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면, 사랑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나...
가슴에 주홍글씨를 단, 소극적이고 내면적인 한 여성의 사랑, 그리고 자아 찾기를 그린 전경린의 신작 장편.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하나를 소개한다. '우분투'.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는 뜻으로, 서로의 안녕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사랑도 그런 것 아닐까.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되는 일.
주인공 혜규는 얼굴에 푸른 점이 있는 여자다. 그 점으로 인해 위축된 삶을 살던 혜규에게 다가온 첫사랑 인채. 그러나 그 사랑은 혜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다른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고 그 속에서 버텨내기를 포기한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고, 그후 서울로 도피하여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런 혜규 앞에 유부남 형주가 나타나고, 그와의 사랑을 통해 사람들의 눈 뒤로 숨지 않는 당당한 자아를 찾는다.
'불륜'이라는 소재가 등장하지만, '불륜'에 관한 소설은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주인공 혜규가 유부남 형주와 거리를 두기 위해 고향집에 내려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부남 형주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또한 혜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던 첫사랑 인채도 책의 말미에야 직접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이 책은 지나간 사랑의 행방과 궤적에 관한 이야기다. 혜규는 고향집에 내려와서도 자신이 형주로부터 채워진 빛으로 가득한 존재임을 느낀다. 세상을 버리려고 했던 그녀가 세상을 용서하고 이해하게 된 배경에는 '지나간 사랑의 힘'이 있다. 지나간, 혹은 여전히 남아있는 사랑의 힘. 전경린 특유의 불온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들이 빛나는 소설이다.
저자소개
흔히 '귀기의 작가' '정념의 작가'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은 이미지의 강렬함과 화려한 문장으로 기억된다. 서른 세 살. 아이와 피와 심지어 죽음조차 삶이 모두 허구라는 것을 느낀 작가는 허구가 아닌 삶의 실체를 갖고자 소설을 쓰기로 시작했다.
1993년 작가의 가족은 마산 옆 진양의 외딴 시골로 이사를 갔다. 꽤나 적적한 곳이었지만 여기서 전경린은 `뭔가가 밖으로 표출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3년 가까이 사람들과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들어앉아 많은 글을 써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내면적 세계와 질서화 되고 체제화 된 바깥 세계 사이의 작용과 긴장과 요구 속에서 갈등하는 여성과 여성적인 삶이 문학적 관심사다.
작가의 본명은 안애금.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전경린이라는 이름은 옛날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 임시로 지었다. 당시 누가 `린'이라는 화두를 주었고, 차례대로 `경'과 `전'을 추가해서 `전경린'이라는 이름을 완성시켰다. 작가도 물론 `전혜린'을 떠올렸다. 작가는 전혜린을 좋아한다. 그리고 전혜린뿐 아니라 나혜석, 윤심덕 더 올라가서 황진이까지 소위 강한 자의식 때문에 고통 받고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선각자적 여성을 좋아하고 흠모한다.
196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경남대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KBS에서 음악담당 객원 PD와 방송 구성작가로 근무했다. 그 후 운동권이었던 남자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다 둘째를 낳은 후인 1993년부터 본격적인 습작에 들어갔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사막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하였으며 1997년 「염소를 모는 여자」로 제29회 한국일보 문학상, 1997년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로 제2회 문학동네 소설상, 1998년 단편소설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으로 21세기 문학상, 2004년 단편소설 「여름휴가」로 대한민국소설문학상 대상, 2007년 단편소설「천사는 여기 머문다」로 제31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바닷가 마지막 집』, 『물의 정거장』,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열정의 습관』,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황진이』, 『엄마의 집』과 어른을 위한 동화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 『붉은 리본』, 『나비』 등이 있다.
전경린의 베스트셀러인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은 2002년 변영주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가정의 틀안에서 안주하던 한 여성이 내면에 지닌 혼란스런 욕구를 발견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나타나는 일탈과 매혹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섬세한 문체와 절제된 기법을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삶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내면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 『엄마의 집』에서는 처녀의식을 가진 엄마들에게 “미스 엔”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아버지에게도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종속당하지 않는 미스 엔이 그녀의 소설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여성들의 욕망에 주목해 온 작가답게, 현실의 엄마가 놓인 지형을 넘어서는 대안적이고 이상적인 집의 전형을 제시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