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영의 악의 기원
새로운 스토리텔링에 목말라하는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이 되어줄 영어덜트 소설!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 박지리의 소설『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이번 작품은 배경도 주인공도 한국이 아니지만 작가가 구축해 낸 세계, 캐릭터, 그들의 삶을 위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사건들이 담겨 있다.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기 힘든 ‘가족’이라는 굴레, 필연적으로 저지르게 되는 살인의 문제와 법의 효용, 그를 둘러싼 부자간의 숭고한 사랑 등 3대에 이어 걸쳐지는 가혹한 운명의 수레바퀴는 인간이 가진 악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국가의 핵심 권력을 가진 자들이 거주하는 안정적인 1지구부터 60년 전 일어난 12월의 폭동으로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땅 9지구까지 완벽하게 구획된 사회. 그러나 아날로그적인 통신수단이 주로 쓰이던 시절. 과거인지 미래인지 알 수 없는 시간대에 이 작품은 존재한다. 12월의 폭동 이후 9지구 후디 출신에서 1지구에 정착한 러너 영, 30년 동안 친구의 추도식을 변함없이 열어 주고 있는 문교부 차관이자 프라임스쿨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아버지 니스 영, 1지구 최고의 기숙학교 프라임스쿨의 모범생 다윈 영, 끊임없이 1지구를 비판하는 프라임스쿨의 아웃사이더 레오, 그리고 열여섯 나이에 9지구 후디에게 살해당한 제이 삼촌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루미 등. 이들의 사소한 버릇까지 알게 될 정도로 생생한 캐릭터들은 여기, 이곳이 아닌 세계를 세밀하게 그려 나간다.
작품은 언뜻 보면 루미가 제이 삼촌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나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범죄추리소설 같다. 루미는 4지구 출신인 엄마와 결혼해 7급 공무원 서기직에 만족하며 사는 아빠 조이 헌터를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늘 프리메라 여학교 교복으로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고, 위대한 사진작가 해리 헌터의 손녀이자, 프라임스쿨에 입학하고도 그 학교에 가지 않은 제이 삼촌의 조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9지구 후디의 강도 침입으로 열여섯의 나이에 살해당했다는 제이 삼촌의 죽음은 루미가 보기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그날 새벽 아빠는 삼촌 방에서 말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했는데, 뒤에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그리고 방에서 없어진 거라곤 단지 사진 한 장으로,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12월의 폭동을 기록한 사진들 중 하나다. 루미는 사라진 사진 한 장에 사건의 열쇠가 있다 생각하고 이를 파헤쳐 나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