람이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될 수 있는 거겠지요. -195쪽
그런 걸까요?
인간들은 나이에 따라 책임져야 하는
많은 부분들이 생기나 봐요.
그걸 ‘어른이 된다’, ‘철이 든다’라고 표현하고요.
하지만 억지로 짊어진 책임감이라면
누구나 숨이 막힐 거예요.
모두 똑같은 기준의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210쪽
하지만 걱정은 행복의 크기를 작게,
자꾸 작게 만들어요.
행복의 크기만큼 충분히 느끼는 것,
그게 내가 배운 삶의 태도예요.
나쁜 일이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불행을 그 크기만큼만 받아들이는 거죠.
물론 배움과 실천은 다른 문제여서
잘 알고 있어도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행복도 연습이 필요해요.
나는 오늘도 행복을 연습하고 있어요. -219쪽
나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고,
두 번이나 파양을 당했고,
열여섯 번 입양 행사에 참여해서
열여섯 번 돌아온 캘리포니아 토끼 알렉스예요.
하지만 나는 버려진 불행한 토끼가 아니라,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기 위해
마음을 담금질하고 있던 토끼예요.
내 마음속에서 자라난 사랑은
이제 어딜 가도 무뎌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우린 헤어지는 게 아니라
다시 만날 준비를 하는 거예요. -2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