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창업에서 IPO까지
누구나 언젠간 홀로 서야 하는 시대
한중일 그리고 대만까지 살아보고 일해 본 필자는, 이들 동북아 4국을 아우르는 공통적 사회 현상 하나가 바로 ‘입시 지옥’이 아닐까 생각한다. 입시 지옥이란 게 여태껏 유지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좋은 학벌이 좋은 직장을 보증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등식이 흔들리고 있다. 속칭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 자체가 어렵고, 취업을 해도 오래 버티기 힘든 세상이 됐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 창출이야 말로 각국 정부에겐 최우선 과제이고, 그래서 스타트업 육성이 세계적인 열풍이 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여전히 대기업 일자리에 맞춰, 부품처럼 주어진 역할만 할 줄 아는 ‘월급쟁이 붕어빵 기계’란 점이다. 창업자가 되는데, 애초에 주입식 암기 교육이 무슨 소용이랴. 명문대를 나와도 양질의 일자리는 매년 더 많이 더 빨리 사라지는데, 졸업할 때가 다 돼 서야 갑자기 창업하라고 등 떠미는 게 요즘 형국이다. 채용 시장 변화를 이런 입시 교육 시스템이 따라잡지 못하면 입시 지옥이란 말도 조만간 구시대의 유물로 남지 않을까?
아무튼, 이들 동북아 4개국은 어떻게 스타트업을 키우는지, 관련 기업에서 스타트업 투자 담당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필자가 직접 체득한 몇 가지 인사이트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물론 매우 제한적인 경험에 기반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기에, 무리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첫째, 중국의 창업투자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를 보면 특이하게도 사실상 부동산 개발업자인 경우가 흔하다.
신도시가 제 기능을 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게 일자리일 터이다. 정부의 다양한 보조금 지원을 받아 그럴싸한 오피스 타운을 만들고, 여기에 입주시킬 세입자로 자기들이 발굴하고 투자한 스타트업을 채우는 식이다.
투자한 기업이 망해도 기업당 투자금은 어차피 소액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수익은 부동산 개발 차익으로 올리는 사업 모델이다 보니, 이런 식의 창투사가 급속히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젊은 직장인들로 붐비는 상권 개발은 덤이고, 세입자로 들어찬 부동산 개발 차익이, 장기간 지속된 부동산 호황을 타고 스타트업 투자보다 오히려 짭짤한 상황이 이어져 왔다.
한마디로 꿩도 먹고 알도 먹는 방식이다. 최근 들어서는 사무 공간과 함께 주거가 한 건물에서 가능한 직주 겸용 창업센터가 유행인데, 스타트업들의 호응 또한 높다.
이에 반해 한국의 신도시 개발은 어떨까?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결국 아파트 단지만 가득한 배드 타운(Bed Town) 조성은 아닌가 싶다. 산업단지, 경제자유구역들을 살펴보더라도, 굴뚝 산업, 제조업 중심으로 짜인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지방 경제 활성화를 외치면서, 정작 경쟁력을 상실해가는 제조업 중심의 산단 지원 체계가 일자리 증가에는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우리도 청년 주거를 위한답시고, 닭장 같은 원룸만 잔뜩 짓지 말고, 대중교통이 난감한 교외에 엉뚱한 창업 센터 짓지 말고, 한 공간에서 주거와 업무가 효율적으로 가능하도록 정부에서 먼저 나서서 직주 겸용 창업 센터들을 청년들을 위해 도심 안에 활성화 시킴이 어떨까 한다.
둘째, 한국에 비해 중국, 대만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스타트업 육성이 상대적으로 더 활발한 편이다. 샤오미의 예에서 보듯, 대기업의 밸류체인에 스타트업을 태워서, 투자한 기업의 기업 가치도 단번에 끌어올리고, 대기업도 스타트업의 순발력과 스피드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이다.
중화권 혁신 기업들의 기업 확장을 보면, 한국처럼 내부에서 자꾸 계열사를 늘려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은 기업을 초기 단계부터 투자해서 적극적으로 키워서 협력사로 만드는 외부 수혈 방식이 특이점이라 하겠다.
