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에서 전해지는 뭉클하면서도 따뜻한 위로!
2015년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민음사 오늘의문학상, 황순원신진문학상을 수상한 구병모의 장편소설 『한 스푼의 시간』. 도발적이고 환상적인 상상력, 신선하면서도 생생한 캐릭터들, 발군의 문장 그리고 위로와 치유의 서사로 한국 문학의 새로운 축을 담당해온 저자가 《파과》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세탁소에 살게 된 로봇 소년 ‘은결’이 유한한 인간의 시간 속 숨겨진 삶의 비밀과 신비함을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을 섬세하면서도 차분하게 그려냈다.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명정은 조금은 낡고 조금은 가난한 동네에서 혼자 세탁소를 꾸려가고 있다. 외국에 살고 있는 외아들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어느 날, 발신자가 아들인 택배 상자가 명정에게 도착한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본 명정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17세 정도 되는 소년의 모습을 한 ‘로봇’이다. 명정은 아들이 마지막으로 남겨준 선물인 듯한 이 로봇에게 언젠가 둘째 아이가 생기면 부르고 싶었던 이름 ‘은결’을 붙여주고 함께 생활한다.
외부의 모든 자극을 데이터베이스화하며 때로는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이는 인간형 로봇이자 가사노동과 간단한 업무 외에는 창의적으로 쓸 만한 구석이 없는 불완전 샘플인 은결은, 명정의 곁에서 세탁소 일을 돕는 한편 이웃 아이들 시호, 준교, 세주 등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은결이 도착하고 9년의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어느덧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고 명정은 자신의 생을 서서히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은결은 만들어진 대로 충실하게 자극과 정보를 받아들이고 학습한 내용을 고도의 연산 작용을 통해 메모리에 저장하고 데이터에 따라 반응한다. 하지만 복잡하고 정교한 계산으로도 답을 얻기 어려운 변수들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렇게 인공두뇌의 가열한 연산으로는 계산해내고 실행할 수 없을 행동과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던 은결은, 그것이 설사 불완전 샘플이기에 나타나는 전산상 오류일망정 한 점 얼룩을 마음속에 품은 아이들과 명정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위로를 건네는 존재가 되어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