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히키코모리, 얼떨결에 10년
10년 동안 방 안에 숨겨놨던, 어느 히키코모리의 이야기
“저는 은둔형 외톨이였다가 용기 내어 밖으로 나온 사람입니다”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는 매일 방에서 나와 집 밖으로 나간다. 학교를 가거나, 회사에 출근을 하거나, 친구와 연인을 만나기 위해.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방 밖으로 나서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고 방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다.
그들은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 이야기 역시 방 밖으로 나가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지구를 옮기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던 한 사람의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인 그는 어느 날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의기소침, 어둠, 음습, 왕따, 루저, 외톨이, 우울함. 히키코모리를 머릿속을 그렸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이다. 혹 우연하게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거부감이 먼저 드는 유형의 사람 중 하나로 꼽힐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아마 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방 안에만 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뭇사람들의 온갖 상상이 더해지고 덧칠해진다. 위와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 것 역시 아마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히키코모리였던 과거의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남들 눈에는 그게 그거다. 히키코모리든 백수든 게임 폐인이든 심각한 오타쿠든 말이다”라며 멀리서 볼 때는 모두 거기서 거기인 QR코드와 같다고. 그래서일까, ‘나’로 시작하는 고백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나, 10년째 방 안에서 뭐 하냐?”
유쾌함과 먹먹함,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이야기
경제활동 안 함, 유일한 대화 상대는 부모님과 조카, 날로 불어가는 체중, 가족 외에 가끔 만나는 사람은 친구 J뿐, 외부활동이라곤 PC방이 전부. 도대체 어떻게 사는가 싶다. 그 역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 뭐 하냐?”
어떻게 보면 여기에 실린 모든 이야기는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물음은 방 안에 있는 자신, 나아가 가족, 친구, 과거, 미래로 확장되어간다. 10년의 시간 동안 아들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부모님, 묵묵히 옆에서 자리를 지켜준 친구 J, 방에 틀어박히기 전 자신의 모습, 방 안에서 바라본 세상의 모습, 그리고 방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 모든 것이 그의 이야깃거리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방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저자는 마치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은둔생활을 했던 것 마냥 자신이 겪은 사건사고, 방 안에서 했던 몽상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마치 “너도 잠시나마 우울하고 외로웠던 시절이 있었지? 이 느낌 뭔지 알지?” 하며 능청스럽게 묻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능청맞음과 뻔뻔함에 슬몃 미소가 지어진다. ‘이 사람, 골 때리네.’
자신의 궁상과 비루함을 유머 소재로 활용하며 풀어나가는 부분이 냉탕이라면, 저자는 당연히 온탕도 느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마음이 먹먹해지는 온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밖으로 나오고 나서 그가 숱하게 들은 말은 “왜?”다. 왜 방에 들어갔느냐, 그렇게 오랫동안 왜 방 안에서 나오지 못했느냐….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애인과의 문제, 직장에서서의 문제, 건강상의 문제가 연속되고 쌓이다 결국 어쩌다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하고 저자는 말한다. “나름의 사연이 있고, 상처가 있다. 상처가 너무 아픈 것뿐이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히키코모리가 이런 사람이었어?’ 그리고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하면 떠올리는 모습의 대부분이 편견이었음을, 그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재단하고 판단했었음을 깨닫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각각의 생각과 고유한 모습을 갖고 있다면, 히키코모리도 예외는 아니다. 쓰레기로 가득한 방 안, 부모님과의 불화, 몇 년간 자르지 않아 덥수룩해진 머리, 이러한 모습이 히키코모리를 떠올렸을 때 상상되는 모습이고 실제로 이러한 사람도 있겠지만, 또 아닌 경우도 있다. 공감은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저자의 진솔한 고백은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을 이끈다.
1절은 끝나버렸지만, 아직 2절이 남아 있으니…
방에서 나온 히키코모리. 어떻게 보면 지금의 모습 역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다. 직업이 없는 것은 여전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직도 서투르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분명 전과 다르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 화목한 분위기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금연, 운동을 통한 자기관리,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 어제보다 오늘을, 다가올 내일을 보다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히키코모리가 히키코모리를 만나려고 하면 히키코모리이기를 그만둬야 한다.” 영화 〈도쿄!〉에 나오는 대사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히키코모리인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게 어려운 사람, 일에 빠진 사람, 말 못할 상처로 인해 스스로를 계속 감추는 사람, 모두 ‘자발적 외톨이’들이다. 저자는 밖으로 나와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기 열심히 치르고 있다고, 1절이 허무하게 끝났을지언정 아직 2절이 남아 있다고 말이다. “나는 지금부터 2절을 부르려 한다. 나와 같은 노래방에 있다면 정지 버튼을 누르지 말아달라. 이 곡만은 끝까지 부르고 싶으니….” 저자 스스로에게 전하는 말이자,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응원과 용기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