필자가 대만 HTC의 바이브(Vive) 가상현실 담당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때의 일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당시 제2의 PC방 사업이라 기대를 모았던, VR 게임방은 특히 한국에서도 빠르게 성장하던 시점이다. 지금은 PC와 연결하지 않고도 충분히 고해상도의 복잡한 게임을 VR 헤드셋만으로 즐길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VR 게임을 실행하려면, 고성능 그래픽 카드를 설치한 고사양 PC 연결이 필수적이었다.
특히 PC와 VR 헤드셋은 여러 가닥의 선으로 연결되어, 머리 뒤로 주렁주렁 전선들을 매달고 게임을 해야 했으니, 이 복잡한 선들을 없애기 위한 무선 연결이 업계의 당면 과제였다.
HTC는 이 문제를 ‘TP Cast’란 스타트업을 발굴, 선행 투자와 협업을 통해, 독자 개발보다 그리고 경쟁사였던 오큘러스 보다 몇 년 더 앞서 내놓으며 B2B형 VR 사업에도 주도권을 가져가는 중요한 계기로 만들었다.
대만 HTC는 VR, AR 분야에 특화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으로 ‘Vive-X’ 프로그램을 출범시켜서, 전 세계 주요 30여개 국가에 걸쳐 신기술 개발 동향, 경쟁사와 시장 트렌드에 대한 모니터링에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한 기업당 평균 몇 천만원의 소액 투자로 대기업 입장에서는 직·간접적으로 몇 배의 투자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데, 이런 식의 생태계 투자, 협력 모델은 국내 기업들도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상황을 보자. 스타트업 분야에 관한 한, 일본은 확실히 동떨어진 별천지 같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일단 명문대 출신이라면 응당 관료가 되거나 대기업으로 가야지,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면 희한한 별종으로 받아들이는 거랄까.
필자가 가상 현실 분야 투자를 위해 몇 차례 일본 지자체와 관련 기관과 함께 현지 투자유치대회를 열었을 때도 그랬고, 중국 기업에 재직 시, 로봇·AI 분야로 확대해서 일본에서 투자 대상 기업을 찾으려 몇 년을 공들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에서 스타트업의 열기나 특별한 경쟁력을 발견하지 못했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일사불란한 집단주의 장점과 개인의 창의력, 순발력, 자율성 등이 강조되는 스타트업을 떠올려 보면 사실 어색한 조합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IBM의 컨설턴트로 소니, 마쓰시타, 샤프 등을 컨설팅 하면서 한국보다 사무직의 임금 수준이 훨씬 낮은데 또 한 번 놀랐던 경험도 있다. 한국의 대표 전자 회사인 삼성전자 대비 신입 사원의 연봉 수준을 비교하면 거의 60~70% 수준에 불과했다.
한일 양국의 근로자 평균 임금 수준을 비교해 보면, 한국이 2015년부터 이미 일본을 넘어선 게 통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본은 대기업의 성장 엔진은 식어 가는데, 이를 대체할 새로운 동력, 성장 엔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3위의 경제 대국 일본도 앞으로 5년 후에는 한국에 1인당 GDP도 역전된다는 전망이 나오는 판이다.
그런데 많은 점에서 일본을 그대로 닮아가는 한국 경제의 내일을 생각해 보면, 우리도 중국, 대만의 뜨거운 창업 열풍과 세계적 성과를 보면서 한국만의 K-스타트업은 어떻게 키워낼지 진지한 반성과 대책 마련이 필요한 때다.
아무튼 처음부터 창업을 하든, 직장을 다니다 창업을 하든, 그게 벤처이든 자영업이든 100세 시대에 월급쟁이로는 절반을 채우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기에 누구나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자립해야 하는 할 터, 이 책은 성공적인 창업을 꿈꾸는 스타트업에 바치는 세명 멘토들의 인사이트 노트가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