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쓰지 않은 책들
독창성과 대담함이 빛나는 비평의 새로운 형식
쓰지 않은 책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적극적인 그림자처럼, 아이러니와 안타까움을 띠고 우리의 일에 참여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 수도 있었을 삶, 떠나지 않은 여행이다.
-<저자 서문>에서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비평의 개념을 바꾼 20세기 최고의 비평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부터 포스트모던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에 통달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현존하는 서양 문예계 최고의 지성 조지 스타이너는 여든의 나이를 앞두고 <나의 쓰지 않은 책들>에서 자신이 쓰고자 했으나 쓰지 않았던 혹은 쓸 수 없었던 일곱 권의 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타이너가 라이프니츠 이후 최고의 박식한 지성이라고 평가한 조지프 니덤부터 질투, 언어의 에로스, 인간과 동물, 근대 교육의 (하향) 평준화, 유대인 문제, 사적 공간의 옹호 등 실로 광범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각각의 쓰지 않은 책들에는 2차 대전 이후 20세기의 후반기에 어느 사회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는 유랑자이자 손님인 유대인으로서 다국어를 사용하면서 4개국 언어로 강의를 해온 조지 스타이너의 반세기에 걸친 경험이 바탕에 깔려 있다.
<나의 쓰지 않은 책들>은 스타이너 특유의 박학함에 더해 저자의 내밀한 고백들이 마치 자서전처럼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유대인이라는 저자의 실존적 상황과 그가 겪은 20세기의 야만적인 역사는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글의 배경그림을 이룬다. 광신과 폭력 앞에서 파괴된 서양의 정신문명에 대해 자신이 앞장서서 그 가치를 옹호했던 교양과 이성이 그것을 그저 바라보거나 제어하지 못하는 나약함 내지 무력함을 드러낸 것은 스타이너로서는 뼈아픈 환멸이다. 하지만 스타이너는 그러한 환멸을 딛고서 다시 한 번 불멸의 가치를 지닌 텍스트들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해 나간다. 이러한 기본자세는 유대인 문제를 다룬 <시온>이나 자신의 신앙에 대한 고백이라 할 수 있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 같은 글에서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와 어느 정도의 인간적 불신에도 불구하고 조지프 니덤을 다룬 <중국 취향>에서는 한 지의 거인의 공과를 함께 다루는 균형감각이 두드러지며 단테를 라이벌로 여긴 중세의 무명 시인 체코 다스콜리를 다룬 <질투에 관하여>는 인간적인 약점에 대한 통시적인 통찰로 나아간다. 그리고 다국어 사용자라는 독특한 경험을 통해 에로스와 현대 교육 제도를 다룬 글은 단행본으로 이어지지 않은 게 아쉽게 느껴질 만큼 흥미진진하고 여든의 나이에도 날카롭게 빛나는 스타이너의 지성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조지 스타이너가 쓰지 않은 일곱 권의 책들은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처럼 어쩌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조지 스타이너는 자신이 대답할 수 없거나 대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그것에 대한 탐색도 멈추지 않았다. 스타이너가 내밀한 자기고백의 어투로 제기하는 질문들은 그의 말마따나 어쩌면 언어로는 그에 대한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들일지도 모른다. 20세기의 야만적인 역사를 돌아보며 스타이너는 ‘부재하는 신에 대한 신앙’이라는 말로 자신의 허무주의를 극복하려 한다. 스타이너의 탐색을 따라가다보면 독자들은 역설적으로 지성의 가치와 역할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성의 진화가 인간의 폭력과 광신을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약한 희망도 품게 된다. <나의 쓰지 않은 책들>은 조지 스타이너의 박학함과 개인적인 고백이 결합된 독특하고도 대담한 비평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