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책 소개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다음 세대가 묻다
“미생물은 질병을 일으키는 해로운 생물 아닌가요?”
김응빈이 답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속담처럼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예사롭지 않은 가르침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각계 명사에게 ‘다음 세대에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인지 묻고 그 답을 담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의 마흔 번째 주제는 ‘미생물에게 배우는 공생의 지혜’이다.
우리는 미생물 하면 먼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떠올린다. 천연두, 말라리아, 탄저병, 에볼라 등 사람의 목숨을 쉽게 앗아가는 병을 퍼뜨리는 것이 바로 이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병원균과의 전쟁으로 미생물학이 발전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질병을 일으키는 해로운 미생물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인간은 물론이고 지구가 유지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생물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감염으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하고, 지구에 필요한 산소의 절반을 공급해주기도 하고,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잡아주기도 한다. 우리는 무찔러야 할 적이 아닌 동반자로서 미생물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미생물로부터 무한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물질이 부족한 환경에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어 오히려 번성하는 펠라지박터 유비크,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스스로 흡수하기 어려운 영양분을 서로 나누는 식물과 균근 곰팡이, 반추동물의 위에 서식하며 반추동물에게 영양분이 되는 섬유소를 분해해주는 세균, 포식자 내부에서 공생의 길을 개척한 미토콘드리아 등을 보면서, 우리는 공생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함께하는 삶 속에서 타인의 노력을 존중해주고 타인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 능력을 나누어 서로를 돕는 지혜, 즉 공생하는 법을 미생물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미생물이
해롭고 더럽고 하찮은 존재라고?!
최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여 확산 방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올해 초에도 우리나라에 갑자기 많은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줄줄이 올라왔었다. 이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미생물이다. 너무 작아서 개별적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들이 고약한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미생물이라고 하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해롭고 더럽고 하찮은 생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미생물에 대해 잘 몰라서 생기는 안타까운 오해다.
2007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인체에 살고 있는 미생물, 즉 인간 미생물체의 변화와 우리 건강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기 위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연구 성과에 따르면, 인체에는 세균이 약 37조 마리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인간의 건강은 물론이고 생존 자체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 장내 세균의 유전자에서 만들어지는 효소가 없다면, 우리는 음식물을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해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장내 세균은 비타민과 항염증 물질 등 우리 유전자로는 만들 수 없는 여러 유익한 화합물을 생산해낸다.
또한 미생물이 우리가 매일 버리는 생활 폐기물을 분해하지 않는다면, 쉽게 이야기해서 썩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고 머지않아 우리가 버린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최근에 썩지 않고 잘게 부서지기만 하는 플라스틱 제품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미생물 중에는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도 있다. 또한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에너지로 미생물을 활용한 생물연료가 주목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소비하고 지구에 필요한 산소의 절반 정도를 공급해준다. 미생물은 우리의 건강뿐 아리라 지구 생태계의 균형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위대한 미생물학자 파스퇴르도 이렇게 말했다.
“자연계에서 한없이 작은 것들의 역할이 한없이 크다.”
나눔을 통한 공생으로
함께하는 행복을 알려주는 미생물
생물학적으로 모든 생명체의 삶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경쟁의 연속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삶에서도 경쟁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경쟁 자체가 아니라 경쟁의 원칙이다. 바람직한 경쟁의 원칙을 미생물 세계에서 볼 수 있다. 1930년대에 러시아의 한 생물학자가 한정된 먹이를 공급하며 두 종의 집신벌레를 함께 키웠는데, 결국 승자 독식의 광경을 목격했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자연 환경에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 상태에서는 모든 생물종의 고유한 능력, 즉 생태지위가 존중되는 가운데 경쟁을 한다. 예를 들어, 암모니아를 제거해주는 세균들은 먹이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 암모니아는 아질산을 거쳐 질산으로 산화되는데, 암모니아와 아질산을 먹는 세균은 각각 한 가지만을 먹고 남의 것을 탐하는 일이 결코 없다.
루미노코쿠스 브로미라는 장내 세균은 인간의 소화 효소와 다른 미생물들이 분해하지 못하는 저항성 전분을 분해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로 인해 여러 미생물들이 모여든다. 브로미로부터 시작되는 미생물 공동체는 미생물 세상에 호혜적 협력이 아니라 순수한 베풂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미생물의 조화로운 공생의 모습을 볼 때, 아주 작은 생물인 미생물(微生物)이 아름다운 생물, 곧 미생물(美生物)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단순한 미생물도 해내는 이 일을, 오히려 고매한 인간은 크고 작은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해내지 못한다. 진정으로 행복한 공존을 원한다면, 서로 조금씩 내어주고 품어주는 지혜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을, 공생하는 법을 미생물에게 배울 수 있다. 공생의 반대말은 경쟁이나 기생, 홀로살기 따위가 아니라 ‘공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