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카운슬링
우리의 인생은 자신이 깊게 빠져 있고 맞닥뜨리는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배우는 영혼의 진화학교다. 이 영혼의 진화학교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겨야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고, 비로소 진짜 나로 사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심리학의 힘으로 마음 생김새와 문제를 안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인간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리학 못지않게 철학이 중요하다. 철학은 마음을 괴롭히는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해주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생각을 정리해서 쓸 데 없는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아도 인생은 훨씬 살만해진다. 저자는 심리학적 설명을 바탕으로 두고 철학적 성찰력을 통해 삶의 방향을 잡도록 조언한다. 이 책은 어려운 철학을 공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력을 일상에 적용해내는 공감과 위로의 철학카운슬링이다.
철학카운슬러인 저자는 가슴 뛰는 삶을 살기 위해 진짜 나로 살아갈 것을 당부한다. 살다보면 자기 자신을 가장 용서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 지나친 기대를 할 때 특히 더 자기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기와의 관계가 편안하지 않으면 타인과의 관계도 편안해지기 어렵다.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도 우월감의 다른 얼굴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바꿀 수 없는 과거나 주변의 타인에게 인생의 책임을 돌리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면서 전전긍긍 살아간다. 이 짧고 아름다운 인생의 시간을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신경 쓰면서 전전긍긍하며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진짜 나로 살 때 나는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다.
절벽 같은 현실을 이기는 비밀병기, 철학!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진짜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1부는 Know yourself,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에 대한 탐구다.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다. 누구나 쉽게 빠지는 ‘나만 왜 이런가?’의 함정, 나 자신이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나를 배우는 과정, 나의 가치는 바로 자신이 결정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자신의 단점을 외면하는 병적인 나르시시즘을 경계하고, 자기를 자기답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2부는 Train yourself, 자신을 가누어 한계를 감당하는 책임감에 대해 다룬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스스로 괴롭힌다. 모든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하며, 남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넌 대체 왜 그러는 거야!”와 같이 자신을 질책하는 말도 자주 한다. 결과만을 향해 자신을 몰아치며, 상처를 받아도 혼자 끌어안으려고만 한다. 2부에서는 이러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루고 가누어야 하는지 마음의 흐름을 철학적으로 정리하도록 도와준다.
3부는 Love yourself,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간단하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3부에서는 자신의 장단점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수용하며, 나를 믿으며, 놓쳐버린 행복보다 지금의 행복에 주목하는 것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4부는 Be yourself, 본래의 자기로 살아가는 자유와 행복을 말한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내 존재를 내가 결정하며, 내 안의 고독을 피해야 할 괴물이 아닌 친구로 받아들이며,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철학적 사고를 정리한다.
? 지은이
지은이 _ 박은미
건국대학교 교양학부 강의교수로 철학상담치료학회 이사, 한국야스퍼스학회 이사직을 맡고 있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철학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논리를 비트는 심리, 심리를 조절하는 논리’, ‘철학상담의 방법론으로서의 비판적 사고 교육-그 적용방법과 사례를 중심으로’, ‘의사소통과 실존적 상호소통 : 하버마스와 야스퍼스의 소통 개념에 관하여’, ‘죄책을 짊어지는 실존’ 등이 있고, 저서로는 『삶이 불쾌한가 :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철학, 삶을 묻다』(공저), 『철학을 만나면 즐겁다』(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인간은 불평거리를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일만 가득한 것 같아도 그 중에 덜 좋은 일을 두고 불평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이러한 우매한 짓을 하지 않으려면 늘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인간이 고도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고통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강아지는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식으로 고통을 느끼지는 않지만, 자의식을 가진 인간은 그러한 고통을 느낀다. 그런 측면에서 인간은 불행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_ p.38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함께 볼 용기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단점을 볼 용기가 없어 스스로에게 나르시시스트적 허상을 자꾸만 덧씌우려 하지 않는다.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수용해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은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그러한 단점을 가진 자기를 혐오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단점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단점을 보지 않으려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고, 자기가 원하는 자기상을 유지하기 위해 정신적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단점을 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_ p.84
