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리의 사람들
“이 책은 늙은 스파이에게 바치는 진혼곡(Requiem)이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조지 스마일리의 마지막 인사
토머스 알프레드슨 감독, 게리 올드먼,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 영화화 확정!
★2000년 판 작가 서문 수록
시대와 인간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의 작가, 국제 첩보 스릴러의 대가 존 르 카레
판타스틱 픽션 Gold 존 르 카레 걸작선의 첫 번째 작품《스마일리의 사람들》
존 르 카레의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에 멋진 차림새와 매력 넘치는 외모를 갖춘 스파이의 화려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삶의 무게와 내면의 갈등으로 끊임없이 고민하는 땅딸막한 늙은 남자가 있을 뿐이다. 독자들에게 조지 스마일리는 대의를 위해 국가에 헌신했지만 정작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은 돌보지 못한 우울하고 쓸쓸한 스파이였고 그래서 그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는 허구가 아닌 현실로 여겨졌다.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쌓아올린 사건과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르 카레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독자들은 조지 스마일리를 통해 그들이 의식적으로 외면해야 했던 시대의 그림자와 마주할 수 있었고, 빠르게 늙고 쇠약해져 은퇴를 반복하는 위태로운 스파이의 모습에서 시대의 아픔과 소모품처럼 희생된 이웃을 발견했다.
작가 존 르 카레는 허무하고 쓸쓸한 이야기 속 상처 입은 영혼들의 치유와 인간성의 회복을 통해 역사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존 르 카레가 국제 정세를 날카롭게 파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실제 스파이 경험과 영국 외무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었다. 추측이 아닌 확신을 바탕으로 시대 상황을 냉정하게 짚어낸 탁월한 통찰력은 독자와 평단을 매료시켰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서 이야기를 다루는 노작가의 시선은 거창한 것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 세심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누구보다 사려 깊었다. 또한 시대의 변화에 맞춰 유연한 자세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일관되고 엄격한 자신의 철학을 지켜나갔다. 2003년 존 르 카레는 미국의 부시 정부가 대중들을 선동하기 위해 다중의 적을 만들고,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긴다는 점을 비난하며 언론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시대의 본질을 꿰뚫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품은 거장의 단호한 어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묵직한 울림으로 남게 되었다.
《스마일리의 사람들》은 총 8편의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 중 일곱 번째 작품으로 영국 정보부의 조지 스마일리와 KGB의 스파이 마스터 ‘카를라’와의 마지막 대결을 다루고 있다. 은퇴한 늙은 스파이를 다시 첩보전의 중심으로 끌고 온 이 이야기는 ‘카를라 삼부작’의 시작인《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함께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자 ‘궁극의 스파이 소설’로 평가받는 존 르 카레의 대표작이다. 1979년에 발표된《스마일리의 사람들》은 1981년 알렉 기네스 주연의 BBC 드라마로 제작되어 사랑받았으며, 30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가치와 인기를 꾸준히 인정받고 있다. 2011년 토머스 알프레드슨 감독, 게리 올드먼 주연으로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제작되어 평단과 관객들에게 격찬을 받았으며《스마일리의 사람들》은 전편의 제작진과 출연진을 그대로 하여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알에이치코리아는 판타스틱 픽션 Gold를 통해 지성과 통찰력을 갖춘 존 르 카레의 걸작들 중에서 재미와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신구(新舊) 작품들을 엄격하게 선정, 국내의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적을 점점 더 거대한 괴물로 만들었던 냉전 시대의 첩보전을 배경으로 한《스마일리의 사람들》에 이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팔레스타인 테러집단의 첩보전을 그린《리틀 드러머 걸》이 출간 예정이며, 존 르 카레의 최신작인《Our Kind of Traitor》,《A Delicate Truth》또한 2014년 소개될 예정이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와 카를라의 최후의 대결
크렘린의 최심부, 거울로 가득한 허상의 방에서 진짜 늙은 여우를 끌어내라!
은퇴한 늙은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는 과거 자신과 함께 싸웠던 에스토니아 출신 망명자 ‘장군’ 블라디미르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기나긴 냉전의 대립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채 시대로부터 도태되었던 수많은 스파이들과 마찬가지로 블라디미르 또한 초라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마음의 빚을 갖고 있던 스마일리는 블라디미르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 스마일리와의 접촉을 시도했었고, 스마일리의 숙적이자 모스크바 센터의 수장 ‘카를라’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단서를 확보하던 중이었음이 밝혀진다.
