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기타
“한 곡 정도는 그럴듯하게 연주하고 싶습니다.”
C코드도 못 치지만 마음만은 장범준인 모든 기린이들에게
‘언젠가는’을 ‘지금 내 곁으로’ 데려다주는 에세이 〈난생처음〉 시리즈의 세 번째 책. 킥복싱과 서핑에 이어 이번 주제는 ‘기타’이다. 영화 속에서 멋들어지게 기타 치며 노래하는 배우를 보거나, 내리 떨어지는 핀 조명 아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을 듣다 보면 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기타 한번 배워볼까?’ 책은 마음속에 수줍게 품고 있던 그 바람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준다. 무엇보다 성취해나가는 기쁨, 일상의 윤활유 같은 존재로서의 기타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나 읽는 동안 이번에야말로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기타에 대한 작은 소망이 싹을 틔울지도 모른다.
고교시절 수련회에서 기타 치는 남학생을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여학생들을 목격한 이후 기타 연주에 대한 로망을 품었으나 이래저래 미루고 미루다가 서른 넘어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저자. 늦깎이 초보 기타리스트가 기타의 세계에 입문해 겪는 좌충우돌은 기타를 조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빙그레 웃으며 공감하게 되고, 아직 기타를 쳐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기타가 안겨주는 단맛 쓴맛 감칠맛을 미리 엿볼 수 있다.
낮에는 직장인, 퇴근 후엔 기타를 부여잡으며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툭툭 담담하게 치고나가는 유머를 곁들여 그려내고 있어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류회사 마케터지만 삶의 즐거움을 지속하는 데에는 알코올보다 기타의 힘이 탁월하다고 믿는, 기타를 치면서 일상이 조금 견딜 만해지고 재미있어졌다며 오늘도 기타를 튕기는 ‘손가락 짧은 다한증 기타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에게 기타가 그랬듯 각자 저마다의 ‘행복 버튼’을 찾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 내 기분의 모드를 내 뜻대로
기타를 본격적으로 잡은 지 3년여, ‘본캐’는 직장인, ‘부캐’는 기타인. 그러나 일상에 기타만 살포시 얹었을 뿐 그의 모습은 평범한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출근하면 자리에 앉자마자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적어두고 하루 종일 목록을 정신없이 하나씩 지워나가고, 열심히 진행해오던 프로젝트가 상사의 한마디에 갑자기 뒤집힐 때면 깊은 분노를 느끼고, 나이는 부지런히도 늘어나는데 그만큼 쌓이지는 않는 통장 잔액과 외모의 노화 속도를 못 따라가는 내면의 성숙함 등에 불안감을 느끼는 그의 모습을 보면 내 이야기인가 싶게 공감이 간다. 하지만 기타라는 작은 버튼은 그에게 남다른 비장의 무기로 작용한다. 그는 일상의 무게에 휘청일 때마다 기타를 잡고 스스로를 붙들고 끌어올린다. 손끝에서 시작된 음이 손의 움직임에 맞춰 부드럽게 올라갔다 내려가고, 그러면서 이루는 선율을 듣다 보면 마음이 후련하고 차분해지고, 음침한 감정은 저 멀리 물러난다고.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며 똑같은 일상에 지쳐 있다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직장생활에 허탈함만 적립하고 있다면, 인간관계의 고단함에 차라리 혼자이고 싶을 때가 많다면, 살포시 기타를 잡아보는 건 어떨까? 장범준이나 아이유처럼은 될 수 없을지언정, 남에게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라 내 기분만큼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면 기타만 한 동반자도 없을 테니. 그리하여 나를 위한 BGM은 내 손으로 연주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