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제19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출간
단절의 시대 한국문학, 소통을 성찰하다!
대상 수상작에 권여선 작가의 〈모르는 영역〉 선정
“특유의 예민한 촉수와 리듬, 문체의 미묘한 힘이 압권”
2018년 한국문학을 빛낸 최고의 단편소설을 엄선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이 출간되었다. 올해로 19회째를 맞는 이효석문학상은 오정희 심사위원장을 필두로 구효서, 정홍수, 신수정, 전성태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2018년 8월 8일 1차 심사(예심)에서 권여선, 김미월, 김봉곤, 김연수, 김희선, 최옥정, 최은영의 소설을 본심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이어 2018년 8월 22일에 진행된 2차 심사(본심)에서 심사위원 전원의 고른 관심을 받은 권여선 작가의 〈모르는 영역〉이 제19회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권여선의 〈모르는 영역〉은 아내를 잃은 중년 남성과 딸의 서먹한 관계를 통해 밤에 뜨지 못하고 대낮에 부유하며 떠도는 낮달처럼 ‘어딘지 섞이지 못하고 떠다니는 인간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심사위원회는 〈모르는 영역〉이 작가 “특유의 예민한 촉수와 리듬, 문체의 미묘한 힘이 압권”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권여선 작가는 아내의 죽음 후 더욱 소원해진 어느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근본적 무지 혹은 단절에 얽힌 인간관계의 미묘한 영역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하지만 독자들을 주인공의 감정에 끌어들이기보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아버지와 딸이 대화하는 것만 보여주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게 뭐지’ 하는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한다. 정답을 바로 주지 않는 스무고개를 하듯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에는 대상 수상작 외에도 여섯 편의 우수작품상 수상작과 2017년 대상 수상작가인 강영숙 소설가의 자선작 〈곡부_이후〉를 함께 실었다. 우수작품상 수상작으로는 김미월 작가의 〈연말 특집〉, 김봉곤 작가의 〈컬리지 포크〉, 김연수 작가의 〈그 밤과 마음〉, 김희선 작가의 〈공의 기원〉, 최옥정 작가의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 최은영 작가의 〈아치디에서〉가 각각 수록되었다. 여기에 권여선 대상 수상작가의 자선작인 〈전갱이의 맛〉과 수상소감,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닿으려 하지만 결코 닿지 못하는 낮달 같은 인간관계 포착
어느 봄날, 불현듯 주인공 명덕은 동료들과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여주에 간 딸 다영 일행을 만나러 가기로 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명덕과 다영은 어색한 부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펜션에서 딸과 재회한 후에도 명덕은 밥값 문제로 다영과 다투기까지 하며 좀체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겉돈다. 다영 일행에게 밥을 사주고 체면치레를 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이 못마땅한 다영. 역시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났는데 밥값 문제로 화만 내는 딸에게 서운한 명덕. 이 작품은 갈등의 와중에도 이렇듯 서로 겉도는 둘의 모습에서 현대인이 겪는 단절과 고독, 소통의 어려움을 드러낸다.
그래서 여운을 남기듯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명덕이 바라본 낮달의 상징성은 의미심장하다. “왜 아침달 낮달 저녁달이 아니고 모두 낮달인가 생각하다, 해 뜨고 뜬 달은 죄다 낮달인 게지, 생각했다.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본문 43쪽) 심사평에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에서 낮달은 이들 “부녀 사이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며 모든 생명체에 깃든 삶의 쓸쓸함에 대한 공명으로 이어지는 효과”(본문 357쪽)를 드러낸다. 이 소설은 결국 우리네 삶이란 그 ‘모르는 영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단절과 오해의 변주일지도 모른다는 상념에 젖게 만든다.
2018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수상작 소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은 모두 여섯 편의 우수작품상 수상작이 실렸다. 김미월 작가의 〈연말 특집〉은 성폭력 피해와 연대하지 않은 과거의 불편함과 마주한다. 주인공 선은 과거 자신이 얹혀살았던 대학 선배 김영미의 근황을 전하는 문자메시지를 받고는 잊히지 않는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과에서 따돌림 당했던 ‘룸메’이자 선배인 김영미의―선 자신이 당할 수도 있었던―몰래카메라 피해 사건이었다. 구효서 소설가의 평처럼, 집단의 횡포에 연약하게 휘둘리는 개인의 실존을 젠더 문제와 겹쳐놓고 있는 이 소설은 작가 특유의 순진하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입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봉곤 작가의 유려한 글솜씨가 돋보이는 〈컬리지 포크〉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퀴어(성소수자) 문학을 잘 보여준다. 일본 교토를 배경으로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작품은 퀴어의 사랑을 치밀하고 섬세하며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낸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오정희 소설가의 평가처럼, 자신의 일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작가 특유의 사소설적 경향이 이 성장의 고통을 내밀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김연수 작가의 〈그 밤과 마음〉은 시를 빼앗긴 시인 백석(1912~1996)의 삶과 고뇌를 객관적인 자료와 빼어난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 기행은 백석의 본명(백기행)이다. 소설은 시인 백석이 아닌 인간 백기행을 서술하면서 시인의 영혼을 빼앗는 권력의 실체를 드러낸다. 이는 배경이 된 1950년대 북한은 물론 오늘날의 한국 현실과도 겹치면서, 전성태 소설가의 말대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가능케 한다.