조지 스마일리는 과거 ‘게르스트만’이라는 가명을 쓰는 소련 스파이를 망명시키기 위해 설득작업을 한 일이 있었다. 당시 스마일리는 자신의 미숙함으로 인해 설득에 실패하고 개인적인 약점까지 노출시키고 만다. 게르스트만은 망명을 거절하고 스마일리가 빌려준 라이터만 가진 채로 모스크바로 돌아가 자신의 정적들을 모두 숙청하고 KGB의 정점에 오른다. 그가 바로 후에 영국 정보부와 서방세계를 자유자재로 기만하고, 스마일리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와 굴욕을 안겼던 ‘카를라’였다.
적수에 대한 되살아난 분노와 함께,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위험 속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나가다 죽은 블라디미르의 복수를 위해 스마일리는 다시 한 번 첩보전의 중심에 복귀한다. 크렘린의 중심, 스마일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잡을 수 없던 카를라를 포획할 마지막 기회. 하지만 스마일리가 블라디미르의 흔적을 따라 카를라에게 가까워질수록, 사건의 전체 그림이 눈에 들어올수록 스마일리의 마음은 복잡해져만 가는데….
“이 책은 늙은 스파이에게 바치는 진혼곡(Requiem)이다.”
존 르 카레가 자신이 아끼고 사랑한 스파이에게 허락한 위대한 종말
철의 장막을 두고, 서방세계와 소련은 서로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격렬한 첩보전을 벌였다. 냉전이 계속되면서 두 세력의 직접적인 대립은 소강상태를 보였으나 첩보전만큼은 시들해지기는커녕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서로 정보 우위를 점하려는 강박은 상대에 대한 과대망상으로 발전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의미한 첩보전을 이어갔다. 빠져나올 수 없는 첩보전쟁의 수렁 속에서 스파이들은 상대의 실체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채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가까스로 그 존재를 유지했다. 《스마일리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 대부분을 국가에 헌신하고 거대한 이념의 충돌이 만들어 낸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야 했던 스파이, 냉전이 낳은 사생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때때로 불완전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조지 스마일리는 대체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으며, 영국 정보부를 이끄는 위치까지 올라갔던 성공한 스파이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결국 길어진 냉전, 사회주의자와의 싸움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에 밀려 변화하기보다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퇴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은퇴한 늙은 스파이에게 남은 것은 승리의 만족이나 성취감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는 알 수 없는 패배감과 회한, 공허함 속에서 떠나간 아내 앤을 그리워하며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실제 스파이로 활동했었음을 밝힌 존 르 카레에게 있어 ‘조지 스마일리’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닌 작가 자신, 혹은 그가 되고 싶었던 가장 이상적인 존재였다.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덕분에 존 르 카레는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존 르 카레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많이 변했으며 조지 스마일리의 시선이 아닌 다른 식으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선택의 시기에서 작가는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을 택하고 자신이 가장 사랑한 스파이와의 이별을 앞당기게 된다. 그리고 작별의 인사는 그동안 자신의 임무를 너무도 충실하게 수행했던 늙고 지친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에게 걸맞는 것이어야 했고, 존 르 카레 자신이 견지해 나갔던 철학을 담고 있어야 했다.
“《스마일리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늙은 스파이의 레퀴엠으로 기획되었으며, 지금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그에게 성대한 송별식을 마련해주기 위해 그간의 등장인물을 모두 불러모았다. 피터 길럼, 토비 이스터헤이스, 코니 삭스, 그리고 물론, 늙은 여우, 암호명 카를라까지. 위대한 종말의 무대로는 분단 베를린을 선택했다. 아니면 달리 어디겠는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서 스마일리가 알렉 리마스에게, 리즈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소리친 곳 또한 베를린 장벽이 아니던가. 스마일리는 마지막 공작을 위해 그곳으로 돌아간다.”
_작가 서문 중에서
《스마일리의 사람들》에서의 조지 스마일리는 이제 더 이상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스파이로서의 사명감 때문이 아닌, 자신의 이유로 움직인다. KGB의 늙은 여우 ‘카를라’에 대한 복수심이기도 했고, 자신의 패배감과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보상받고자 하는 위험한 감정이기도 했다. 스마일리의 끈질기고 집요한 추적은 시리즈의 대미에 어울리는 결말을 이끌어 낸다. 길었던 싸움을 끝내려는 스마일리는 자신과 너무나 닮은, 사상과 진영은 달랐지만 외로운 첩보전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적수와 드디어 마주한다. 시리즈의 마지막 책에 이르러서야 작가 존 르 카레는 스마일리에게 만회의 기회를 주고 그의 선택을 기다린다. 독자는 분단 베를린, 냉전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최후의 무대에 선 위대한 스파이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책의 마지막, 출간 당시 조지 스마일리를 회상하며 쓴 존 르 카레의 2000년도의 글에서 느껴지는 깊은 애정, 작가와 캐릭터 간의 굳건한 유대에 진한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 미디어 리뷰
“복잡하지만, 읽는 이를 흥분시키고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는 소설.”
