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음
타인의 역사가 우리의 연대기가 되기까지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잊지 않기 위해 한 걸음 다가서는 마음『아내들의 학교』, 『미스 플라이트』, 『바비의 분위기』 등 여성을 둘러싼 혐오의 지형도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극우주의를 탐구해온 작가 박민정. 한국소설의 최전선에서 혐오의 정동을 세밀하게 짚어낸 박민정의 첫 산문집 『잊지 않음 :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이 출간되었다. 데뷔 이래 12년간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현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아온 박민정 소설가의 산문 『잊지 않음 :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은 그간 그가 보여온 날카롭고도 따뜻한 시선의 연장선에서 생생히 기록한 글들을 모았다.이 책은 박민정 작가가 쓴 산문이면서도 타인의 역사를 통해 쓰인 산문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딸이자, 여학생이자, 여직원이자, 여성작가로 살고 있는 작가의 자의식적 글쓰기인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여성들의 역사를 기록한 연대기이기 때문이다. 시인, 소설가, 전쟁 피해자, 학생, 어린이, 난민 등 여러 인물들을 자신의 삶으로 수용하고 또 꼼꼼하게 기록하여 다시 펼쳐 보이는 박민정 작가는 “‘작가 개인’의 재현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도망칠 수 있었는지, 어디쯤 가서 뒤돌아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한다. 『잊지 않음』이 박민정 작가가 작가로서 보고, 읽고, 묻고, 쓰는 과정에서 지닌 예리함이 있을지라도 따스함을 품고 있는 이유는 작가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타인의 삶을 자기의 삶으로 포용하고 다시 내보이기 때문이다. 『잊지 않음』은 개인의 역사, 세계의 역사, 소설가로서의 역사를 기록한 세 부로 나뉘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여성작가가 된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차별과 혐오의 기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자신으로서 나아감을 선언하는 1부와,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깊게 뿌리내린 혐오의 단면을 돌아보고 우리가 세계의 역사를 함께 쓰는 존재로서 잊지 않아야 할 일들을 기록한 2부, 그리고 ‘쓴다는 일’에 대해 써 내려가며 ‘박민정의 소설’이라는 역사를 어떻게 구축해왔는지를 기록한 3부. “지금이 아니라면 쓸 수도 톺아볼 수도 그래서 엮어볼 수도 없는 글들을 모아보려 했다”는 박민정 소설가의 말에서 우리는 작가의 ‘잊지 않으려는’ 의지와 ‘기록하려는’ 용기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잊지 않음』에는 최은영 작가의 「나의 오랜 친구 민정이」라는 제목의 발문이 실려 있다. 박민정 작가를 향한, 그리고 박민정 작가의 글에 대한 애정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작가로서 쓴다는 것’에 대한 소회가 담긴 글이다. “박민정 작가의 글은 뜨거운 생각과 감정을 끝까지 응축하고 두드려서 단단하게 만든 칼 같다”는 최은영 작가의 말에서 박민정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또 세밀한 시선으로 글을 써 내려갔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