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안녕,
『코끼리는 안녕,』은, ‘말하자면’, 연애소설이다. 그것도 드라큘라와 미라가 등장하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로맨스. 게다가 주인공들의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A는 B를, B는 C를, C는 D를. A와 D, B와 C는 헤어진 연인이다. 이 복잡하고 안타까운 로맨스는, 하지만 짐짓 딴청을 피우는 대사들로 인해, 그 진심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건들의 연쇄가 있는데, 작가는 그 사건들의 큰 흐름을 만들지 않고 오히려 그 위에 펼쳐지는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이나, 주위를 관찰하는 담담한 시선 그 자체만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다시 작가 자신의 그것처럼 느끼게 하는 순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의, 아무것도 아니었던 게 될 것이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만은 아닌 뭔가를 포착하는 섬세함이, 또 그 섬세함을 보존하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가 이 소설에는 있다.
슬픔과 우울, 고독과 유머, 분노와 무심이 한데 버무려져 압축된 문장들에서는 분노와 절망, 희망이 무화된 이 시대 젊음의 무표정과 무덤덤함이 엿보인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현실은 우회적이고 간접적이지만, 그래서 직접적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는 다른 소설에 비해 허황되고 낭만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 소설에 드러나는 인물의 무심과 고독, 계속되는 거짓말의 감각이야말로 현재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