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살
대한민국의 불행한 20대 청춘들
자살률 1위의 암울한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10대와 20대 청춘들은 가장 불행하다. 10대는 치열한 입시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쉴 틈 없이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 스물다섯 살의 청춘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사회에 들어가는 나이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20대는 희망이 없다. 급속한 인구 노령화로 인하여, 은퇴하지 않고 직장에 자리 잡고 있는 기성세대와 경쟁을 해야 한다.
어쩌면 20대 청춘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더 수입이 적어질 수 있는 세대가 되었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20대는 최저임금이 겨우 보장되는 최악의 노동시장에 내몰리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꿈을 안고 미국 유학을 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몇 학점을 남겨 둔 채 휴학생 신분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가 되는 게 꿈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대한민국에서 작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가난을 각오해야 한다. 작가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일단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비정규직의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월세 각종 공과금을 내면서 돈을 모으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노력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이다. 꿈을 포기하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집 앞에 찾아온 길고양이 세 마리를 만나게 된다.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처절하게 살아가다가 치여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는 운명을 사는 고양이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위로를 받지만 그 고양이 중 두 마리의 죽음을 보면서 사는 게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은 대한민국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청춘들의 현재를 느끼게 해 주면서, 길고양이를 통해서 그래도 우리가 왜 포기하지 말고 버티며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현실을 보여주면서, 길 고양이의 삶을 향한 처절한 노력처럼 우리도 포기하지 말자고 말한다.
실패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20대들에게 실패하는 상상하지 말자고 얘기한다.
♧ 본문 속으로
예상보다 돈을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6개월 정도 일했지만 당장 수중에 백만 원도 없었다. 월세 내고, 차비하고, 식사하고, 휴대폰 요금 내고, 최소한의 생활용품, 샴푸나 콘택트렌즈, 생리대 등을 사고 나면 나에게 떨어지는 돈은 없었다. 친구들과 커피 한 잔을 즐기는 것도 버거웠다. 신발 밑창이 구멍이 나 비가 새어도, 새 신발을 바로 살 돈이 없었다. 극도의 빈곤 상태였다. 그래도 조금씩 남기기 위하여 버텼다. 나날이 씀씀이는 줄어들었고, 최소한의 돈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단 벌로 계절을 나기 위하여 어두운 계통의 옷을 두 벌 정도 샀다. 한 옷을 입으면, 다른 옷은 세탁하는 식으로 번갈아가며 입었다. 신발은 오래 신어도 빨리 닳지 않도록 걸음걸이를 고치고 밑창이 두꺼운 것들로 골라 샀다. 디자인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생리대 사는 돈도 의외로 많이 들었다. 밖에 나갈 때마다 하나씩 꿍쳐두었다. 친구 집 놀러가서 하나 빌리고, 일하다가 하나 빌리고 하는 식으로 모아서 사용하였다. 가끔은 찝찝해도 새지 않을 때까지 버텼다. 생활의 모든 것들을 참고 간소화해야만 버틸 수 있었다. 구질구질하였다. 내가 만약 여기서 책까지 포기한다면 너무 비참할 것 같았다. 책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책 살 돈만 월급에서 빼고, 매일 이를 앙다물고 버텼다.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본문 중에서 89p
“고양이가 죽었다.”
“뭐라고?”
“우리 집 앞에 찾아와서, 내가 밥 주던 고양이 두 마리가 죽었다.”
“그래, 안됐다.”
“근데 너무 슬픈 거 있제.”
“왜?”
“그렇잖아. 약한 존재잖아. 어떤 보호도 못 받고, 그렇게 죽어버리는 현실이 너무 슬프잖아.”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오열하였다. 지금껏 터지지 못했던 감정이 한 번에 폭발해버렸다.
“그렇다고 뭘 그렇게 우노?”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엄마는 이야기하였다.
“맞잖아. 말도 못하는 동물이 사람 때문에 도시에서 사는데, 사람들은 보호도 안 해주고, 괴롭히기만 하고, 죽이기나 하고, 너무 슬프잖아. 그런데 심지어 아프기도 하잖아. 현실이 너무 잔인하잖아. 고양이들은 약하니까, 사람들이 보호해야 하는데, 전혀 안 그러잖아. 약자는 결코 보호받지 못하는 거잖아.”
감정에 북받친 나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뱉어냈다.
“야야, 야야. 정신 차려라. 사람들이 더 불쌍하다. 고양이한테 쓸 돈 있으면 사람들이나 돕지. 화장시키고 뭐 한다고 40만원이나 쓰고 뭐하는 거고. 엄마한테 그 돈을 쓰던지.”
엄마는 동물에게 연민을 가지는 내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엄마는 모른다. 끊어라. 난 더 울 거다.”
본문 중에서 249p
하느님, 진짜 나한테 왜 이래요? 나한테만 왜 이래요? 내가 그렇게 싫으세요. 다 가져가잖아요, 항상 다. 내가 가진 것들을 몽땅 다 가져가시잖아요. 왜 그래요, 진짜. 꼭 그렇게 가져가야만 해요? 고양이들은 왜 데리고 간 거예요? 내 옆에서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꼴을 못 보시겠어요?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왜 맨날 나만 몰아세워요? 안 그래도 힘든데,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 살아 숨 쉬는 것도 벅찬데, 왜 나한테만 이래요.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잖아요. 그런데 고양이들마저 데리고 가면 난 누구랑 말해요? 누구한테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냐고요. 대답 한 번 해봐요. 한 번 해봐요. 들어나 보게. 하나라도 주셔야 내가 살 거 아니에요. 진짜 내가 죽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본문 중에서 25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