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버트란드 러셀의 Why I am not a Christian의 완역본. 기독교를 신랄하게 분석한 표제 에세이 외에도 영혼 불멸에 관한 토론, 종교로 인한 재앙 및 종교적 광신에서 오는 위험성 등을 다루어 러셀의 종교 이론에 관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직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성(性)도덕"과 "대학과 자유"그리고 종교와 관련된 내용의 글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그의 사상과 사상의 형성 과정을 볼 수 있는 수상 한 편을 추가 번역하여 마지막 장에 실었다.
저자소개
저자 :
버트란드 러셀
영국의 철학자, 사회 사상가, 평화 운동가. 자신의 지능을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과 기억력으로 평생 동안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했는데 그는 하루에 보통 고칠 필요가 거의 없는 3,000 단어 분량의 글을 썼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 졸업 시험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전공을 철학으로 바꾸었고 초기에는 주로 수리논리학 분야에서 진지한 철학서들을 저술했다.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의 대두를 목격하면서 날카로운 기지와 좌파적인 관점에서 일반 대중을 위해 정치, 사회, 교육, 과학 철학 분야의 책을 썼고 그의 저서들은 당시의 전 세계 독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2차 대전 중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특별 회원에 임명되었고 195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전후부터 반전, 반핵 평화 운동에 맹렬히 참가하여 〈러셀, 아인슈타인 성명〉을 발표하였고 군사 경쟁 완화와 무기 감축을 논의하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모임인 〈퍼그워시 회의〉를 주도하여 초대 의장을 맡았다. 이후 더욱 과격한 모임인 〈100인 위원회〉를 결성하여 88살의 나이에 대규모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을 이끌었다. 50년대 이후 러셀은 점차 기성 권위층의 미... 움을 사게 되었지만 전 세계 젊은층에는 더욱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89살의 나이에 대규모 연좌 농성을 이끌며 감옥에 구금되기도 한 그는 1962년에는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쿠바 위기와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에 중재자 역할을 하였고 1963년 워런 보고서가 발표되자 〈케네디 암살진상조사위원회〉의장을 맡았다. 이후 1966년까지 미국의 베트남 정책을 맹렬히 공격했으며, 장 폴 사르트르와 아이작 도이처 등의 도움을 받아 국제전범재판소를 소집하기도 했다. 그는 죽기 1년 전에 그의 가장 훌륭한 저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1969)을 3권으로 출간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화이트헤드와 함께 쓴 (1903), (1938), (1945), (1957), (196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