김희선 작가의 〈공의 기원〉은 “팩트와 픽션을 마구잡이로 뒤섞은 서술 방식의 독특함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영국이 만든 공 하나가 19세기 조선에 건너갔다면? 이라는 다소 황당한 역사적 가정을 재기발랄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로 풀어냈다. 전성태 소설가의 평가처럼, “‘축구공’이라는 평범한 사물의 역사에서 촉발된 관심이 제일세계와 제삼세계, 거대 자본의 횡포와 노동 착취의 현장으로 이어지다가 어느새 서양의 모순을 판박이처럼 재현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쪽으로 갑작스럽게 선회하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이 단순한 지적 유희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의 최옥정 소설가는 안타깝게도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암 투병 중이었고, 끝내 2018년 9월 13일 54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 만큼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작가의 처절한 사유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하루아침에 시한부 인생으로 전락해버린 화자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펼쳐내는 고백은 회한과 허무로 가득 차 있는가 하면, ‘앉을 수 없는 종이의자’의 부조리를 삶의 본질로 받아들이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최은영 작가의 〈아치디에서〉는 작가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작품이다. 주인공인 ‘나’는 브라질 사람 랄도다. 어머니 집에 얹혀살며 대마초나 피면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인물이다. 랄도는 여자친구 일레인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아일랜드로 왔다가 화산 폭발로 인해 아치디라는 곳에 눌러앉고 만다. 아일랜드 깡촌인 그곳에서 랄도가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온 하민이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외국을 무대로 화자도 외국인으로 설정해서 전개되는데, 최은영 작가 특유의 매끄러운 문장과 감수성이 돋보인다.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글로벌한 이주를 경험하고 있는 시대에 다양한 청춘들의 삶의 실존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 심사평 중에서
모르는 영역_권여선
아내의 죽음 후 더욱 소원해진 부녀 관계를 짧은 봄날의 하루 안에서 보여주면서 ‘이해와 오해’ 혹은 ‘근본적 무지’의 영역에 얽힌 인간사의 오랜 이야기 속으로 합류해가는 이 소설은 주제도 인상적이지만 그 영역 속으로 한발 한발 진입하는 권여선 특유의 예민한 촉수와 리듬, 문체의 미묘한 힘이 압권이었다. - 제19회 이효석문학상 심사평 중에서
연말 특집_김미월
집단의 횡포에 연약하게 휘둘리는 개인의 실존을 젠더 문제와 겹쳐놓고 있는 이 소설은 작가 특유의 순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입담이 돋보인다. 얼핏 정답처럼 보이는 소설 마지막의 윤리적 결단이 소설의 활기와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구효서(소설가)
컬리지 포크_김봉곤
성적 정체성에 대한 탐색 과정을 소설 쓰기를 모색하는 과정과 나란히 병치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성장소설을 선보였다. 자신의 일상을 가감 없이 대담하게 드러내는 작가 특유의 사소설적 경향이 이 성장의 고통을 내밀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 오정희(소설가)
그 밤과 마음_김연수
삼수 관평협동농장으로 좌천된 후 백석 시인의 하루를 배경으로 한 소설. 《꾿빠이, 이상》 이후 오랜만에 만나보는 김연수의 문학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만나 새로운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 전성태(소설가)
공의 기원_김희선
‘축구공’이라는 평범한 사물의 역사에서 촉발된 관심이 서양과 동양, 제일세계와 제삼세계, 거대자본의 횡포와 노동 착취의 현장으로 이어지다가 어느새 서양의 모순을 판박이처럼 재현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쪽으로 갑작스럽게 선회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역사적 상상력이 단순한 유희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 전성태(소설가)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_최옥정
죽음에 대한 사유가 처절하고 둔중하게 지속된다. 하루아침에 시한부 인생으로 ‘전락’해버린 화자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펼쳐내는 고백은 회한과 허무로 가득 차 있는가 하면, ‘앉을 수 없는 종이의자’의 부조리를 삶의 본질로 받아들이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 신수정(문학평론가)
아치디에서_최은영
글로벌한 이주를 경험하고 있는 시대에 다양한 청춘들의 삶의 실존이 잘 드러난다. 국적과 인종, 언어와 젠더가 다른 젊은이들이 서로의 이질성을 넘어 소통과 이해에 이르는 과정을 이보다 더 감성적으로 그릴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 정홍수(문학평론가)
◆ 이효석문학상
한 해 최고의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에게 수여하는 문학상. 한국 단편문학의 어제와 오늘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밀도 높은 이야기를 선보이며, 탁월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우리가 지금 가장 뜨겁게 주목해야 할 작가와 작품의 보고寶庫다.
제18회 수상작 강영숙_어른의 맛
제17회 수상작 조해진_산책자의 행복
제16회 수상작 전성태_두 번의 자화상
제15회 수상작 황정은_누가
제14회 수상작 윤성희_이틀
제13회 수상작 김중혁_요요
제12회 수상작 윤고은_해마, 날다
제11회 수상작 이기호_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제10회 수상작 편혜영_토끼의 묘
제9회 수상작 김애란_칼자국
제8회 수상작 박민규_누런 강 배 한 척
제7회 수상작 정지아_풍경
제6회 수상작 구효서_소금가마니
제5회 수상작 정이현_타인의 고독
제4회 수상작 윤대녕_찔레꽃 기념관
제3회 수상작 이혜경_꽃그늘 아래
제2회 수상작 성석제_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제1회 수상작 이순원_아비의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