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우스
올라프 스태플든의 감성과학소설
사람의 지능과 감정을 가진 개, 시리우스!
이 낯설고도 친숙한 개를 나는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듯만 싶다
- 김별아(소설가)
여기 당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개가 있다. 노래를 부르고 자서전을 쓰고 말을 하는 ‘시리우스’. 개의 육신을 입고 태어났으나 인간의 정신으로 사고하고 “인간은 정말 이상해!”라며 우리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허물을 꼬집다가도 “내게도 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쓸쓸하게 고개를 떨어뜨리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개.
『이상한 존』의 작가 올라프 스태플든의 대표작 『시리우스』는 인간의 지능을 가진 개 시리우스와 그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 플랙시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밖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맺음을 이야기하는 〈감성과학소설〉이다. 인간도 개도 아닌 시리우스가 불완전한 지성과 야만 사이에서 겪는 혼란과 외로움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이상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슬프고도 지독한 자화상의 다른 이름이다. 소설 속 시리우스가 밟아간 길을 따라가던 독자는 어느새 그의 고독과 슬픔, 간절한 소망에 공감하면서 이따금 책장을 덮고 촉촉하게 젖은 눈을 허공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난 매일 밤, 내게 손이 생기는 꿈을 꿔요.”
인간보다 인간적인 개, 시리우스
만약 개가 인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자존심을 갖도록 길러진다면? 인간이 아니라 해도 스스로의 지성과 감수성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면? 19XX년 영국의 뇌의학자 토머스 트렐론 박사는 인간의 바깥에서 인간을 보고, 인간에 대해 말해줄 존재를 꿈꾸었다. 그리고 마침내 꿈은 실제가 되었다. 만들어진 존재. 이것은 지능이 높고 언어를 알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으며, 섬세하고 상냥하며 폭력을 싫어하는 개 시리우스가 타고난 운명이다. 그러나 개도 인간도 아니라는 정체성의 혼란에 어리둥절해하고 손이 없어 겪는 불편에 절망하는 반면, 암캐의 유혹적인 냄새를 거부할 수 없어 오줌을 찔끔거리고 마는, 네 발로 걸어야 하는 개로 태어난 것은 시리우스의 숙명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 주는 운명을 타고났어.”
소녀와 양치기 개, 소울메이트로 맺어진 인연
트렐론 박사의 딸인 ‘인간’ 플랙시와 ‘개’ 시리우스는 어렸을 때부터 쌍둥이처럼 함께 자란다. 둘은 하나의 시공간(space-time)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시리우스-플랙시’이다. 서로 완전히 다르면서도 오래전부터 뿌리 깊게 연결돼 있어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 서로에게 돌아오고 마는 운명인 것이다. 양치기 개의 굴레를 쓰고 살아가야 하는 시리우스는 아이에서 소녀, 여인으로 자라난 플랙시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알고 싶었고, 인간이 이룩한 기적을 이해하고 싶었으며, 자신이 겪고 있는 특별한 운명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그의 갈망은 개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서 자신이 인간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픈 성급한 욕심을 부추긴다.
“이 우주 어디에도 날 위한 곳은 없어.”
그의 정신은 문명을 원하지만 그의 본능은 야성을 좇는다
차츰 성장해가며 플랙시와 떨어지게 된 시리우스는 양치기 개 수업을 받으며 자연과 교감하고 목장을 스스로 경영하며, 런던에 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해 배워나가지만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유일한 존재 플랙시와는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암캐의 냄새나 사냥의 피맛이 주는 강렬한 유혹과 좌절감은 야성을 좇는 본능과 문명을 원하는 정신 사이의 혼란을 가져온다. 그러던 중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은 희생양을 원한다. 그 한복판에 있던 시리우스는 어렵게 일군 문명 생활을 버리고 한 마리의 들개로 돌아가지만, 추적의 손길은 계속 뻗쳐온다.
아직까지 이 소설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읽는 내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 정성일(영화평론가)
스태플든의 문학적 상상은 거의 무제한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작가)
스태플든은 굉장한 작가다. 그 비범한 상상력과 시야로 그는 찬란한 대가들의 영역에 입성했다
-도리스 레싱(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질문 :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인물로 흔히 프랑스의 쥘 베른과 영국의 H. G. 웰스를 꼽는다. 그러나 이들의 업적은 엄밀히 말하자면 과학소설의 ‘외형’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부분이 크다. 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와 같은 셈이다. 그렇다면 그 2세의 정신적 측면에 해당하는 철학과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준 스승, 현대 과학소설에 깃든 가장 심원한 비전의 하나인 ‘우주와 지적 존재의 장대한 서사’라는 틀거리를 짠 것은 누구였을까?
답변 : 올라프 스태플든.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
겨울 밤 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천랑성 『시리우스』
한 비범한 과학자의 연구 끝에 탄생한 개 시리우스는 강아지 때부터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자라나 인간의 학문과 음악 등의 문화에 통달하게 되고 더 나아가 언어까지도 습득한다. 한편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과학자의 딸 플랙시는 세상에서 시리우스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의 인간으로 시리우스와 소울메이트의 관계를 이루게 된다.
케임브리지에서 학자들과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목장에서 양치기 개로 일하며 자신의 야성을 깨닫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혼란스런 정체성과 불완전함에 언제나 괴로워한다. 인간처럼 능숙하게 도구를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은 늘 좌절감을 안기고, 게다가 그런 답답함을 공감해 줄 비슷한 존재가 없다는 점은 외로움을 더할 뿐이다.
