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션 일레븐
디스토피아적 시대를 위한 가장 상냥한 묵시록
세상이 끝난 뒤에도, 인생의 미스터리는 계속된다
2015년 미국은 이 하나의 소설로 인해 떠들썩했다. 존재하는 거의 모든 언론이 리뷰를 쏟아냈고 전미도서상, 아서 C. 클라크 상, 카네기 메달 등 영미 최고의 문학상들이 앞다퉈 이 소설을 후보로 지명했다. 얀 마텔, 도나 타트, 조지 R. R. 마틴 등 유명 작가들의 추천이 이어지더니, “코맥 매카시의 『로드』에 비견할 만한 소설”이라는 입소문이 강력한 전염병처럼 북미 대륙을 휩쓸었다. 미국 최대 서평 사이트에는 14만 개의 독자 리뷰가 달렸고 [타임], [가디언] 등 21개 매체는 이 작품을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특히 [뉴요커]는 이 소설에 대해 “대중성과 문학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순문학과 장르 문학이 표방하는 거의 모든 가치들이 최고 수준으로 피어나 있는 작품”이라는 극찬을 보내기도 했다. 문명의 종말을 다룬 소설이 넘쳐나는 지금, 독자들이 『스테이션 일레븐』에 열광하는 것은 바로 이 책이 그 어떤 종말소설과도 다른 주제, 바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배우 아서 리앤더가 [리어 왕] 공연 도중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질 무렵, '조지아 독감' 보균자를 실은 비행기 한 대가 미국에 착륙한다. 빠르고 치명적인 이 전염병은 원자폭탄처럼 터져 인류의 99.9퍼센트를 휩쓸어가고, 눈 깜빡할 사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끝이 난다.
그로부터 20년 후, “생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문장을 마차에 새긴 악단이 광활한 북미 대륙을 떠돌며 셰익스피어 희곡을 공연하고 있다. 그중에는 [리어 왕]에 아역으로 출연했던 커스틴도 있다. 아서가 죽던 모습 말고는 종말 전의 기억이 없는 그녀는 아서가 준 스테이션 일레븐이라는,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만화책을 애지중지 가지고 다닌다. '예언자'라고 불리는 청년이 지배하는 마을에 들어서게 된 악단은 배우 하나를 예언자의 네 번째 부인으로 달라는 요구를 거절해 쫓기는 신세가 되고, 항상 가던 길을 벗어나 예전에 공항이었고 지금은 '문명 박물관'이라 불리는 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커스틴이 의아한 점은, 예언자의 개가 스테이션 일레븐의 주인공 닥터 일레븐의 개와 이름이 똑같다는 것이다.
소설은 유랑악단과 문명 박물관, 어느 파파라치와 할리우드 배우와 그의 전처와 그녀가 그리는 『스테이션 일레븐』이라는 제목의 그래픽노블 등 세상의 끝 전과 후 수십 년에 걸친 이야기들을 교차해 쌓으며 전혀 예상치 못한 미스터리와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책의 마지막, 점점이 흩어져 있던 모든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