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조선 최대의 쟁점을 돌아보다
한국사의 통설을 사로잡은『조선사 3대 논쟁』. 60여 년간의 역사연구에 힘써온 노학자의 열정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조선시대 3대 논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했다. 1970년대 어용학자들이 만든 사육신 조작 작업과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에 대한 통설, 이순식과 원균 중 누가 구국의 명장인가를 살핀다.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와 어용학자들이 사육신 중 유응부를 김문기로 대체하려는 역사를 날조했고 이후 계속되는 사육신에 대한 논쟁을 각종 실록을 꼼꼼히 고증해 유응부와 김문기 중 누가 진짜 사육신인지 밝힌다. 또한 이이가 주장했다는 십만 양병설에 관련된 사료를 살펴 사실을 고찰하고 십만 양병설을 서애 유성룡이 반대했다는 실록의 기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국민들의 상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조선사 3대 논쟁》은 이순인과 원균의 품성, 장수로서의 재간과 전쟁 중 행적과 공적, 사망 당시의 정황 등을 사료를 통해 밝히고 당시 원균을 옹호하던 선조 이하 당국자들의 주장이 이순신을 의도적으로 매몰시키려 했음을 알려준다.
저자소개
이재호
1920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사韓國史의 비정批正』, 『조선정치제도연구朝鮮政治制度硏究』, 『한국사의 천명闡明』, 『창주산문집滄洲散文集』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징비록懲毖錄』, 『서애전서西厓全書』,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금오신화金鰲新話』, 『회재전서晦齋全書』, 『반계수록磻溪隨錄』, 『정다산문선丁茶山文選』, 『망우당문집忘憂堂文集』, 『논어정의論語正義』, 『맹자정의孟子正義』 등이 있다.
창주 이재호 선생은 1985년(66세) 정년퇴임 후에도 부산대 대학원에서 후진들에게 국사원전 강독을 지도했으며, 1987년(68세) 정신문화연구원 객원교수로 부임하여 정신문화연구원 부속 한국학대학원에서 후진들에게 『좌전左傳』 등의 원서 강독을 지도하고 『율곡전서』와 『숙종실록』 번역작업을 교열했다. 또 그해 4월에는 미국 버클리대 한국학연구소의 초청으로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임진왜란과 서애 유성룡의 자주국방정책」이라는 논제로 학술발표를 했다.
이후 1990년(71세)부터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문특강 『사기열전』을 지도했고, 1995년(76세)에는 『조선정치사제도연구』를 출간했다. 그해 4월 온양아산문화재위원회에서 주최한 ‘충무공 이순신 탄신 450주년 학술대강연회’에서 「멸적구국滅敵救國한 이순신의 위적偉績-특히 원균 관계의 곡필曲筆에 대한 변박辨駁」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2000년(81세)에는 서애의 저술인 『징비록懲毖錄』, 『근폭집芹曝集』, 『진사록辰巳錄』, 『군문등록軍門謄錄』, 『잡저雜著』, 『서간書簡』 등 7책을 번역하여 『국역 서애전서國譯 西厓全書』를 발간하는 등 젊은 학자 못지않게 학문에 정진하고 있다.
이재호 선생은 한국사의 잘못된 통설을 바로잡는 책을 집필하고 각종 고전을 번역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올곧은 사학자다. 내년이면 구순이 되는 저자가 『조선사 3대 논쟁』 곳곳에서 던지는 정문일침의 경고를 통해 60여 년간 역사연구에 힘써온 노학자의 열정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다.
목차
서설序說·4
1부 사육신, 유응부인가 김문기인가
1. 글을 시작하며·15
2. 단종 복위운동의 배경·22
1_단종 즉위 당시의 정국·22
2_단종 복위의 주동인물·25
3_단종 복위계획의 수립·28
3. 단종 복위의 실패·33
1_『세조실록』의 기사·34
2_『육신전』의 기사·39
3_이론자異論者들의 논리는 무엇인가·50
4. 사육신에 대한 평가의 변천·58
1_왕조 사관의 처지·58
2_사림 절의파節義派의 관점·62
3_사육신 절의가 공인되다·64
5. 글을 마치며·68
6. 사육신 문제에 대한 보론補論·71
1_사육신 외곡 오판의 경위·71
2_사육신 문제의 재연·77
2부 율곡 이이는 실제로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나
1. 글을 시작하며·85
2. 광복 후 국사학계의 풍토·88
3. 이이의 십만양병설의 발단·93
1_십만양병설의 출전·93
2_관계 기록의 작성연대·102
3_십만양병설이 만들어지는 과정·104
4. 『선조수정실록』 기사의 의문점·108
1_『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109
2_십만양병설의 의문점·111
5. 군정개혁론의 추이·124
1_이이의 군정개혁론·124
2_유성룡의 변경방비책·130
6. 십만양병설의 후론·144
7. 글을 마치며·151
1_각종 기록의 모순점·151
2_사실 부회附會의 발단·154
3부 이순신과 원균, 누가 진정한 구국의 명장인가
1. 글을 시작하며·159
2. 이모와 구모의 편견과 외곡·162
1_사실의 억단臆斷 외곡·162
3. 적군의 침입과 해군의 승첩·166
1_이순신과 원균의 출세·166
2_원균의 고급告急과 이순신의 부원赴援·174
4. 이순신과 원균의 불화와 조정(정계)의 동태·195
1_장재將才의 우열과 쟁공爭功의 단서·195
2_조정(정계)의 동태·203
5. 왜적의 재침과 방위체제의 붕괴·208
1_적賊 간첩의 활동과 수군장水軍將의 교체·208
2_원균의 패몰과 이순신의 재기·222
3_명량해협의 대첩과 전국의 수습·228
6. 원균과 이순신에 대한 사관의 논평·236
7. 글을 마치며·244
주석·253
찾아보기·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