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달아 큰일이야
지금까지 지나온 수많은 밤과 앞으로 다가올 모든 술을 위해 건배!
소설가 부인, 음악가 남편의 알딸딸한 술톤 기행
딱 한 잔만, 아니 1리터만 더… 술이라도 있어야지!
기승전술 부부의 유쾌한 밤산책
『술이 달아 큰일이야』는 나오키상 수상작가 가쿠타 미쓰요가 남편인 음악가 고노 다케히로와 함께 쓴 술집 기행이다. 애주가인 두 사람이 도쿄 곳곳에 숨은 서른여덟 곳의 술집을 돌아다니며 꼭 먹어야 할 안주를 소개하고, 그곳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야키소바를 맛깔나게 제공하는 이자카야, 토마토 술 같은 독특한 술을 제공하는 선술집, 돼지 특수부위로 만든 꼬치를 파는 꼬칫집, 파스타를 파는 정갈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동남아 정통 음식점까지 부부의 술집 탐방은 메뉴 불문 국적 불문이다. 또, 주인과 친해질 만큼 오랜 기간 찾은 가게에 습관처럼 들어가기도 하고, 깨끗한 간판을 단 새로운 가게에 냉큼 들어가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맛있는 음식과 술 앞에서 두 사람은 부부이기 전에 쿵짝이 너무나 잘 맞는 친구고, 무엇이든 시도하는 탐험가이자 쉽게 웃는 어린아이가 된다. 두 사람은 거의 모든 저녁‘딱 한 잔만 더…’를 반복하고야 만다.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이 떠올리는 술도 매번 다르니, 이들이 제안하는 술과 음식의 새로운 조합은 우리가 다 아는 것만 같았던 도쿄를 낯설게 한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나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른 것을 느끼는,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알딸딸한 밤을 엿보고 있노라면 절로 한 잔 마시고 싶어진다.
“맛있다……”라고 중얼거리고, 술을 자꾸자꾸 추가하고, 그러는 동안 밤은 천천히 깊어갔다. 시모키타자와에서 밤새도록 마시던 젊은 날의 나는 40대가 되어서도 이렇게 시모키타자와에서 연극을 보고 술을 마시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되었구나. 좋아하는 연극을 보고, 이렇게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p.106,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되었구나)
어느새 가게엔 우리만 덩그러니…
같은 걸 좋아한다니, 얼마나 멋지니?
두 사람은 사실 ‘술을’ 마시는 걸 무척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과’ 마시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에 두 사람은 깊이 감동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술은 싸구려 술이든 고급 술이든 상관없이 기억에 깊게 각인될 정도로 맛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모두가 저마다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다. 안주는 서로의 취향에 맞게 주문하고, 술은 먹고 싶은 만큼의 양을 먹고 싶은 속도로 마신다. 맛있는 술과 음식으로 기분이 한껏 고조된 상태에서 함께 나누는 시간은, 그 어떤 술보다 그들을 더 취하게 한다. 그러므로 술을 잘 마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술은 도움을 줄 뿐이다. 한 잔에 꼿꼿이 세운 허리를 조금 굽히고 두 잔에 단추를 한 개 정도 풀고, 세 잔에 목소리를 한 톤쯤 올리며 대화는 흘러가고 밤은 깊어진다.
부부에게 술자리는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의 답으로 자리한다. 요컨대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지,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우리에겐 음식보다 누구와 어디서 마시느냐는 점이 삶에서 중요한 사항이었다.
음식 취향 차이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지만 만약 술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살아야 했다면 인생이 꽤 가혹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p.9, 시작하며)
‘가끔은 소처럼 위가 네 개였으면 좋겠어’
메뉴판을 들고 골똘해지는 밤
메뉴판을 든 부부는 세상 누구보다 진지해진다. 두 사람 모두 위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는데… 아, 그것도 먹고 싶다!를 반복하는 이 밤, 부부는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상대가 좋아하는 것, 이 순간과 오늘 밤에 이렇게나 집중하는 시간은 메뉴판을 든 지금뿐일 것이다. 그러니까 저녁에 먹을 음식과 술을 고르는 이 시간은 부부에게 오늘을 견뎌낸 나를 찬찬히 점검하는 시간이자 나의 기분을 살피는 시간이므로, 곧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선물을 고를 때 우리는 그를 어느 때보다 깊이 생각한다.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마주 앉은 사람에 대해 고심하는 시간을 갖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을 전하는지 두 사람의 밤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이 보낸 이 선물 같은 밤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오늘 저녁부터 곰곰 생각하게 한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지? 낮엔 어떤 메뉴가 문득 생각났었지? 식당에서 새어나오는 어떤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렸지? 이렇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밤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 이런 밤에는 정말, 술이 달아 큰일이다.
이만큼 완벽하게 입가심을 했어도 결국은 두 잔 더 내지는 세 잔 더(이제는 딱 한 잔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다) 마시게 된다, 우리란 사람은.
(p.65, 결국 마시게 된다, 우리란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