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최근 카멀라 해리스가 여성이자 유색인종으로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에서는 카멀라 해리스의 당선에 흑인 여성들의 높은 정치의식이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이미 온라인상에서 널리 퍼진 “#trustblackwomen(흑인 여성을 믿어라)”라는 구호가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미국 사회에서 교차성의 최단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흑인 여성에 대해 우리는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져왔을까. 투박한 손으로 소울 푸드를 척척 만들어내는 넉넉하고 솜씨 좋은 요리사 또는 몇몇 영화를 통해서 본 모습처럼 우직하고 충직한 조력자, 어떤 억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의의 소유자 정도로 생각해오지 않았을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봤다면, 저임금과 과노동으로 고통받는 삶을 이어가는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인식에까지는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종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관심에서는 먼 이야기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인종문제의 불의를 탐구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하고 뜨거웠지만 우리는 비교적 냉담할 만큼 차분했다. 우리 사회가 미국만큼 ‘거대한 용광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미 유효기간이 만료된 생각이다. 이민자들로 대표되는 인종문제를 포함한 소수자 문제는 이미 우리 사회의 만연한 문제이자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공동체의 과제이다. 『시크』는 현재 미국에서 록산 게이와 더불어 흑인 지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사회학자 트레시 맥밀런 코텀의 첫 에세이집이다. 이 책에서 코텀은 여성, 인종, 젠더, 계급, 아름다움, 자본주의의 영역을 넘나들며 소수자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저자는 이 논의를 미국에 사는 흑인, 그중에서도 여성, 거기에 더해 남부의 가난한 흑인 가정 출신이라는 바로 자신의 정체성에서 시작한다. 이 책의 제목인 ‘시크thick’는 어릴 때부터 저자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듣곤 했던 표현―두툼하다―이자 ‘복합적인’, ‘중층의’라는 의미의 사회학적 용어이기도 하다. ‘시크’라는 제목이 저자를 포함한 흑인 여성들, 나아가 여러 영역의 소수자들이 처한 간단치 않은 상황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소개
“인종, 젠더, 자본주의에 관해서 미국에서 가장 대담한 사상가”라고 평가받는 사회학자이자 작가.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로재직 중이며 주로 고등교육, 노동, 인종, 계급, 젠더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영리를 추구하는 고등교육 시스템과 사회적 불평등을 다룬 저서『저등교육Lower Ed』(2016)은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시크Thick』(2019)는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후보작에 올랐다. 비영리조직 ‘여성사회학자Sociologists for Women in Society ’가 선정하는 페미니스트 활동상을 수상했고(2017), 미국사회학회ASA로부터 사회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인 공으로 공로상을 수상했다(2020).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애틀랜틱』, 『슬레이드』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록산 게이와 함께 흑인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는 팟캐스트 방송 〈히어 투 슬레이Here to Slay〉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남부의 가난한 흑인 가정 출신의 코텀은 선천적 기형 때문에 평생 자신의 발을 고치며 살아왔다. 한번도 정상적으로 걸어본 적은 없지만 비뚤게 걷지도 않았다는 그는 끊임없이 발을 고치는 일은 골반이 죽도록 아픈 일이지만 멈출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것을 그만둔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멈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코텀은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발을 고치는 행위라고 말한다. 현실에 너무도 단단히 묶여 있어서 그곳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하는 그의 글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의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가령, ‘왜 우리 할머니가 아니고 나일까?’, ‘왜 그때가 아니고 지금일까?’, ‘왜 다른 미국이 아니라 이런 미국일까?’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현재 나의 사회적 지위는 우리 사회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학술지뿐만 아니라 여러 대중매체에 공격적으로 수백 편의 에세이와 칼럼을 써오면서 그는 우리의 모습과 자아가 우리 사회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를 탐구해왔다. 만지고, 냄새를 맡고, 보고, 직접 경험한 감각을 동원할 때 이야기는 더욱 강렬하게 다가간다. 그러나 그는 결코 환기력이 강한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환기력이 강한 이야기가 힘 있는 자들을 향한 문제 제기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글들은 발표할 때마다 논쟁의 중심이 되면서 소셜미디어의 ‘불폭풍’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