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기생충
대만 출판계 최고 권위의 상 ‘금정장’ 수상작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기생충과 경쟁해야 했던 딸의 성장기
《우리 엄마의 기생충》은 대만의 주목받는 시인이자 번역가인 린웨이윈이 남다른 가족사, 엄마와의 갈등, 우울증, 자살 기도 등으로 상처 입은 지난날을 덤덤한 유머로 희석시켜 그려낸 자전 에세이다. 온전히 사랑받길 원했고, ‘기생’에서 ‘독립’으로 나아가고자 고군분투했던 성장의 기록이 25편의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만 최고 권위의 ‘금정장’ 문학 부문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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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에 기생충을 기르는 기생충학자 엄마와
기생충과 구더기를 질투하며 자란 딸의 애증사
《우리 엄마의 기생충》은 반항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은 딸이 부모님, 특히 엄마에 대한 애증에서 자유로워진 후에 쓴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 린웨이윈의 엄마는 워커홀릭 기생충학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성장 과정을 겪었다. 그녀의 엄마는 도쿄 디즈니랜드 대신 메구로 기생충박물관에 딸아이를 데려가고, 길에서 개똥을 보면 보물을 발견한 듯 고이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곤 했다. 딸이 사춘기가 된 이후로는 한 번도 귀엽다고 말해주지 않았지만 기생충과 구더기를 보고선 너무나 귀여워했다. 그녀는 기생충 연구에 빠져 있는 엄마 곁에서 기생충과 모정을 나눠 가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기생충과 경쟁해야 했다.
린웨이윈은 자신의 엄마가 조금 독특한 것일 뿐 다른 면은 남들과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생충을 배 속에서 직접 키우겠다는 엄마의 선언으로 인해 남편과 엄마 사이에서 ‘가족 혁명’을 치르면서, 30년 넘게 같이 산 엄마에 대해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 엄마의 기생충’이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저자의 엄마를 사로잡은 진짜 기생충이고 다른 하나는 린웨이윈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목차를 기생충 알 시기부터 시작해 유충을 거쳐 성충이 되기까지의 과정으로 구성했는데, 이는 기생에서 독립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저자 자신의 성장사이기도 하다.
자신의 쓰라린 속살을 담담히 어루만지는
‘기생’에서 ‘독립’으로의 감동 고백서
부모님이 명문 대학 교수인 엘리트 집안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자란 모범생. 열여섯 살에 문학상을 받고 열일곱 살에 연극을 연출하고 공연했으며 영국 유학을 떠나 대학 졸업 논문으로 ‘올해 최고의 졸업작품상’을 받은 재원. 서른한 살에는 대만인 최초로 폴란드 문화부로부터 공로상을 수여받고, 같은 해에 ‘중화민국 10대 청년상’을 수상한 시인이자 번역가. 이런 남부럽잖은 배경과 화려한 이력만 보면 린웨이윈이라는 젊은 작가가 반항과 방황으로 가득한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고 선뜻 믿기지 않는다.
영예와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내가 지치고 우울할 때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블랙홀이 점점 커져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넌 막 휴학했을 때처럼 완전한 실패자야.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창피하게 만드는 딸이야. 네가 불량품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네가 뭘 하든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아.” (249쪽)
그녀의 왼쪽 손목에는 길이가 제각각인 자해의 흉터들이 남아 있다. 어째서 그녀는 그토록 괴로웠던 걸까. 어떤 상처와 고통이 있기에 스스로를 ‘불량품’이라 느꼈던 것일까. 그녀도, 그녀의 부모도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데는 언제나 서툴렀다. “부모님이 너한테 그렇게 잘해주는데 뭐가 문제야?”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정서적인 결핍도 일종의 가난”이라고 그녀는 토로한다. 자랑스러워할 만한 성과를 내도 부모에게 제대로 인정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 그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은 왜 그렇게 극단적이었을까? 엄마는 왜 문학계 선배가 나를 칭찬할 때도 선배에게 “칭찬이 과하네요”라고 말하고, 나를 좋아하고 동경한다는 내 독자에게도 “아부가 심하시네요”라고 했을까? (252쪽)
소통하고 사랑을 주고받는 데 익숙하지 못했던 그녀는 언제나 귀속감과 안정에 목말라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호의적으로 다가오면 방어 태세를 취하고는 그들이 자신에게 어떤 부탁거리가 있거나 자신을 해치려는 게 틀림없다고 단정해버리곤 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 이유도 없이 내게 잘해줄 이유가 없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신이 문제가 있거나 무능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이제 뭔가를 이루어내 부모님에게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치지 않는다. ‘좋은 딸’과 ‘나쁜 딸’,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라는 지독한 분열 상태를 경험했지만 결국엔 ‘나쁜’ 나도 역시 나이며, 엄마가 사랑하는 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가감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아픈 역사를 덤덤하게 꺼내어놓는 저자를 지켜보면서 독자들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단순히 남의 인생사를 들여다보는 재미보다는 저자의 진솔한 고백을 들으면서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저마다의 아픔과 인생에 대한 의문들이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흑과 백만 존재하는 부적응의 시기를 보낸 뒤 인생의 모범답안에 대한 강박에서 조금은 벗어난 그녀를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될지도 모른다.
웃기면서도 안쓰럽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성장통을 넘어 깨닫게 된 것들
‘변비’가 중차대한 고민인 외할아버지가 온가족이 둘러앉은 밥상 앞에서 늘어놓는 ‘대변 브리핑’ 장면, 초등학생인 저자가 온갖 병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나는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매독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암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매일 주문을 외는 모습, 몸속에 기생충을 오래 길러서 세계 기록을 깨고 싶다는 엄마와 “기생충이 중요해, 딸의 행복이 더 중요해?”라고 따져 묻는 저자가 옥신각신하는 대목 등은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어 피식 웃음이 터진다. 시트콤에 나오는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소설에서 그려질 법한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모와 가족에게 받은 사랑과 결핍, 사춘기 시절의 고민, 남편과의 갈등 등 저자의 모든 이야기에는 고통과 희열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중함과 유쾌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 그런 이유로 ‘아프고 쓰라린 자신의 얘기를 이렇게 담담한 유머로 어루만질 수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우리 엄마의 기생충》을 읽다 보면 비록 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하지는 못했지만 기생 단계를 벗어나 혼자서 일어서기 위한 중간 점검을 지켜보는 듯하다. 엄마가 된 저자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일으켜 세우기 위해 스스로에게 소리 내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 감동적이다. 이 책은 ‘조충’에서 ‘아메바’에 이르는 25편의 개성 가득한 ‘기생충도감’을 펼쳐 보여주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잔잔한 치유의 경험을 선사한다.
저자는 ‘후기’에서 부모님과 소통하고 부모님과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타인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그녀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독자들에게 알려주며 책을 맺는다.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자기 이야기를 쓸 권리가 있다. 그 이야기가 남들 눈에 성공으로 보이든 실패로 보이든, 말할 가치가 있든 없든, 글을 잘 썼든 잘 쓰지 못했든 상관없다. (2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