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제가 실장님을 유혹한 건 사실이지만, 거기에 동의한 사람 역시 실장님이세요. 제가 억……억지로 실장님을 강간하지는 않았다구요.”
“뭐라고?”
연오의 말이 끝나길 기다리던 혁주가 순간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어 반문했다.
“뭘 해?”
그를 안 지난 며칠 동안 처음으로 그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보았다.
“사, 사실이잖아요.”
‘강간’이란 말을 뱉은 연오의 얼굴은 더 붉어질 수도 없게 화르륵 타올랐다. 그녀가 말하도록 용기를 주었던 분노가 자꾸만 스러졌지만, 그럼에도 연오는 혁주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날 밤 일은 서로간의 충분한 합의에 의한 것이었지, 절대 저만의 일방적인 강간이 아니었다고요. 그러니까 자꾸 저만 나쁜 사람 만드시면…….”
“하, 강간? 당신이 나 권혁주를 강간해?”
감히 그를? 혁주는 어이가 없었다.
강간이라니……, 합의에 의한 것? 이 여자가…….
머루처럼 까만 눈이 불안하게 깜박거리는 것을 보며, 저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불러 모아야 했을지 짐작이 됐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맙소사, 여자에 의한 강간이라니! 어디 상상이나 했을 말인가. 미안하단 쪽지를 발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황당했고, 그럼에도 이상하게 즐거웠다. 참 대단한 능력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의 허를 찔러 웃게 만드는 능력은 인정해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