시리우스는 플랙시와 함께 조용한 목장에서 소박한 삶을 영위하려 하지만, 전쟁으로 흉흉해진 민심은 희생양을 원하고 이들에게 위협의 눈길을 향한다.
시리우스는 ‘늑대별’, ‘하늘의 늑대’라는 뜻의 천랑성과 같은 운명을 타고 태어난 개다. 인간의 지성과 동물의 야성을 동시에 지니고, 태생부터 기이한 존재로 만들어진 생명. 그는 지구와 가장 가까운 항성 시리우스처럼 인간과 가장 가까운 포유동물이다.
인간의 밖에서 바라본 인간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존재를 만들겠다는 한 과학자의 집념, 금기의 땅에 그가 우연히 당도한 시작부터 이 이야기 속에는 비극성이 담겨 있다.
‘신의 영역’에 도전했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메리 셸리의『프랑켄슈타인』이다. 시체 조각을 기워 만든 육신을 지닌 괴물, 결국 자신의 창조자를 죽이고 끝내 인간의 폭력 앞에 존엄성을 버려야 했던 슬픈 운명의 사나이.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보다 더 분열된 생의 주인공이다. 결코 동류가 될 수 없는 인간과 동물, 그리고 그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지성과 야성은 끝내 그에게 영광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허나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던 시리우스의 질문들은 묵묵히 그의 생애를 따라가는 소설 밖의 독자들에게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를 남긴다. 서로 회전하는 두 개의 별이 하나의 별자리가 되듯, 인간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과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하나 잊고 있던 교훈을 실감하게 된다.
‘시리우스’라는 별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 중 하나로, 겨울철 밤하늘에 최고로 밝게 빛나는 별이다. 큰개자리라는 별자리에 속하고, 동양에서는 ‘늑대별’, ‘하늘의 늑대’라는 뜻의 천랑성 등으로 불렀다. 시리우스는 쌍성으로 50년 주기로 서로 회전하는 작은 별(백색왜성)을 하나 거느리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옳다는 것을 관측을 통해 처음 증명하는 데 기여했던 별도 이 작은 시리우스였다. 스태플든과 같은 영국 출신 천문학자 아서 스탠리 에딩턴이 1924년 거둔 성과였다.
- 이영기, 「옮긴이의 말」 중에서
‘시리우스-플랙시’ : 따로 떨어질 수 없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관계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시리우스와 플랙시를 붙임표(-)로 연결해 ‘시리우스-플랙시’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는 상대성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space-time‘으로 나타내는 것을 연상시킨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실체였다. 시간 따로, 공간 따로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해 ’시공간‘이라는 4차원 개념을 도입하면서,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 서로에게 의존하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칠게 말하면 시간과 공간은 각각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가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얘기다. 그래서 공간의 모습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양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리우스-플랙시’ 또는 ‘플랙시-시리우스’라는 표현을 통해 스태플든이 이야기하려던 점도 그게 아닐까. ‘인간’ 플랙시와 ‘개’ 시리우스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자연계 안에서 인간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비인간, 즉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미래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던진다.
『프랑켄슈타인』『블레이드러너』『앨저넌에게 꽃다발을』『A.I.』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진 특별한 스토리텔링의 숨겨진 명작
이 소설은 쥘 베른이나 H.G.웰스와 함께 현대 과학소설의 형성에 커다란 기여를 한 영국의 철학자 올라프 스태플든의 작품이다. 그의 소설들은 인간 외적인 시점으로 세계를 통찰하고 근본적인 부조리를 비판하는 것이 특징인데 『시리우스』는 그런 미덕과 함께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구조가 돋보인다. 『프랑켄슈타인』의 시체를 기워 만든 괴물,『블레이드 러너』의 인간보다 인간적인 안드로이드 ,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에서 뇌수술로 천재가 된 저능아, 『A.I.』의 인간이 되고 싶은 소년로봇 등의 특별한 스토리를 통해 인간과 거의 같은 이종들의 비극성을 접해봤고, 그들의 비극성이 인간을 향한 경고의 은유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전하는 의미가 새로운 것은 웰메이드 스토리텔링 속에서 얼마나 실감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갔는가는 소설 읽기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가장 감동적인 과학소설’로 꼽히는 『시리우스』는 개의 관점에서 실감나게 풀어가는 감각의 묘사나 세계에 대한 시선, 드라마틱한 결말까지 눈을 뗄 수 없는 페이지터너 소설이기도 하다.
스태플든의 광대한 지적 전망은 나의 우주관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내 작품의 상당수는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서 클라크(작가, 미래학자)
버지니아 울프와 처칠이 인정한 작가, 도리스 레싱과 보르헤스가 한목소리로 칭송한 작가, C. S. 루이스와 아서 클라크의 세계관을 만든 작가 “올라프 스태플든”의 대표작 『시리우스』(1942)이 출간된 지 60여 년 만에 국내 최초로 완역되었다. “21세기 우주적 상상력을 찾는 사람들. 상상여행자를 위한 상상여행사”라는 기치를 내걸고 2008년 야심차게 출범한 (주)웅진씽크빅의 과학소설 전문브랜드 오멜라스의 네 번째 선택인 『시리우스』은 앞서 출간된 오멜라스클래식 『이상한 존』과 마찬가지로 초판 한정양장본과 페이퍼백 2종으로 제작되어 새로운 스타일과 새로운 컨텐츠의 장르 문학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나는 스태플든의 작품들을 너무나도 숭배하기에
그 설정을 차용하는 것에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다.
-C. S. 루이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