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서"
시인의 감성으로 새롭게 발견한 다정한 말들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 에세이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을 통해 타인을 향한 공감과 환대로 다정한 세계를 그려온 허은실 시인의 에세이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책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단어들 속에서 시인의 감성으로 새롭게 발견한 말뜻을 담았다. 물끄러미 단어의 면면을 살피는 게 습관인 허은실 시인의 글 속에는 자신을 지키려는 삶의 태도까지 올곧이 배어 있다.
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깨달은 삶의 태도에 관하여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 에세이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을 통해 타인을 향한 공감과 환대로 다정한 세계를 그려온 허은실 시인의 에세이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책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단어들 속에서 시인의 감성으로 새롭게 발견한 말뜻을 담았다. 물끄러미 단어의 면면을 살피는 게 습관인 허은실 시인의 글 속에는 자신을 지키려는 삶의 태도까지 올곧이 배어 있다.
“말의 먼지를 털고 말의 빗장을 푼 뒤 조심스레 말을 캐”보는 사람이라는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소개처럼, 허은실 시인은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지나쳐버리는 동안에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온기를 품은 말들을 기록했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새롭게 불러보고 다른 표현을 발명해보는 일은 어쩌면 말과 그 말이 지시하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 있어 간신히 가능한 일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허은실 시인은 이 책이 다른 책들 속에서 만난 문장들과 더러는 누군가 지나가듯 한 말들, 곁에 늘 놓여 있던 사물과 풍경들이 걸어온 말에 대한 서투른 대답으로 탄생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이 책 역시 누군가에게는 수줍음과 떨리는 손길로 ‘저기요’ 하며 소매를 붙잡는 정도의 말 건넴이기를, 그래서 당신의 새 글에, 새 사랑에, 그리고 삶에 영감을 주기를 희망한다.
무릎 : 사랑을 위해서만 내어주고 싶은 자리
다정 : 늦게 돌아올 사람을 위해 온기를 보존하려는 마음
울지 말아요 : 당신의 슬픔이 어서 그치기를 바라요
어떤 단어를 마주쳤을 때 시인의 상상은 마치 강물 위에서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물결처럼 한없이 뻗어나간다. ‘설렘’이란 단어에 “철렁, 내려앉거나 출렁, 흔들리는 것”을 떠올렸다가, 첫 꽃을 내보내기 직전의 봄산과 남쪽 바다를 지나온 바람으로 생각이 흘러들었다가, 누군가를 마중 나가 있는 마음에 도착한다. ‘스치다’를 발음해보면서 한밤에 연필이 종이를 가만가만 스치는 소리를 떠올리거나, ‘손을 잡다’는 단어가 품은 온기를 느끼며 위안을 얻기도 하고, ‘온다’라고 표현하는 말들은 대부분 기다림을 전제로 한 귀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단어 자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단어는 시인에게 삶의 태도를 넌지시 일러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는 상대에게 ‘곁’이 되는 것. 시인은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만큼의 거리에서 늘 머무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또 사랑은 끝내 떠나지 못하는 자리, ‘맡’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당신이 아플 때 당신의 머리맡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사랑이다.
시인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해지는 관계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늦게 돌아올 사람을 위해 아랫목에 밥공기를 넣어두던 마음에 ‘다정’이란 이름을 붙이고 또 좋은 것을 같이 느끼고 싶은 ‘함께’를 떠올린다. ‘울지 말아요’라고 말을 건넨 이의 마음속에서 ‘당신이 우니까 내 마음이 아프다’는 공감을 발견한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상대가 서 있는 곳에 내가 서 보는 ‘이해’와 때로는 자신을 선 밖에 세워둘 줄도 아는 ‘선 긋기’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어쩌면 버티기에 가까운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 시인은 ‘낭만’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른이 되면서 하늘을 수놓는 긴 비행운이 사실 비행기 연료가 연소되며 만들어진 수증기가 배기가스에 섞여 냉각된 얼음 알갱이라는 것, 매일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게 만드는 노을이 파장이 긴 붉은색 가시광선이 대기층의 먼지와 수증기에 부딪친 현상이라는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 사실들이 비행운과 노을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을 침해하지는 못한다. 더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때로는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속으로 기꺼이 입장하는 낭만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자주 삶에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펼치면 단어 하나가 마음속으로 깊고 오래 스미는 풍경들로 가득하다. 시간에 쫓기고 조급해질 때면 나무가 건너온 겨울의 개수만큼의 나이테를 떠올려보고 바닷물이 졸아들어 한 알의 소금이 될 때까지의 시간을 상상하면 좋겠다.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날들을 자신만의 속도로 차곡차곡 쌓아 좋은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가짐을 닮아가면 좋겠다. 한 획의 실수를 다음 획이 보완을 하듯이 서로 기대고 손잡고 지탱하며 선선히 삶을 산책하는 시인의 걸음을 따라 걸으면 좋겠다. 이런 시인의 책이 우리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