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를 떨어뜨려 봐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담긴 우주―
사물에서 사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뫼비우스적 사유의 기록
우리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있다. 늘 우리 주변에 있어 익숙한 이것들이 어느 한순간, 우리의 발걸음을 새로운 우주로 들여놓는다.
시작은 사소하고도 우연한 볼펜 한 자루였다. 저자 이명훈은 아침에 눈을 뜨고도 선뜻 일어나기가 싫어 미적거리다가 머리맡에 놓인 볼펜을 잡고 돌렸다. 볼펜이 세 조각으로 나뉘어 빈 노트 위에 놓였을 때 상상이 꿈틀거렸다.
“대수롭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무슨 큰 발견이나 한 듯 과장을 떠는 꼴이 우스꽝스럽다고 할지 모른다.”고 저자는 걱정한다. 늘 남들이 만들어 우리 앞에 성찬처럼 차려놓는 거대한 상상력의 성(城)에 둘러싸여 살다 보면, 내 안에 언뜻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꿈틀거림들은 빈곤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상상력 그리고 그와 결부된 창조가 꼭 거대하고 압도적이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둘레의 소박한 토양에서 그런 씨앗을 발견하고 사소하지만 풍요로운 사유 여행을 떠나보자. 이 책은 그런 사유의 기록이다.
수저 ? 부엌 ? 아궁이 ? 숯 ? 항아리 ? ? ? 발에 차인 나뭇가지 ? 넝쿨 ? 실―
숟가락이 떨어지던 순간, 팅, 소리와 함께 빚어진 내면의 우주
온라인 매체 〈뉴스핌〉(www.newspim.com)에 ‘뫼비우스 단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을 골라 묶었다.
저자 이명훈은 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에 대한 메타적 성찰을 바탕으로 내면의 세계를 여행한다. 2000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하고, 2003년 〈문학사상〉 장편소설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거대 담론이 넘치는 이 ‘인문학의 시대’에 나를 둘러싼 사소하고 소박한 것들에 대한 성찰과 상상, 그로부터 관점을 새로이 한 융?복합적 통찰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머리맡에 놓여 있던 볼펜을 시작으로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상상 여행을 떠난다. 몇 꼭지의 사유가 이어지고 돌아봤을 때 그의 사유는 ‘하늘과 땅’이라는 주제로 묶였다. 그의 사유는 사물에서 사물로, 사소한 것에서 사소한 것으로 이어진다.
그다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팅’ 하는 소리였다. 숟가락이 어느 술집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그 청아하고 맑은 소리에 은하수 별들의 반짝임과 천상의 소리가 가득한 우주가 태어나던 순간을 시작으로 이어진 사유는 ‘의식주’라는 주제로 묶어 2부에 담았다. 집 안의 것들을 주로 다룬 2부에서 3부로 넘어가려면 ‘담’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밖에는 골목(3부)이 펼쳐진다.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것들로부터 모색해나가는 글쓴이의 여행길은 그가 살아온 시대와 경험을 관통한다. 그럼에도 그의 발걸음이 담장을 넘어 골목, 골목을 벗어난 광장으로 이어지기에 혼자만의 여행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글쓴이가 떠나는 색다른 여행에 길동무가 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우리 주변의 것들을 둘러보며 저마다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