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을 걷는다
한국관광공사가 최근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한 ‘핫 플레이스’ 서촌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
경복궁 옆 동네 서촌 일대의 명소를 느릿하게 걷다
이 책은 오직 두 다리에 의지한 채 서촌 일대를 돌며 펼치는 답사기행, 혹은 역사기행서다. 여타 기행서들이 풍광 묘사, 지은이의 사고와 감상 등으로 채워지는 것에 비해, 『서촌을 걷는다』는 답사 지점마다 포인트가 되는 장소를 찾고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연, 역사적 의미를 진보적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현재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아무 이유 없이 생겨난 게 아니듯, 우리의 현재를 알기 위해선 그 뿌리가 되는 과거에 대한 근본적인 관찰과 역사적 상상이 필요하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된 서촌의 과거와 현재 모습은 물론이고, 그곳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고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반추한다.
세상은 ‘본 만큼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또한 특정한 대상을 알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애정이 싹트게 마련이다. 어느 하루, 서촌 구석구석을 느릿하게 걸으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우리 역사와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
한글 창제의 위인 세종대왕이 태어나고 자랐고, 안평대군이 도화경을 꿈꾸고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그린 곳. 세월이 지나 매국노 윤덕영과 이완용이 떵떵거린 흔적이 여실한 곳. 그런 속에서도 이상, 윤동주, 노천명 같은 숱한 예술가와 보통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았던 곳. 많이 뒤바뀌고 사라져버린 것들이 많지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역사의 숨결소리를 가늠해 들어볼 수 있는 드문 곳. 이 책은 살아있는 서촌의 역사를 되돌아볼 최적의 생각거리를 던져줄 것이다.
발길 아래로 흐르는 물길 따라 남아있는 지난날의 흔적 찾기
수많은 사람이 서울을 찾는다. 그중에서도 경복궁 서쪽마을(서촌)은, ‘북촌’이라 불리는 경복궁 동쪽마을에 이어 도심관광지로 개발되며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서촌은 지극히 평범한 강북의 한 지역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곳에는 한양으로 천도한 조선왕조 500여 년과 근현대 우리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조선의 법궁이었던 경복궁부터 청와대, 정부종합청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한반도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한발 한발 내딛는 곳마다 역사교과서를 펼치듯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것들을 한 꺼풀 벗기면 사랑과 증오, 전쟁과 평화, 애국과 매국 등 우리 선조들의 삶이 눅진하게 녹아난다.
한 마을의 역사는 물을 따라 형성되는 법이다. 저자는 비록 모두 복개되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발길 아래로 흐르는 물길을 기준으로 답사코스를 잡았다. 앞서간 이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서고자 선택한 방식이다.
우선 청계천 상류, 즉 ‘백운동천’을 따라 걸으며 주변에 남겨진 지난날의 흔적을 찾고 그 시대로 들어간다. 백운동천은 청계광장의 소라탑에서 북쪽으로 창의문 옆 북악산 기슭의 청계천 발원지까지의 물길을 말한다. 백운동천에는 옥류동천, 사직동천 등 여러 지류가 존재하는데, 그곳에서도 저자는 발걸음과 시선을 멈춘다. 특히 옥류동천 인근은 서촌 관광의 핵심으로 개발되어 볼거리가 많다.
이 책은 기행문이므로 일반적인 역사교과서처럼 시대 순으로 배열하지 않았다. 직접 걸으며 눈에 보이는 위치에 따라 서술했다. 따라서 백운동천의 최하류인 현 청계광장 소라탑부터 창의문에 이르기까지 물길이 지나는 행정구역, 즉 동별로 차례를 구성했다. 교과서 속의 관념적인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생활에서 접하는 현실적인 역사를 서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서촌의 은밀한 역사와 뒷이야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원래 광화문 계획광장 부지에 포함되어 있었다?
1952년 3월 발표된 도시계획에서 세종대로 사거리는 서울의 21개 계획광장 가운데 하나였으며, 반지름 150미터의 원형 계획광장 부지로 예정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조선일보 사옥, 동아일보 사옥, 광화문빌딩 등이 그것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중에 계획이 축소되며 조선일보 사옥은 제외되었지만, 동아일보는 정부의 도시계획을 완전히 무시했다. 창간 50주년을 맞아 새 사옥을 짓겠다며 신문에 투시도까지 발표한 것이다. 그야말로 국가권력에 대한 언론권력의 도전이었다. 서울시는 여의도 국회 앞의 서울시 청사 예정지로 거론되던 1급 땅을 대신 주겠노라 제안했다. 당시 매매가는 3,689평에 2억 원이 채 안 되었는데, 평당 5만 3,500원 정도였다. 하지만 여의도 부지를 매입한 뒤에도 동아일보사는 사옥을 이전하지 않았다.
언론권력에 의한 일반시민들의 권익 침해는 도로 및 광장의 편익 측면에서도 광범위하다. 1971년 지하철 1호선 설계 당시 동아일보사 건물의 일부를 철거해야 전동차가 시청역과 종각역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운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반대로 철로가 90도 가까운 직각 형태로 꺾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전동차가 이 구간을 지날 때면 운행속도를 급격히 줄여야 한다. 또한 철로의 마모를 막기 위해 많은 양의 윤활유가 사용된다. 시민들 세금으로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종대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사가 위치한 곳에 이르면 광화문에서 청계광장 입구까지 이어지던 차선 2개가 사라진다. 조선일보 사옥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앞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도와 접해 있는 빌딩 입구가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그로 인해 차량 1대당 평균 12초가 지체되며 연료 소비량 등 교통혼잡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문화예술인, 정치인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준 서촌
조선 중기부터 중인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서촌에는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옥류동천 물길로 접어들어 100미터도 안 되어 ‘이상의 집’이란 간판이 보인다.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처음으로 보존재산을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개방한 곳이다.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이 살던 곳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이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상은 1910년 부친이 이발소를 운영하던 사직동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세 살 때 백부의 양자가 되어 통인동 154번지로 옮겨왔다. 그는 그곳에서 1933년까지 거주했다. 학창시절은 물론 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근무할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이 집은 필지가 꽤 컸지만 분할되어 부동산업자들이 작은 집들로 새로 지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금의 ‘이상의 집’일 뿐이다. 따라서 이상이 살던 집은 통인동에서 154번지를 사용하는 모든 필지에 해당된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가 해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상의 집’과 불과 2∼3분 거리에 시인 노천명의 집이 있다.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17년 가을 한옥 형식을 유지하며 재건축되었다
노천명은 대표작 「사슴」 때문에 시적 낭만을 지닌 순수한 소녀처럼 연상되지만, 오만할 정도의 도도함과 결벽증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한 성품 때문에 동료들과 충돌이 잦았으며,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아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녀는 자신의 성격을 “대처럼 꺾어는 질망정 구리처럼 휘어지거나 구부러지기 어려운 성격”이었다고 시「자화상」에서 고백했다.
북촌에 이어 서촌이 서울시내 관광지로 주목받으며 관련 책자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대부분 빠져 있다.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의 3관왕으로 악명 높은 이완용의 집이 바로 그러하다. 해방 후 미군정은 그곳을 적산으로 징발해 군속들에게 나눠주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필지로 분할되었는데, 현재 옥인교회, 아름다운재단, 길담서원, 국민은행 청운동지점 등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