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김승희 시인의 신작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를 펴낸다. 시인의 열번째 시집이기도 한 이번 책은 그 제목에서부터 상징하는 바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도마 위에 놓인 도미 한 마리를 상상해보면 그 즉시 삶과 죽음의 찰나가 동시에 구현되기 때문이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한 송이 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 진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늠름하게 살다 죽는다. 도미와 도마라는 말의 유희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살게 하고 서로를 죽게 하는 우리들 삶의 만반의 것들은 이토록 한데 마주하고 있을 적 잦다.
김승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부마다 담긴 시들의 울림은 곡진히 허리 꺾게 할 정도로 읽어나갈 적마다 웅숭 깊은 감동으로 출렁인다. 가르치려 하지 않고 말하려 하지 않는다. 가리키고 보여주려 하는 시집이기 때문이다. 발산하는 시집이 아니라 수렴하는 시집이기 때문이다. 어른의 말이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관찰하는 데 더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시집이기 때문이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하여 올해로 등단 44년을 맞은 시인이 열 권의 시집을 펴내기까지의 지난한 시간을 감히 추측해본다. 무엇보다 시인은 세상의 아픈 곳곳을 지나치지 않았다. 제가 가진 말법과 글법으로 이를 다 아울렀다. 직접적인 용어들로 역사의 현장을 고통의 현실을 지시하고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미학적인 스타일로 세상과의 오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이 한 권의 시집 속에 웅크려 있는 우리들 세상을 본다. 이 한 권의 시집을 '꽃들의 제사'라 다른 용어로 상징화했던 시인의 마음을 좇아본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슬펐을까. 그러나 이 온갖 감정을 제 속으로 삼킨 시인의 몸은 부드럽고도 단단한 흙만 같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우리는 아마 흙 위를 걷고 있는 기분일 거다. 눈으로 읽고 발로 읽자.
목차
1부·빛이 뜨거우니 아프겠구나
꽃들의 제사 13
맨드라미의 시간에 14
오른편 심장 하나 주세요 16
해바라기와 꿀벌 17
휘발유로 쓴 글자 18
칼갈이 광고 차 20
작년의 달력 22
한겨울 밤의 서정시 24
전망 26
‘하필’이란 말 27
좌파/우파/허파 28
‘알로하’라는 말 30
노숙의 일가친척 32
우체국과 헌 구두 34
‘이미’라는 말 2 36
알로하 꽃목걸이 37
여행으로의 초대 38
트로이의 시간 40
푸른 점화 42
꽃피는 아몬드 나무 44
내 속에 내가 마트료시카 46
멍게 47
아무도 아무것도 48
2부·애도의 시계에 시간은 없다
막막한 시간 53
애도 시계 54
세월호에서 산다는 것 56
저녁의 잔치 58
가족사진 61
거대한 팽이 62
목에 걸린 뼈 64
손톱으로 가득찬 심장 66
하늘을 보는 사람 68
하늘은 공평하게 70
허공의 밀가루 한 접시 72
충만한 시간 74
유일한 시간 75
저 슬픔 으리으리하다 76
가을의 노래 78
젖가슴 골짜기 79
나무 십자가 80
생인손 81
자작나무 자작자작 82
2박 3일 84
3부·당신도 나도 아무도 아니고
고요의 노동 89
선풍기가 간호하는 방 92
사랑의 서쪽 94
사랑의 동쪽 96
사랑의 남쪽 - 웃음 속의 이빨 97
사랑의 북쪽 - 나에겐 나만 남았네 98
데스밸리 100
달의 뒤편 102
빛의 증거 104
용서고속도로를 달리며 106
11월의 은행나무 108
무지개산 110
새벽 시장 112
세한도 113
해적 라디오를 듣는 밤 114
아욱된장국 116
돼지감자가 익어가는 노란 저녁 기도 118
여름의 대관식 120
새봄의 떴다방 122
도미는 도마 위에서 124
나상(裸像) 의 아버지 126
하지의 산 128
4부·그때 손은 기도까지를 놓아준다
벼를 세우는 시간 131
천지창조 이후 오고 있는 것 132
‘이미’와 ‘아직’ 사이 134
무지개의 기지개 136
정수기 앞에서는 138
2월 29일 140
차라리(里) 에 가서 141
바다 앞의 인생 142
미나리꽝 키우는 시인 145
쥐들의 세계 146
한 사발의 하늘 148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150
홍합국 냄비 152
내려가는 언덕 153
일어서는 지평선 154
이매방류 156
비바 라 비다 - 프리다 칼로에게 158
기도 160
미선나무에게 162
차라리 164
기도하는 사람 166
낙천(樂天) - 어떤 말만 들어도 꽉 쥐고 있던 167
해설·40년의 그리움, 심장꽃 169
-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사랑한 태양이여
- 나민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