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심리적 사실주의의 대가이자 모더니즘의 선구자헨리 제임스가 정치·사회 문제에 도전한 중기 대표작개혁과 진보의 도시 보스턴을 주무대로 펼쳐지는퀴어한 사랑과 욕망, 그리고 좌절의 장대한 드라마184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대서양 양안을 오가며 활약하다 영국인으로 귀화한 이듬해인 1916년 세상을 떠난 ‘국제적 작가’이자 ‘코즈모폴리턴’ 헨리 제임스. 인물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세밀히 묘사하는 ‘심리적 사실주의’의 대표 작가로, 문학의 주제와 형식에서 대담한 실험을 시도해 모더니즘으로의 본격적인 이행을 예고한 그는 『여인의 초상』 『비둘기의 날개』 『대사들』 등의 장편은 물론, 수많은 중단편, 희곡, 여행기, 수필, 평론을 쓰며 방대한 작품세계를 구축해냈다.그의 작가 이력상 중기에 해당하는 1886년 발표한 『보스턴 사람들』은 당대 한창 전개되던 여성참정권 운동을 주요 소재로 하여 다양한 사상과 세력이 경합하던 미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구현한 대작이다. 남부 출신으로 보수적 성향을 지닌 변호사 배질 랜섬, 그의 먼 친척으로 여성운동에 투신한 올리브 챈슬러가 젊고 아름다운 연설가 버리나 태런트를 두고 경쟁하는, 즉 한 여자를 두고 남자와 여자가 경쟁하는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 파격적이다. 버리나를 차지하려는 배질과 올리브가 치열히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여성운동가, 언론인, 최면치료사, 의사, 강연 기획자 등 각양각색의 인물이 등장하고 얽히면서 사회개혁 운동을 둘러싼 천태만상이 펼쳐진다. 여성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해방과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분투에 주목한 헨리 제임스는 이 소설을 통해 특유의 치밀하고 집요한 심리묘사와 신랄한 풍자로 인물들의 내적 외적 동기와 욕망을 낱낱이 해부하며 1870~1880년대 미국 사회를 생생하게 재현해낸다.출간 당시에는 평가가 엇갈렸으나, 『보스턴 사람들』은 전통적 성역할과 결혼제도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퀴어한 욕망을 다뤘다는 점에서 오늘날 시대를 앞선 통찰이 담긴 작품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헨리 제임스의 문학과 젠더 연구에 오랫동안 열중해온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윤조원 교수의 충실한 번역과 주석, 그리고 상세한 해설은 한동안 저평가된 논쟁적인 작품 『보스턴 사람들』을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제대로 음미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저자소개
리얼리즘 소설의 정점을 보여주었으며 모더니즘 소설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로 평가되는 헨리 제임스는 1843년, 당시 미국에서 유명한 변호사였던 헨리 제임스 1세의 아들로 뉴욕의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손꼽혔고, 한 해 먼저 태어난 형은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이다.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부모를 따라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생활했고 제네바, 런던, 파리, 볼로냐, 본 등지에서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862년 하버드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였으나, 얼마 뒤 문학에 뜻을 두고 단편소설과 평론을 쓰기 시작하여 신진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때 발표한 것이 최초의 단편 「실수의 비극」(1864)이다. 이후 문학에 전념하며 1966년에서 1869년까지, 1871년에서 1872년까지 『네이션』과 『애틀랜틱 먼슬리』에 기고자로 참여하였다.
1875년 고국을 떠나 파리로 갔고 거기서 이반 투르게네프, 귀스타브 플로베르, 에밀 졸라, 알퐁스 도데 등과 알게 된다. 특히 투르게네프에게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작중인물이라는 점을 배우는 등 유럽 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베네치아와 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최초의 소설 『파수꾼』(1871)을 내놓은 후, 『뉴욕 트리뷴』의 기고자로 활동하며 파리에 거주하다 1876년 영국으로 가서 그곳에 정착한다. 그리고 잇따라 『미국인』(1877), 『데이지 밀러』(1878), 『워싱턴 스퀘어』(1880), ‘영어로 쓴 가장 뛰어난 소설’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여인의 초상』(1881) 등을 발표하였다. 이들 중에서 『워싱턴 스퀘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제문제를 다루었다.
이어서 한동안 사회소설에 손을 대어 『보스턴 사람들』(1886), 『카사마시마 공작부인』(1886) 등을 발표하였고, 극작에도 관심을 가져 「가이 돔빌」(1895) 등 몇 편의 희극을 썼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나사의 회전』(1898), 『비둘기의 날개』(1902), 『특사들』(1903) 『황금 주발』(1904)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05년에는 2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뉴욕, 워싱턴, 시카고 등을 방문하고 『미국 기행』(1907)을 썼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1912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고, 1916년에는 국왕 조지 5세가 수여하는 명예 훈장을 받기도 했다. 사망하기 바로 전 해인 1915년 영국에 귀화하였다.
제임스의 성취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인도 아니고 유럽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을 버텨 내면서 제임스는 “국제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둘째, 리얼리즘의 대가이면서 모더니즘의 선구로서 제임스는 형식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었던 소설에 형식적 완결성을 부여했고, 소설 비평과 이론의 기반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내면 갈등을 겪는 여성 인물을 전면에 배치했다. 다양한 여성 인물들을 그려 냈을 뿐 아니라, 남성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이들을 내면이 있는 개인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워싱턴 스퀘어』는 세 번째 성취의 사례이다.
쉼 없는 창작열로 23편의 장편, 112편의 단편과 중편, 각종 평론과 여행기, 250여 편의 서평과 수십여 편에 달하는 비평문 그리고 만 통 이상의 편지를 남긴 그는 19세기 문학 리얼리즘에 있어 주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자신의 소설을 직접 해설한 『소설의 기예』(사후 1934년 간행)는 소설 이론의 명저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