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남자
사희는 다시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그제야 낯선 남자의 손을 홱 쳐내며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아파요!”
그녀가 남자를 경계와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이 남자를 만난 뒤 처음으로 그녀는 그를 자세히 살폈다. 짧게 자른 남자의 머리카락은 보통 사람들 것보다 더 새카맣다. 첫인상은 그냥 조금 까칠한 도시 남자구나 했지만, 남자치고는 좀 작다 싶은 얼굴과 적당한 넓이의 이마에 맞춰 그린 것 같은 숱 많은 검은 눈썹, 그 아래 살짝 쌍꺼풀 진 속을 알 수 없는 서늘한 두 눈, 오뚝 솟은 코,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과 날렵한 턱 선까지, 이 남자는 생김새부터가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었다. 그래서일까, 사희는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기막히고 이해 안 되는 이 상황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었던 사희는 애써 용기를 쥐어짰다.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거죠? 초면에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요?”
남자가 살짝 입 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난 두 번짼데. 아, 그쪽은 초면이군.”
두 번째? 말도 안 돼.
제멋대로 구면이라고 우기는 이 남자가 사희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혹시 멀쩡하게 생겨서 살짝 돌았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사희의 두려움은 한층 더 높이를 더했다. 그녀가 막무가내로 말했다.
“그쪽이 날 어떻게 아는지 잘 모르겠지만, 난 당신을 몰라요. 가겠어요.”
말을 내뱉기 바쁘게 사희가 총총걸음을 옮기려는데 남자가 물었다.
“병실이 필요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
사희는 그를 다시 쳐다보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네! 맞아요. 하지만 난 이런 으리으리한 특실인 줄 몰랐어요.”
“어디든, 그쪽 병만 고치면 되는 거 아닌가? 머리가 나쁜가? 아님,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자존심, 자격지심?”
작정한 듯 대놓고 자존심을 긁어대는 남자의 무례함을 참지 못하고 사희가 버럭 화를 냈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따위로 말을 하는 거죠?”
그의 비틀린 입매에 더욱더 선명한 비웃음이 담겼다. 그리고는 남자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나이, 29세. 이름, 사희. 현재 성남 수정구에 있는 하늘 천사원에서 복지사 & 보육교사로 재직 중. 오늘, 이 병원에 온 목적은 손목 터널증후군 수술을 하기 위해서지. 그리고…….”
순간 해일처럼 덮쳐 오는 황당함과 혼란스러움에 휘청거리던 사희가 냉큼 그의 말을 잘랐다.
“그만!”
그녀는 문득 이 상황을 보다 쉽게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로 떠올린 단어 하나를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그쪽 의사예요?”
좀 전에 입원 서류에 자필 기입한 정보는 그렇다 쳐도, 그녀의 세세한 개인적인 정보까지 훤히 꿰고 있는 이 남자, 어딘지 모르게 수상했다. 그래도 혹시나 그녀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치가 급상승하는 그때였다.
“의사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