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영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누구를 잡아먹을 것인가?
시종일관 ‘나’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자기고백적 서사로 이루어진 일인칭소설 『0 영 ZERO 零』. 주인공인 나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이 세계란 누군가를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필연적인 승부의 세계다. 그렇기에 나는 도시에서 가장 쉽고 싸고 안전한 데다 감정까지 지닌 재화인 인간을 적절히 이용하여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한다.
나는 모든 것이 찰나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에서 아무도 죽지 않는 사냥, 그리고 피가 없는 전쟁을 계속해나가며 이 세계의 공허함을 폭로한다.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포식과 피식의 과정일 뿐이며,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선언하는 나는 이 세계의 무의미함과 가치 없음을 깨닫게 하는 맹독성의 구원자이다.
나는 개화, 문명화된 도시의 식인종으로서 사냥감을 찾아 헤매고, 세련되고 우아한 태도로 은밀하고도 사소한 방법을 통해 타인의 삶을 불행에 빠뜨린다. 남자친구, 동료, 제자, 가족 등 주위 사람들을 향한 악마적인 나의 시선을 따라 우리의 시선도 함께 이동하다가, 나의 내밀한 고백에 경악하면서도 우리는 어느새 타당성과 합리성을 찾고자 하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온한 세계를, 다시금 낯설게 인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