_시카고 트리뷴
“궁극의 스파이 소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엄청나게 노련하며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_뉴스위크
“아무나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힘과 절묘함을 갖춘 작품. 르 카레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라 할 만하다.”
_파이낸셜 타임스
“《스마일리의 사람들》은 르 카레가 빚어낸 완벽한 결정체다.”
_선데이 텔레그래프
■ 책 속으로
“하지만 장군님, 오늘 밤 창조주를 영접해 가장 깊은 속내를 보여드린다면 그건 지금부터 장군님께 드릴 말씀이 될 것입니다. 내 딸 알렉산드라는 고통스럽게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밤낮으로 나를 괴롭혔고 나도 짜증을 부렸죠. 배 속에서조차 제 아빠의 아이였거든요. 안타깝게도 그 애를 사랑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아빠가 만들어준 어린 유대인 전사 정도로만 이해했답니다. 하지만 장군님,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사진 속의 아이는 글리크만의 아이도, 제 아이도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새의 알을 둥지에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 늙은 년이 잘 속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속임수를 쓴 자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_본문 중에서
잠시 후, 스마일리는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커다란 몹집에 비해 너무도 유연함 몸놀림이었다. 스마일리가 떠나기 직전 경감은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조심스러워서라도 지금껏 삼가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저 전설적인 인물과 마주한 것만으로도 말년에 손주들한테 떠들 자랑거리는 충분했다. 어느 날 밤, 은퇴한 정보부장 조지 스마일리가 그림자처럼 나타나 너무도 끔찍하게 죽은 외국인 친구의 시신을 들여다보고 떠났다고.
실제로 한 가지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플래시를 아래쪽에서 비스듬히 비춰서인지 아예 수없이 많은 얼굴을 본 기분이었다. 나이도, 사람도, 성실함도 다른…. 심지어 신앙마저도 달라보였다.
“내가 만난 사람 중 최고였어.” 한때 경감의 상사였던 멘델이 얼마 전 맥줏집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멘델도 스마일리처럼 은퇴했으나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경감만큼이나 헛소리를 싫어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교활하고 잘난 척만 하는 아마추어지만 스마일리는 예외야. 완전히 달랐어. 최고였지. 멘델은 그렇게 표현했다. 경감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수도원. 그래, 바로 그거야, 수도원. 그는 수도원 같은 존재였어. 다음번 훈시에 그 말을 꼭 집어넣어야겠다. 온갖 이질적인 나이와 스타일과 신념이 모인 수도원. _본문 중에서
두 개의 증거. 너무나 중요해 우편으로도 보내지 못한 증거. 노인은 뭔가를 운반 중이었다. 두 개의 물건. 머리가 아니라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거야. 장군은 모스크바 규칙까지 어겼다. 망명자 삶을 시작한 그날부터 담당관뿐 아니라 스마일리 자신에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규칙, 그와 그의 네트워크가 생존하기 위해 고안한 규칙이건만…. 울분이 욕지기처럼 위장을 사로잡았다. 모스크바 규칙에 의하면, 메시지를운반할 경우에는 동시에 포기할 방법도 있어야 한다. 마이크로도트, 비밀 문건, 미현상 필름 등의 위험하고 위태로운 물건을 위장하거나 감출 경우에는 가장 작고 흔한 종류여야 하며 버렸을 때에도 절대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
알약으로 가득 찬 약병이나 성냥갑 같은…. _본문 중에서
시스템은 언제나 그랬듯 말잔치의 쓰레기만 남기고 눈물을 흘리며 사라졌다. 돌이켜보건대 스마일리는 평생 동안 바로 그 말잔치의 중재자였다. 그는 그 과정을 견뎌냈다. 다른 사람들도 버티기를 바랐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얍삽한 자들이 무대를 장악할 때 뒷방에서 혼자 분투했건만 여전히 무대를 차지한 자들은 그들이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식의 감상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조용히 자신의 가슴을 들여다보니 처음부터 지도자는 없었으며, 지도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사실만 깨닫고 말았다. 그를 향한 유일한 제약은 자신의 이성과 양심뿐이었다. 결혼과 공공에 대한 봉사 정신도 빼놓을 수는 없다. 사회에 평생을 이바지했건만 남은 거라곤 나 자신뿐이군. 스마일리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카를라도 있어. 내 어둠의 성배.
어쩔 수가 없다. 불안한 마음이 내버려두지를 않으니. 어둠 속을 들여다보면 바로 눈앞에 카를라가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변화하는 어둠의 입자 속에서 와해되고 재현되는 카를라. 갈색 두 눈이 그를 평가하듯 바라본다. 100년 전 어느 날 델리 교도소의 어두운 취조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딘가 섬세하면서도 언뜻 친구를 원하는 표정. 그럼에도 부드러운 홍채는 어느새 천천히 굳어 날카롭고 완고하기 그지없었다.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