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세계는 고통과 슬픔의 바다다. 이곳이 모든 이의 출발점이다.’
부처님의 말씀이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29세에 궁전 밖을 나와 네 사람을 차례로 만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노인과 병자, 죽은 자 그리고 수행자를 차례로 만나며 삶의 고통과 슬픔을 온전히 맞이하는 순간이 언제나 놀랍고 새롭게 들린다.
우리도 이 문제 앞에서 똑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몸이 아픈 것은 당연하지만 궁금해하고 늙음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은 죽도록 견디기 어렵다. 나도 이러한 슬픔 속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매번 새롭게 찾아오는 삶의 어려움은 검은 늪으로 마음을 끌어들일 뿐이다.
나는 어두워지는 내 마음 안에 언제나 밝은 하나의 빛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아주 작아져서 바람에 흔들리고 꺼져버릴 것 같을 때가 많지만 가만히 사물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면 순간 괴로움이 사라지고 괴로움이 나의 망상임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사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끝에 밝음과 단순함이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그리는 꽃들은 꽃병에 있어 자유롭지 못할 것 같지만 나는 그 안에서 최대한 생동감이 넘쳐 흐르기를 바란다. 이것은 주어진 자신의 여건이 그러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완전한 아름다움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그림들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멀리 날아오르는 상상도 해본다. 밤을 날고 바람을 타며 구름이 되는 상상을 한다. 아이가 되어 처음 본 풀잎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며 별을 꿈꾸기도 한다. 색색의 물감통이 화실에 흩어져 있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림들이 시간과 함께 남아있다. 꽃을 바라보고 하늘을 날며 자연을 놀라움으로 흠뻑 안고 싶다.
- 류제비 작가노트 ‘별과 바람 그리고 소년’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