상대방이 말한 본의를 왜곡해 내 마음대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상대방은 나에게 그러한 괴로움을 주려고 한 말이 아닌데,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상대방이 나를 무시했다고 붉으락푸르락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본의도 확실히 알기 어려운데 상대방이 해놓고도 잊어버린 말에 내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상대방은 기억도 하지 못할 말에 내가 오래도록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그 말이 내 안의 열등감을 자극할 때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스스로 그렇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도 숨기려 애쓰며 살고 있는데, 그 부분을 누군가가 무심코 지적하면 나는 너무나 괴로워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누군가의 말이 내 마음에 부정적인 언어들을 불러일으킨다면 즉시 그 영향을 차단해야한다. _ p.124
타인이 나에게 어떠어떠하게 해줘야 했다는 것을 되뇌느라 마음을 소모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생을 죽 쑤는 첩경이다. 내가 아무리 그 느낌을 되뇌어봤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나만 속상해지기 때문이다. 아무 소득 없이 속상해만 하느니 상대방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가능한 한 많이 얻어내는 것에 만족하는 편이 현명하다. 어떤 수준을 정해놓고 상대방에게 따라오라고 요구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그 방향으로 최대한 상대방이 변하도록 돕는다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너무 한꺼번에 변화해달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변화의 노력마저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 내 마음을 바꾸는 데 드는 노력이나 갈등으로 인해 겪는 고통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는 분명한 일이다. _ p.171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더 좋은 세계로 그들을 옮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며, 반드시 그들을 송두리째 바꿔 지금의 인간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오늘날 살고 있는 모습과 다를 것이다.”라고 한 바 있다. 인간의 인식구조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인간의 존재방식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환경만 바꾸어서는 인간은 행복할 수 없음을 강조한 말이다. 행복한 순간들로만 이루어진 인생을 바라는 허황된 소망은 빨리 버리고,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행복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할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_ p.199
배우자가 하는 행동의 80%는 마음에 들고 20%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자. 좋은 것에는 금방 익숙해져서 고마운지 모르고 나쁜 것에는 익숙해지지 않아 지겨워하게 되는 인간 인식의 특성상 20%에 더 주목하게 된다. 80%의 존재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80%에 대한 기억이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20%에 대한 기억이 축적된다. 단점에 대한 인식이 쌓이고 쌓이니 어느 시점이 되면 도저히 못 참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인간의 자연적인 인식경향을 그대로 두면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교정적인 인식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도 그 사람이 이건 잘하잖아.’ 이성의 능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이러한 노력을 더하게 된다. 고마운 것을 인식하고 기억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_ p.235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된다. 그 ‘날것의 나’는 외로워하고 있고 무언가를 회피하고 있다. 대체로는 고독과 불안을 회피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만나려면 이 고독감과 불안감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 느낌을 대면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점차 늘려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처음에 혼자 있으려면 온갖 상념들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상념들은 그냥 두어야 한다. 온갖 생각들이 둥둥 떠다니다 가라앉고, 둥둥 떠다니다 가라앉을 것이다. 이를 반복적으로 느끼다보면 점점 ‘가라앉힌다.’는 표현이 실감 날 것이다. 이렇게 혼
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야 자기가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있다. _ p.268
인간 누구에게나 자신의 고유한 존재, 즉 ‘진짜 나’에 직면하고자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힘이 은폐되어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돈을 벌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돈을 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만 벌며 살다보면 ‘이렇게 살다 죽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내면에 숨어 있던, 진짜 나로 살고 싶은 마음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때가 온다. 그렇지만 이 마음을 느낀다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대부분 이 마음을 느끼는 그 센서 자체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마음을 가져간다. 결국 이는 자신의 죽음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지금 여기서 취할 수 있는 쾌락을 찾는다. 이렇게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회피하기 위한 삶, 즉 현존재의 삶을 살게 된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현존재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공허감과 허무감을 이기지 못해 힘들어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_ p.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