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그들은 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문학이 보여주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살의 메커니즘
이제 자살은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운 단어가 되어버렸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 수는 전년도에 비해 십 퍼센트 가까이 증가했으며, 성인 열 명 중 두 명가량이 자살을 생각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몇 년 사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연예인들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많은 이들이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들으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기는 하지만, 자살을 선택하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 애도는 죽은 이의 고통의 핵심에 가닿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지, 도리어 해가 될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상심리 전문가인 저자는 자살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도구를 가져왔다. 왜 문학인가? 심리학의 관심사는 대개 양적인 측면에 있다. 자살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을 현상학적으로 기술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위험 요인과 보호 요인을 찾아 사람들을 최대한 자살로부터 떼어놓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반면 문학은 원인과 원리를 설명하는 것보다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자살이라는 현상을 보다 직접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더 깊은 이해를 위한 매개가 될 수 있다. 문학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심리학적 지식과 자살학 이론을 통해 분석하여,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자살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본다.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문학 속 등장인물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총 2장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장에서 자살자의 심리를 다룬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스로의 의지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한 수준의 무력감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느낌 등으로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자살은 심리적 고통의 결과라는 말은 일견 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자살을 이렇게 정의함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은 분명하다. 자살은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 ‘범죄’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에 반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자살자들을 책망하기 앞서 그들의 입장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우울증, 양극성 장애, 중독 등 자살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정신장애들에 대해 다룬다. 마음에 치명적인 고통을 초래하는 질병들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치유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저자는 마음의 고통과 질병은 유독 다루기 까다로운 측면이 없지 않지만, 차근차근 접근해간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격려한다.
이 책은 『안나 카레니나』 『인간 실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자살에 대한 유명한 고전뿐 아니라, 『벨 자』 『댈러웨이 부인』 『리틀 라이프』 등 자살학의 관점에서 그 가치를 새로이 발견할 수 있는 문학 작품들을 재조명한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거나,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힌다. 또 우울해하거나, 환청을 듣거나, 물질에 중독되면서 끊임없이 자살에 가까이 다가간다. 이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자살이라는 현상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심리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볼 때, 독자는 자살이라는 현상의 본질에 한층 더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자살을 마주함에 있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일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제가 등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임상심리 전문가가 전하는 메시지
문학을 통해 자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유익은 무엇일까? 자살은 실로 복잡한 현상이다.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생명체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거기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 자살과 관련된 행동을 유발하고, 그 행동이 또다시 자살에 대한 생각을 심화하는 등 증상이 증상을 악화시키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아연하게 할 정도다.
하지만 저자는 문학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벨 자』를 쓴 실비아 플래스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긴 했으나, 한때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십 년이라는 시간을 더 벌어주었으며, 그 시간 동안 『벨 자』라는 명작을 탄생시켰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가 괴테는 한때 죽음과도 같은 고통에 시달렸지만, 본인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한 후에 팔십이 세까지 장수했다. 심각한 알코올중독으로 술잔을 드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존 치버는 중독을 이겨내고 ‘구원과 부활의 노래’라 칭송받는 『팔코너』를 완성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최대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또한 자살이라는 심연 속에 작은 등불을 하나 밝히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에리히 프리트는 많은 경우 문학은 삶을 혐오하여 쓴 것도 사실은 삶을 위해 쓴 것이며, 죽음을 찬양하여 쓴 것도 사실은 죽음을 이기기 위하여 쓴 것이라 말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살이라는 현상을 살피며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에 대해 쓰인 문학을 삶을 위한 문학으로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